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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디자인시대...혐오시설이 랜드마크로

사일로 하수처리장 콘크리트 기둥이 예술작품으로

공공 디자인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요즘이다.

새로 들어서는 건축물은 세련된 외관으로 도시 랜드마크를 자처하고 있고 성냥갑 아파트는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더욱 거세지고 있는 디자인에 대한 요구는 건축물 뿐 아니라 토목 구조물로 확산된지 오래다.

특히 요새 들어서는 그동안 외관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시설물까지 디자인을 1순위로 챙기고 있다. 혐오시설이라는 오명을 벗고 멋드러진 디자인을 입고 있는 것이다.
    

 △폐사일로 공모전 입상작 The Sound Wave(홍승표, hstudio, 한국)
악기의 형태를 유추시키는 형상으로, 외부 돌출된 구조물과 야간 조명계획을 통한 랜드마크로서의 기능과 연출이 돋보인다.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는 최근 폐시멘트 사일로를 박람회 상징물로 재활용하는 국제현상공모전을 개최하고 5개의 입상작과 4개의 가작을 선정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아파트 20층 높이의 사일로를 거대한 악기로 재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나오는가 하면,  태양열 타워나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조형물로 만드는 등 다양한 작품이 선보였다.

선정된 9개의 작품은 사일로를 재활용해 환경친화적 상징조형물로 재탄생시킬 뿐만 아니라 예술성, 독창성, 기능성 등도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 공모조건을 충족시키는 역동적인 작품이 많았다는 게 조직위의 설명이다.

조직위는 입상작 5개 작품의 작가들과 시공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는 2단계 지명경쟁 현상공모를 하고 최종 당선자에게 설계·시공권을 부여할 예정이다.

박람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흉물로 보일 수 있었던 사일로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발상이 인상적이다.

 △지역명소로 탈바꿈한 하수처리장

하수처리시설은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중요한 환경시설이지만, 하수처리장이라고 하면 웬지 악취가 먼저 연상된다.

그러나 최근 설계되거나 시공되는 하수처리시설은 외관의 디자인이 다른 어느 시설 못지 않게 수려하다.

올해 턴키입찰을 통해 두산건설이 수주한 평택소사벌 수질복원센터는 이른바 ‘혐오시설’인 하수처리시설을 지역 명소로 만들기 위해 문화적 색채를 최대한 담아내는 데 설계 주안점을 뒀다. 또 자연과 주민이 공존하는 ‘그린시티’의 이미지를 담아냈다.

설계를 맡은 이산 관계자는 “맑고 청정한 물로 재생되어 나가고 배움과 체험, 놀이의 공간으로 지역문화를 발전시키는 자연이 흐르는 수질복원센터를 이미지화 했다”고 설명했다.

열린 문화공간도 풍성하다. △바람의 길 △빛의 정원 △대지의 뜰 △물빛여울 등 지역 주민들의 소통공간을 곳곳에 배치한 것이다. 수려한 디자인을 입은 것은 물론 와서 즐기는 공원 같은 곳이 된 것이다.     
뚝도정수센터 조감도


삼성물산이 지난해 수주한 서울 뚝도 정수센터는 서울숲과 연계한 생태공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하면서 물을 닮은 랜드마크 시설로 설계됐다.

이 시설 역시 단순한 정수장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견학시설로도 이용될 예정이다.

아리수 체험마당과 수도박물관 등을 설치해 수돗물 교육장소로 활용하는 한편 어린 학생들의 견학을 더욱 즐겁게 하기 위해 다양한 물체험 놀이시설을 설계에 반영하기도 했다.

설계를 맡은 신우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물의 흐름을 형상화한 서울숲의 유일한 랜드마크 시설인 높이 41m의 ‘아리마루전망대’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라며 “오존공정 처리효율을 50% 향상시키고 연간 운영비도 약 3억원까지 줄일 수 있는 고도산화공정(PEROXONE AOP)을 추가하는 등 최고의 기술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콘크리트 교각이 미술작품 갤러리로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라는 지적을 받아오던 전철 교각도 산뜻한 공공디자인을 입고 있다.

부산∼김해 경전철 콘크리트 교각은 도심 속에 10여m의 높이로 세워져있는데 부산시와 현대산업개발이 이 가운데 13개 교각에 설치미술품을 부착한 것이다.

직경 2.4m, 높이 13∼17m에 이르는 콘크리트 교각 겉면에 부착될 미술품은 바퀴, 나사 등 경전철의 부속품 7개과 평사낙안(平沙落雁), 운수모종(雲水暮鐘), 금정명월(金井明月) 등 사상팔경 중 6개 풍경을 형상화했다.

디자인은 동서대 안병직(디자인학부) 교수가 속한 동서대 공공디자인ㆍ조명 연구소가 맡아 진행했다.

한성길 부산∼김해 경전철건설단 부장은 “콘크리트 고가교각이 도시의 삭막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미관을 새롭게 꾸미는 캔버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설치미술을 콘크리트 교각에 부착하는 것은 전국 최초의 시도”라고 말했다.

부산에서는 이와함께 대형 옹벽(최고높이 14m, 길이 437m)에 기존의 벽화나 타일방식이 아닌 금속재와 최첨단 LED조명 등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 선보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도시의 사람들(People of City)이라는 테마로 도시인의 하루 일상을 연출했다. 특히 지역주민들이 선호하고 참여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주민의견 수렴과정과 전문가 자문을 수차례 피드백하는 등 설계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영산강 하굿둑(1공구) 조감도

GS건설이 올해 초 수주한 영산강 하굿둑(1공구)은 둑의 기능에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가미했다.

배수갑문을 확장해 치수 안전성을 확보하고 수질을 개선하는 것이 공사의 목적이지만 전망대와 생태공원 등을 설치해 랜드마크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 랜드마크 타워는 지역의 화합을 표현하는 콘셉트를 도입해 58.35m로 세워진다.

 △지역주민과 호흡하는 공공디자인 

이처럼 혐오시설에 디자인을 입히고 콘크리트 구조물이 단순 기능에 머물지 않고 볼꺼리, 놀꺼리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이유는 설계 공모나 턴키(설계·시공일괄입찰) 방식의 입찰제도도 한몫하고 있다.

턴키에서는 시공사의 투찰 금액 뿐 아니라 기본설계에 대한 평가를 병행해 낙찰자를 결정한다. 디자인의 우수성이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평택소사벌 수질복원센터를 설계한 이산의 김봉철 이사는 혐오시설인 하수처리시설을 지역 명소로 만들기 위해 문화적 색채를 최대한 담아내는데 설계 주안점을 뒀다”며 “과거에는 하수종말처리장의 침전조 등이 외부로 유출돼있었는데 이런 시설이 지하로 가고 상부에는 조경, 공원 등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혐오시설에 디자인을 입히고, 이를 주민편의시설로 만들면 단순히 하수처리장만 짓는 것보다 혐오시설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디자인만 입히는 것을 넘어서 지역 주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지역주민 친화적인 디자인 요소와 시설이 뒷받침될 때 공공디자인이 힘을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디자인으로 설계된 ‘아름다운 화장실’과 호텔 부럽지 않은 장례식장도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용인시장례문화센터(용인 평온의 숲) 설계에 참여했던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장례시설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완화하기 위해 하나의 커다란 공원으로 조성하고 카페와 인공폭포, 조각공원 등 다양한 휴게공간을 만들어 접근성을 높이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석기자 jskim@
기사입력 2010-08-02 08:02:00  l〈앞선생각 앞선신문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