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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김신의 ‘맥락으로 읽는 디자인’ <1> 앵글포이즈 램프

꺾어지는 스탠드 원조...날것 그대로의 기계미학
김신의 ‘맥락으로 읽는 디자인’ <1> 앵글포이즈 램프

김신 | 제253호 | 20120114 입력 

1 거실용 앵글포이즈 램프도 있다. 대형 앵글포이즈를 애완동물처럼 의인화해 찍은 광고 사진. 

자녀 교육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한국의 학부모들은 아이들 공부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 한다. 학습이라는 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해 가장 친숙한 것은 책상 위 조명일 것이다.서울 을지로 조명상가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테이블 램프다. 우리 가정에 보급된 대부분의 테이블 램프는 각도를 자유롭게 조절해 빛을 통제할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한 각도 조절 램프는 우리 책상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그 원조가 앵글포이즈(anglepoise) 램프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은 어두운 방 안을 밝히는 도구인 등잔의 취약성을 말해준다. 도구의 역사를 볼 때 등불을 받치는 방식에서 등불을 매달아 등의 아랫부분을 밝히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879년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전구 역시 밑에서 받치는 방식이었다. 천장에 매다는 샹들리에도 마찬가지다. 문어 다리 같은 여러 개의 받침대가 촛불을 받쳐 천장에 반사된 빛이 아랫부분을 밝히는 원리다.전구가 발명되자 등잔 밑을 밝히는 일이 간단해졌다. 전구에 전력공급 장치인 소켓을 매달면 되는 것이다. 소켓을 천장에 매달면 펜던트가 되고, 스탠드 형식으로 매달면 테이블 램프가 된다.

2 앵글포이즈의 초창기 광고.램프가 불필요하게 눈을 부시지 않게 하고 부드럽고 집중적으로 비출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빛을 통제할 수 있게 되자 또 다른 진보가 일어났다. 스탠드의 각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빛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 그리고 집중도 향상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욕구가 작용한 결과다.각도를 조절해 빛을 모으는 조명의 원형을 제시한 것이 바로 앵글포이즈 램프다. 이 램프를 디자인한 영국의 조지 카워딘(George Carwardine)은 디자이너나 스타일리스트가 아닌 엔지니어였다. 이는 그가 아름다운 램프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카워딘은 기술자로 자랐고, 커서 자동차의 서스펜션 장치를 납품하는 부품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무게와 이동, 용수철 사이의 함수관계로 균형을 잡는 스프링 장치에 뛰어난 기술자였다.

이런 기술적 관심이 각도 조절 램프를 만들게 한 원동력이다. 앵글포이즈 램프의 핵심은 스탠드를 사람 관절처럼 유연하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특정 위치로 놓았을 때 긴장감을 유지한 채 고정시키는 스프링 장치에 있다. 이 유연하면서도 견고한 스프링 장치를 위해 그는 용수철 회사와 손잡고 1933년 첫 번째 모델인 ‘앵글포이즈 1227 램프’를 생산한다. 처음에는 산업용으로 생산됐지만 사무실과 가정용으로도 널리 보급됐다. 지금까지도 첫 모델과 거의 바뀌지 않은 모습으로 생산될 정도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3 한국 쓰리엠에서 출시한 파인룩스.4 삼정 스탠드 5 다양한 색상으로 표현한 램프의 갓.6 이탈리아 조명회사 아르테미데에서 생산되고 있는 티치오 테이블 램프. 더욱 높은 기술과 키네틱 조각 같은 외모로 디자인된 각도 조절 탁상 램프다.
 
그 뒤 수많은 모방작이 나왔지만 앵글포이즈를 뛰어넘는 각도 조절 램프는 없었다. 단, 1972년 독일의 디자이너 리하르트 자퍼가 디자인한 티치오 테이블 램프(Tizio Table Lamp)는 예외다. 티치오는 더 유연하고 견고하다. 게다가 외관상 거칠어 보일 수 있는 스프링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매끈하게 마감되어 기술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더욱 완성된 형태와 질감을 보여준다.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확고하게 고정되는 이 램프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어떤 기술적 단서도 보여주지 않아서 더욱 신비롭다.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으로 날렵하고 우아하게 디자인되어 마치 ‘쓸모 있는 키네틱 아트’처럼 보인다.

이에 반해 앵글포이즈는 티치오처럼 조각 같은 우아함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뼈대만 앙상한 몸체에 기술적인 부분, 즉 스프링 장치를 밖으로 죄다 노출시켜 거칠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야말로 앵글포이즈의 매력이다. 사실 아이폰처럼 복잡한 기능을 단순하고 매끈한 표면 속에 감추고 강렬한 소유욕을 자극하는 취향이 20세기 산업미학의 한 축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에펠탑처럼 포장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미학 또한 존재한다. 철제의 거친 질감, 노출된 스프링과 나사, 전깃줄은 이 제품을 생생한 기계로 보이게 한다. 도구가 작동하는 구조를 그대로 밖으로 드러내는 기계미학에 충실하다. 탄생한 지 8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형태 그대로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빈티지 아이템 중 하나가 된 이유다. 특히 남성들에게 호소력이 강하다.

세월이 지날수록 이 기계주의 미학은 더욱 각광받고 있다. 각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기능성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크지 않다. 그보다는 그런 기능을 낳게 한 기계적 구조에 사람들이 더 매료되는 것이다. 마치 스포츠카를 볼 때 그것의 힘과 스피드보다 그런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은, 쐐기처럼 날렵하고 도전적인 모양에 반하는 것처럼 말이다.

앵글포이즈는 그런 이성적인 기계주의 미학과 더불어 인간적인 매력까지 갖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허리를 굽혀 아기를 돌보려는 어머니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토이 스토리’로 잘 알려진 감독 존 래시터는 앵글포이즈 램프의 이런 인간적 매력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1986년 단편 애니메이션 ‘룩소 주니어(Luxo Jr.)’를 발표한다. 이 영화에서 앵글포이즈와 비슷하게 생긴 룩소 램프들은 의인화되어 공을 갖고 논다. 우리에게 낯익은 픽사(Pixar)의 바로 그 로고다.
2010년 영국 왕립우체국은 영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디자인 아이템으로 10개의 우표를 발간했다. 앵글포이즈 램프는 2층 버스, 미니 자동차, 미니스커트, 콩코드 비행기, 펭귄북스, 런던 지하철 지도, 빨간 공중전화 부스 등과 함께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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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은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7년 동안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