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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재밌는 집, 그곳선 추억이 뭉게

[집이 변한다] [4]
문훈씨의 청원 '파노라마 하우스' - 철저히 아이들을 위한 설계… 나무계단엔 미끄럼틀, 책 가득… 집이 무뚝뚝할 필요 있나요

집 현관문을 열자 나무 계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계단 사이엔 동화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이 '계단 책장'에 설치된 미끄럼틀을 아이들이 분주히 오르내린다. 어린이집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사는, 진짜 집이다.

여기는 충북 청원군 오창과학단지 내에 있는 소영이네 여섯 식구의 집, '파노라마 하우스'. 건축가 문훈(44·문훈발전소 소장)씨가 지난해 설계한 주택이다. 문씨는 '안 튀고는 못 사는 건축가'로 불린다. 뿔 난 황소처럼 생긴 정선의 펜션 '락잇수다', 콘크리트 요새 같은 홍대 앞 '상상사진관' 등 별난 건물을 지어왔다.

"집이 관념적이고 무뚝뚝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감상하라고 짓는 게 아니라 살라고 짓는 거니까요. 집도 재미있어야죠." 최근 파노라마 하우스에서 만난 문씨는 건축에 깊게 밴 엄숙주의를 떨쳐내려 했다. 검정 트레이닝 바지 차림의 그는 "놀이를 할 수 있는 복합 공간이라는 의미의 '플레이하우스(Playhouse)' 개념으로 집을 설계했다"고 했다. 미끄럼틀이 달린 계단 책장이 그 요체다. 이 계단은 영화관으로도 변신한다. 계단에 앉아 반대편 벽의 스크린을 내리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문훈씨가“놀이터 같은 집”을 콘셉트로 설계한‘파노라마 하우스’내부. 1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 대신 이 계단이 나타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겸 책장에 앉아 아이들이 자유 롭게 책을 보고 있다. 왼쪽 아래 작은사진은 문훈 씨 /문성광씨 제공

연면적 221㎡(약 66평·다락방 포함)의 이 2층 집은 철저히 아이들을 위해 설계됐다. 건축주인 부부 교사 문성광(43·미술 교사), 이계은(38·윤리 교사)씨는 자녀 넷과 함께 살 수 있는 단독주택을 오랫동안 꿈꿔 왔다.

"청주 시내 아파트 8층에 살았는데 층 간 소음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가 없었어요." 부부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유년 시절 집에 대한 좋은 추억을 심어주려고 5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했다"고 했다. 이들은 '땅콩 주택'(한 필지에 닮은꼴로 나란히 지어진 두 가구의 집)에 관심을 갖고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니다가 건축가 문씨를 알게 됐다. 둘은 몇 년 동안 스크랩한 건축 정보를 가지고 문씨의 서울 사무실을 찾아갔다.

"집에 대한 건축주의 생각이 명확했어요.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같은 집, 바깥 조망을 살릴 수 있는 집을 설계해달라더군요. 준비된 건축주여서 작품을 위해 건축주가 희생한 것도, 건축주를 위해 건축 작품이 희생한 것도 아니었어요. 대중성과 예술성이 적절히 절충된 집이죠."

문씨는 "일반적인 주택의 구조를 풀어헤쳐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계단식 책장을 두기 위해 거실 겸 주방은 2층으로 올렸다. 계단 옆엔 대형 칠판을 둬 아이들이 자유롭게 메모할 수 있게 했고, 계단 뒤엔 책상을 뒀다. "아이들이 심심하다는 얘기를 안 해요. 집이 아이들을 변화시켰어요." 건축주 부부가 웃었다.

 
파노라마 하우스 외관. 박공지붕(삼각형 지붕)이 연속되는 형태를 건물 앞면과 지붕에 적용했다. /사진가 박영채

조망과 동선을 고려해 방은 앞에서 봤을 때 옆으로 길게(24m) 일직선으로 나열했다. 크기가 서로 다른 창 10여 개를 전면에 뚫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파노라마 하우스'라는 집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외관을 보면 '문훈표 주택'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박공지붕(삼각형 지붕)을 연속한 형태가 건물 앞면과 지붕에 적용돼 한눈에 튄다. 외벽 아래는 제주도산 현무암으로, 위는 흰색 페인트로 도장했다. 문씨는 "개성 있으면서도 실용적인 집을 추구했다"며 "효율적인 냉난방을 위해 창만 비싼 제품으로 했고 나머지 바닥재와 벽지는 저렴한 것을 사용했다"고 했다. 공사비는 평당 450만원 정도 들었다.

"너무 비싼 집, 위압적인 집, 이웃이 주눅 들게 하는 집은 싫었어요. 아파트는 불편한 기성복 같았는데 이제야 우리 가족에게 꼭 맞는 맞춤복 같은 집을 갖게 됐네요." 함박웃음 짓는 부인 이씨의 등에선 돌배기 막내아들 강희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재밌는 집, 그곳선 추억이 뭉게 ▲ ㅣ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2.02.03 03:08 | 수정 : 2012.02.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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