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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회

[부일시론]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회 

/김재명 부산디자인센터 원장 
 
신이 만든 것이 자연이라면 인간이 만든 것은 모두 디자인이다. 애플 CEO인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은 사람이 만든 피조물의 가장 근원적인 영혼"이라고 했다. 지금은 코드(code)의 사고가 바탕이 된 디지털 이미지가 넘쳐나고, 세상 곳곳이 디자인으로 입혀지고 있다. 인간은 이렇게 디자이너가 만든 정보나 상품으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변함없이 특이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모색한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밤낮없이 소비자나 사용자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문제 해결을 찾고 발견하는 데 몰두한다. 또한, 디자이너들은 인간 모두가 건강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생활 환경을 계획하는 것이야말로 디자인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생활 누리게 해야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 활동했던 레이먼드 로위나 노먼 벨 게데스는 '시간과 경제적 비용을 전제한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려고 노력하였고, 독일 바우하우스의 교수들은 혁신적인 디자인 교육을 통해 인재양성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을 선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5세기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이라는 새로운 글꼴을 디자인해 세상에 내놓으면서 백성 모두가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렇게 디자인은 하찮은 일회용 종이봉투에서부터 최근에 등장한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사고나 생활변화 그리고 요구에 따라 언제나 변화를 거듭해 오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디자인은 인간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사회를 발전시키고 인간과 사회를 소통케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의 현실은 디자인의 가치나 디자이너의 활동 그리고 이로 인한 성과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톰 피터스도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주장해 왔는데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질책하였다.

디자인 선진국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세계 100대 디자이너가 한 명도 선정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디자인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재능 많고 창의적인 젊은 디자이너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만 명이 넘는 디자인 전공자가 배출된다. 또한 세계 9위권의 디자인 선진국이라는 지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정작 디자이너가 창의적으로 일할 일자리가 없고, 디자이너의 처우는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바닥 수준이다. 디자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전면에 나서야 함에도 중소기업 대부분이 아직까지는 기술개발이나 디자인 투자를 주저하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에서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 독일의 핵심 동력은 기술수준이 뛰어난 중소기업이 많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당연히 디자이너의 일자리가 많고 처우도 좋다.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활동에는 안정적인 처우나 환경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디자이너의 경험과 안목이 높아질 때 그에 따른 디자인의 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창조도시 부산은 디자인에 달려 있다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가구디자인박람회에 다녀왔다. 매년 세계 각국의 관심 속에서 열리는 밀라노 국제가구디자인박람회는 올해로 49년의 역사를 맞이했다.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와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더욱 화려한 면모를 드러낸 국제가구디자인박람회는 올해의 테마인 부엌가구와 욕실제품 부문에서 특별히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 신세대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마련된 특별관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재미있고 상큼한 발상과 함께 기발하고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가구박람회와 함께 진행되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경우 디자인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시민이나 외국방문객도 함께 하는 '디자인축제'로 인식되어 있다. 전시가 열리는 기간 내내 도시 곳곳을 둘러보며 너무나 쉽게 디자인을 접하고 즐길 수 있다. 이탈리아 디자인은 소수의 관심이 아닌 범국민적 관심과 세계적인 기대 속에서 발전해 왔고, 디자인이 축제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탈리아 디자인이 가지는 힘의 원천 아니겠는가?

어느 때부터인가 창조도시를 선포한 부산, 우리의 미래는 디자인을 사용하는 사람들, 즉 시민들과 기업들의 가치관에 의해 선택될 것이다. 우리는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해 얼마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가? 그리고 투자하고 있는가? 이는 곧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것이다. 

부산일보 | 14면 | 입력시간: 201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