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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세계의 도시철도 디자인 탐방] 05 프랑스 파리

- 문화적 감성의 표현, 파리 14호선 지하철역사 디자인 -

세계의 도시철도 디자인 탐방 싣는 순서

01. 요코하마
02. 런던
03. 빌바오
04. 후쿠오카
05. 파리
06. 도쿄
07. 베이징, 홍콩, 센젠, 상하이
08. 바르셀로나
09. 오사카
10. 로테르담

파리 지하철은 1863년 영국 런던과 1896년 영국 글래스고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이어 1900년에 유럽지역의 네 번째 지하철로 개통되었다. 파리 지하철은 1호선부터 14호선까지의 노선과 2개의 독립지선을 포함해 총 16개 노선, 213Km의 운행거리, 약 300개의 역으로 구성되고, RATP(파리 교통공사, Régie Autonome des Transports Parisiens)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특히 파리지하철은 교외지역을 고속으로 연결하면서 시내를 관통하는 간선역할의 RER(지역 급행 네트워크, Réseau Express Régional)과 다양한 역에서 연계되는 환승체계를 구축하고 있어 도시철도 네트워크에 의한 대중교통구축의 바람직한 모델로 꼽히고 있다.

'M'자형을 기본으로 한 파리지하철 외부유도사인이다. 약 500M마다  촘촘하게 도시철도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상황에서는 자세한 정보보다 명확한 아이콘이 더 중요하다. 
 
'M'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역명과 호선이 부가적으로 표기된 파리지하철 14호선의 외부유도사인이다.

파리지하철 중 가장 최근에 개통한 14호선은 향후 파리 지하철역사의 기술적 접근방안과 디자인 방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98년 1단계가 개통된 후 2007년에 이르러서야 전 구간이 개통된 14호선은 리옹(Lyon)역과 생라자르(St. Lazare)역 사이의 시내 중심부를 통과하는 RER-A선의 포화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계획된 새로운 노선이다. 일명 METEOR(동서고속메트로, Metro Est-Ouest Rapide)로 불리고 있는 14호선은 RER-A선과 평행한 노선으로 계획되어 총 운행거리 9km에 9개의 정거장을 가지고 있고 무인운전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좌측 위,아래는 올림피아드(Olympiades)역, 우측은 생라자르(Saint-Lazare)역으로 기본 디자인은 표준화를 지향하고 역별 바닥이나 벽면의 색채 등에서 부분 차별화를 보여주고 있다.

흔히 디자인 영역에서 여러 나라의 디자인을 비유할 때, 독일은 과학의 이름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공예의 이름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예술의 이름으로 디자인을 장려하고 그러한 방식으로 접근한다고 한다. 파리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다. 조형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19세기말을 풍미했던 아르누보의 곡선미가 도시 곳곳에 지금도 살아 숨 쉬면서 모던한 현대와 조우하는 곳이다. 대개 파리의 지하철을 떠올리면 어두운 터널형의 승강장과 미로형의 통로, 낡고 빛바랜 색채와 미묘한 악취 등 여러 부정적인 면과,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다양한 선율의 연주에 취하게 되는 긍정적인 공감각적 경험이 혼재한다. 파리의 지하철 역사를 디자인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전체의 다양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양성에 기초하는 예술의 기본정신만큼 표준화된 역사디자인보다는 개별성을 강조하는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현대 경제사회에서 표준화된 역사디자인은 경제성과 제작의 합리성, 디자인 품질상승 등 많은 이점을 주지만, 문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창의성이나 예술적 가치의 저하를 가져오기도 한다. 파리지하철 14호선은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운행시스템과 기술력, 표준화된 설계와 제작, 시공에 의한 경제성의 확보 위에 이들을 모두 포용하는 감성적 디자인의 방향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파리 시내에 남아있는 아르누보의 거장 엑토르 기마르(Hector Guimard)가 디자인한 포르트도핀(Porte Dauphine)역의 지하철 출입부 캐노피로 식물의 줄기와 같은 유연한 곡선의 생동감을 보여준다.

아르누보적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시내 관광유적지 부근-노틀담 성당 인근의   시떼(Cite)역 출입구-의 지하철 출입구는 과거의 양식을 재현하고 있다.

유럽의 도시는 동양의 목가구조(木架構造)와 달리 석재의 조적(組積)에 기반한 구축전통을 가지고 있다. 파리 14호선 지하철역사는 쌓아올린 석재에 의해 구축된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벽체와 천장 등 주요 마감에 적용해 자신들의 구축전통을 표현하는 동시에, 부드럽고 온화한 석재 색을 함께 활용함으로써 기능적 구조의 공간을 미적 감수성의 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곡선의 벽면은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대기와 휴식공간을 곡선의 하단부에 적절히 연계시킴으로써 영역성에 기초한 심리적 안정감과 이(離)사회적 공간에서 프라이버시를 구현하는 체계로 작동하고 있다. 

승강장과 출구통로 주변부를 살펴보면, 아치형을 활용하고 석재 조적의 느낌을 주는  마감 및 높이가 낮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통로의 느낌 등 중세건축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또 아치를 모듈화함으로써 후퇴된 공간을 형성하고 휴게의자나 각종 안내게시물을 삽입하여 동선에 방해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생라자르역의 환승통로부에 위치한 홀 공간으로 아치형과 수평벽면이 만나는 구조미를 석재 마감재로 표현하고 있다.

14호선 역사들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디자인을 공유하고 있는데, 개방감이 우수한 기둥이 없는 터널형 공간구조 속에 연속된 곡선형 파이프로 이루어진 구조체의 스크린도어가 결합되어 있다. 또 동선용 조명을 위해 매달린 구조체 역시 얇은 반원형의 형태로 변화하는 높낮이와 유동적인 공간이용자의 동선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고 있다. 19세기말 식물의 선과 같은 곡선미를 추구하는 아르누보라는 조형사조가 세계를 휘감았으며, 파리는 이의 중심도시였다. 그리고 그 전통은 지금도 도시의 곳곳에 독특한 곡선미로 표출된다. 14호선 지하철에서 보여 지는 여러 곡선형 철골 구조물들도 그러한 역사성의 현대적 맥락과 해석이다.

대형 아치형 공간속에 원형느낌의 스틸구조물을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유연한 곡선미를 선적형태로 표출하고 있다.

동선용 조명을 위한 구조물로 승강장으로부터 대합실 층까지를 유기적 곡선으로 동선을 따라 흐르는 것처럼 연결하고 있다.

14호선 생라자르역의 캐노피 디자인에서도 이러한 곡선미가 느껴진다. 기실 경제성의 측면이나 공간 점유를 고려한 합리적 측면에서도 다소 불합리한, 생산구조와 시공의 난해함이라는 측면에서도 가장 어려운 이중 곡면 구조의 형태를 구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루어내는 총체성은 도시환경에서 경험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유기적 곡선 구조물이다.

주간과 야간의 지하철 14호선 생라자르역 캐노피로, 하이테크 지향성이  주위의 전통 건축군들과는 극명하게 대비되지만 강렬한 곡선미로  과거의 건축들과 조화되어 훌륭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랜드마크를 표방하는 대형캐노피는 광장 등에서만 설치되는 것으로, 이 곳 역시 기차역 광장부이기 때문에 디자인 실현이 가능하였다.
일반적인 가로공간에서 지하철 캐노피는 지상돌출물이므로 보행자의 보행권이 우선되도록 개방성 중심의 최소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14호선 지하철의 빛은 직부등(直付燈, 줄이나 대에 매달지 아니하고 천장이나 벽에 직접 설치한 전등)이 아닌 천장을 향하는 간접조명이 모든 공간의 전반적 기초가 되고, 색채에 있어서도 주광색이 아닌 부드러운 백색과 전구빛색을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빛의 강조와 기능적 필요가 중시되는 공간에만 직부등을 설치하여 동선을 유도하는 합리성을 실현하고 있다. 빛을 다루는 원칙으로 균제성이나 무조건적 조도확보가 아닌 필요한 곳에 필요한 빛만을 제공하는 개념을 통해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파리 RER에서 보여 지는 조명 역시 그러하다. 부드러운 오렌지 조명은 우리의 기준에서는 너무나 어둡고 위험한 것으로 치부될지 모르나 지하공간이 가진 삭막함을 아름다움으로 치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며 그곳에서 속도의 공간은 느려지고 더욱 안전해진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14호선의 공간에서 또 하나의 인상적인 것은 길 찾기를 위한 시스템 중 하나로 발모양 형태의 환승사인을 제공하고 있는데, 매우 직관적인 공간인지가 가능하다.

간접조명을 원칙으로 빛을 제어하되, 동선주위 등 특별히 빛이 강조되어야 하는 지점에서만 국부조명을 활용하고 있다. 
 
RER 마젠타(Magenta)역의 조명연출 사례로 오렌지 빛으로 감성적인 빛을 연출하되, 출구부분만을 국부조명으로 강조하고 있다. 공간에서의 조명은 균질성보다는 필요한 부위에서만 밝은 것이 합리적이며 균질성을 벗어날 때 문화적 공간으로 연출된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간 지점에 복잡한 사인체계보다,
발의 모양을 가진 직관적 형식의 바닥 유도사인을 설치하고 있다.

자신들의 문화적 감성인 곡선미에 대한 지지와 영감, 석조문화의 전통에 대한 현대적 해석, 부드러운 빛의 연출과 같은 부분들을 가장 기능적이며 효율성을 중시하는 지하철에 연계하는 파리 지하철의 문화적 배려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조형적 실험 및 도전정신은 새로운 지하철 건설과 리모델링에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주요한 가치일 것이다.

글/사진 최성호 한양사이버대학교 공간디자인학과 교수

최성호 교수 약력
-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 학사
- 홍익대학교, 서울대학교 공간디자인학 석사
- 한양대학교 디자인학 박사수료
- 한양사이버대학교 연구학생처장
- (사)한국공공디자인학회 부회장
- 서울디자인위원회 위원
- 혁신도시 공공디자인 기본계획 총괄연구원
- 하남미사신도시 보금자리주택 총괄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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