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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컬처 파워, 독일의 선택 ①

컬처 파워, 독일의 선택 ① ‘베를린의 자부심’ 올라퍼 엘리아슨

베를린이 미술관 안으로 통째 들어왔다, 10만 인파 보고 갔다
 

독일 베를린 마틴-그로피우스-바우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마이크로스코프(Microscope)’. 거대한 그물 모양의 거울로 미술관 한복판을 덮었다. 엘리아슨에게 거울은 기존의 건물 공간을 뒤흔들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젠스 지에 촬영, 엘리아슨 제공] 
 
‘이제는 문화경쟁이다-.’ 최근 독일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화두다. 세계의 젊은 예술가를 불러모으고, 도시와 사무실, 작은 식당과 호텔에까지 디자인 경영 마인드를 불어넣고 있다. 미술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조명 하나에도 자존심을 걸었다. 문화강국 의지를 다지고 있는 독일의 미술·디자인·건축 현장을 소개한다.

베를린의 보도블록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왔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사각벽돌이 아니다. 오랜 세월 베를린 사람들의 걸음걸음을 받쳐준 크고 묵직한 화강암 덩어리다. 당연 베를린의 영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독일의 역사를 보여주는 일종의 증언자다.

이런 돌덩어리를 베를린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마틴-그로피우스-바우 미술관으로 옮겨놓은 사람은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43)이다. 그는 전시실 두 개에 걸쳐 블록을 길게 깔아 아예 길을 만들었다. 이 길은 다음 전시실로 가는 문으로 이어져 사람들은 모두 이 돌을 밟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익숙한 공간의 자리를 바꾼 시도에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보다 새롭고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도시와 미술의 만남=이번 전시는 ‘이너 시티 아웃(Inner City Out)’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지난 4월 29일 개막 이래 지금까지 약 1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게레온 지버니히(Gereon Sievernich) 마틴-그로피우스-바우 관장은 “엘리아슨은 도시의 공공 공간(public space)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온 작가”라며 “이번 전시의 핵심은 그의 작품과 마틴-그로피우스-바우, 그리고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결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아슨은 베를린에서 1994년부터 지금까지 17년째 살고 있다. 베를린이 그에게 제2의 고향인 셈이다. 지버니히 관장은 “이번 전시는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를 아예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라며 “미술작품과 미술관 공간이 긴밀하게 관계를 맺은, 매우 시적인(poetic) 전시”라고 평가했다.

 

올라퍼 엘리아슨전(展)에 등장한 베를린의 보도블록.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엘리아슨은 베를린의 자랑인 것이 분명했다. 이번 전시는 마틴-그로피우스-바우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설치 작품 전시다. 전시를 기획한 것은 5년 전, 엘리아슨의 일정에 맞춰 전시 날짜를 확정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해온 데에만 2년이 걸렸다. 마틴-그로피우스-바우 측은 엘리아슨에게 무대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예컨대 ‘마이크로스코프(Microscope)’란 작품을 위해 이 미술관의 자랑인 아름다운 실내 중정(inner courtyard)을 거대한 그물과 같은 거울로 뒤덮어버리는 공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20개나 되는 전시실도 선뜻 내놓았다. 또 엘리아슨이 “내 작품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스웨덴 출신의 큐레이터 다니엘 번바움(47)을 불러 엘리아슨과 함께 작업하도록 배려했다.

◆베를린, 예술가의 도시=베를린에서 예술가·큐레이터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예술도시 베를린이다. 지버니히 관장은 “우리 미술관에는 컬렉션이 없다. 오히려 이를 전세계에서 주목 받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기획·전시하는 데 중요한 기회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올라퍼 엘리아슨 외에도 프리다 칼로(8월 9일까지) 등 3개의 전시가 동시가 열리고 있다.

지버니히 관장은 “현재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해외 아티스트가 약 6000명”이라고 강조했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그 중의 대표주자라는 설명이다. 그는 세계 아티스트들이 베를린으로 모여드는 이유에 대해 “좋은 작업실을 싼 값에 구할 수 있으면서도 미술관이 많아 언제나 다양한 전시를 볼 수 있는 문화적 환경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역·인종·장르 등의 경계를 없애고 ‘아트시티 베를린’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베를린=이은주 기자

 

올라퍼 엘리아슨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1967년 덴마크 코펜하겐 출생. 빛과 색상, 파장을 이용한 설치물을 통해 관람객이 전시공간을 온몸으로 체험케 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2003년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의 터빈홀에 설치한 초대형 ‘인공 태양’ 작품(The Weather Project)이 200만 명 관람객을 불러모았다. 작년 10월 한국(PKM트리니티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마틴-그로피우스-바우(Martin-Gropius-Bau)=독일 베를린의 대표적인 미술관이다. 무너진 장벽의 흔적이 남아있는 포츠담 광장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건축조형학교 바우하우스(Bauhaus)를 세운 발터 그로피우스의 큰아버지 마틴 그로피우스가 1881년 설계한 건물로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훼손됐다가 81년 재개관됐다. 올 한해 열리는 전시회만 15차례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중앙일보] 2010.07.09 00:35 입력 / 2010.07.09 01:13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