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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초·중·고교로 확대되는 디자인 교육

만들며 생각, 상상한 것 실현 … 예술과 기술의 즐거운 만남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자인 교육이 확대되고 있다. 서울시내 초등학교의 90%는 올 3월부터 디자인 교과서로 수업을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디자인을 접하게 해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디자인 교육이 어린이들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게임 중독 해소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9~1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어린이 디자인 워크숍’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직접 디자인한 ‘그림 그리는 로봇’을 작동해 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원인 찾고 해결하는 과정서 창의력 자라

커피전문점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투명 컵과 모터, 프로펠러, 펜이 그림 그리는 로봇 ‘우주 강아지’로 재탄생했다. 빨대를 이리저리 연결해 보니 그네 모형이 완성됐다. 지난 9일과 10일 서울디자인재단이 마련한 ‘어린이 디자인 워크숍’에 참가한 학생들이 디자인한 작품들이다. 이날 워크숍에는 수도권 초등학생 90여 명이 참가해 각자 ‘드로우 봇(그림 그리는 로봇)’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모터에 프로펠러를 연결하자 프로펠러 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하지만 로봇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이유를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자 김동연(서울 위례초 4)군이 “진동이 없어 움직이지 않는 거야”라고 지적했다. 프로펠러 날개 하나에 동전을 붙였다. 비로소 로봇이 ‘윙’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붙어 있던 펜이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드로우 봇’ 강의를 맡은 김현곤 강사는 “무게 축을 달자 원심력이 달라져 움직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찾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자란다”고 덧붙였다.

참가 학생 대부분은 프로펠러를 투명 컵 겉면에 붙였는데 유독 김규리(서울 잠현초 6)양만 컵 안에 넣었다. 깔끔한 디자인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컵 크기에 비해 날개가 길어 프로펠러가 돌지 않았던 것. 김양은 과감하게 날개를 반 크기로 잘랐다. 드디어 성공이다. 이동경(서울 개롱초 5)군은 동전 대신 파란색 선으로 프로펠러 날개 하나를 감았다. 무게 축이 된 파란 선은 프로펠러가 돌자 푸른빛을 냈다. 과학과 디자인이 접목된 셈이다. 학생들은 워크숍 마지막 순서로 자신이 만든 작품을 소개했다. 김대현(서울 묵현초 5)군은 작품 이름을 ‘욕심쟁이 로봇’으로 지었다. 펜과 장식품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서울디자인한마당 2010’ 교육 기획을 담당하는 계원디자인예술대 백종원(어린이디자인) 교수는 “아이들은 짧은 시간에 새로운 것을 뚝딱 만들어 낸다. 금세 현상을 파악하고 이름을 짓는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 교육으로 창의성을 키우려면 만들면서 생각하고, 다시 생각한 것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 해결 능력, 통합교육, 정서에 좋아

서정대 김종석(아동학) 교수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는 창의력의 시대”라며 “창의력과 가장 근접해 있는 디자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머릿속에서 상상한 것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는 활동이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의 전문 교육뿐 아니라 유치원을 비롯한 초·중·고교까지 디자인 교육이 확대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디자인 교육은 생각을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예술’과 이를 발전시키는 ‘기술’을 습득하게 한다. 이 때문에 백 교수는 “디자인 교육이 미술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음악 등 다른 교과목과의 통합교육을 할 수 있게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에서는 학교에서 창의성 교육의 하나로, 미국과 일본에서는 통합교과 과정의 하나로 디자인을 배우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 3월부터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디자인 교과서로 창의재량 활동시간 등에 디자인 수업을 하고 있다.

디자인 교육은 ADHD나 게임 중독 치료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대개 이런 학생들의 경우 불안과 우울 증세가 있어 두세 번 정도 만든 작품을 망치곤 한다. 정서적인 안정을 찾아가기 위해 마음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둔 다음 본격적인 교육을 시작한다. 김 교수는 “마라톤 선수나 권투 선수가 경기를 시작하기 전 몸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가볍게 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그려 가는 과정에서 집중력이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완성된 작품을 보며 자존감이 높아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도 갖게 돼 점차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는 것이다.

보통 미술 교육과 디자인 교육이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둘은 조금 차이가 있다. 미술 교육이 미학을 기본으로 결과물을 중시한다면 디자인 교육은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중시한다. 백 교수는 “디자인 교육은 협업 작업이 필요해 가정에서 엄마가 직접 자녀를 교육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대신 자녀가 어려서부터 이런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다양하게 주고 많이 칭찬해주는 게 중요하다. 백 교수는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용기”라고 강조했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중앙일보] 2010.08.18 00:08 입력 / 2010.08.18 00:08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