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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시론] 양날의 칼 `디자인권 보호`

삼성·애플 분쟁 모방판단 곤란…지나친 보호는 경쟁기회 박탈
창의성 제약 않는 판결 나오길

정경원 < KAIST 산업디자인학 교수 >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할 때 디자인을 중시하는 경향이 늘면서 디자인을 지식재산권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디자인 교육기관에서도 '디자인 보호'나 '디자인과 법'과 같은 이슈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디자인은 정량화하기 어려운 창의성과 심미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모방 여부를 가려내기가 매우 힘들다.

요즘 삼성전자와 애플의 법적 분쟁도 같은 맥락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지난 4월 애플은 삼성 갤럭시 탭의 외관과 아이콘,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이 자사의 디자인과 '트레이드 드레스(상품외장)'를 침해했다며 미국 독일 일본 네덜란드 호주 등 주요 국가의 법원에 제소했다. 주요 제소 사항은 네 모서리가 동일한 곡선으로 처리된 사각형태,제품 전면의 평평하고 깨끗한 표면의 덮개,그 덮개의 주변을 두른 금속 모서리의 외관,깨끗한 표면의 밑에 있는 디스플레이 스크린 등이다. 매우 포괄적이라 권리 침해 여부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트레이드 드레스의 본질적인 취지에 비춰볼 때,이번 분쟁의 핵심 이슈는 삼성이 의도적으로 애플 제품을 모방한 디자인을 해 소비자들이 혼동을 일으키게 했는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다. 다시 말해,아이패드를 사려는 소비자들이 오인해 갤럭시탭을 구매하게 하려는 의도로 디자인을 모방했느냐는 것이다. 트레이드 드레스의 목적은 소비자들이 특정 회사의 것으로 인식하는 제품이나 패키지 등의 시각적인 특성을 보호함으로써 소비자가 어떤 제품이라 믿고 다른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트레이드 드레스는 코카콜라 로고와 색채 및 병의 디자인,버거킹의 매장 스타일,KFC의 마스코트처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돼 이미 디자인권이나 저작권이 소멸된 지적 자산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점차 치어리더의 복장이나 트럭의 외관,웹사이트의 스타일도 보호 대상이 되는 등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하면 이번 소송은 애초부터 논쟁의 여지가 많을 것으로 보였다,왜냐하면 두 회사의 제품을 동시 비교해보면 가로 세로의 비율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1의 규격은 242.8?C189.7?C13.4㎜인 반면,갤럭시 탭 7.0은 193.7?C122.4 ?C9.9㎜로 크기와 두께가 현저히 다르다. 무게도 아이패드 1은 730g,갤럭시 탭 7.0은 345g으로 역시 차이가 난다. 양사의 후속 모델인 아이패드 2(241.2?C185.7?C8.8㎜,607g)와 갤럭시탭 10.1(256.7?C175.3?C8.6㎜,565g)에서도 그 차이가 이어진다. 두 제품을 보고 소비자들이 혼동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소송의 결과도 나라마다 다르다.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애플이 제기한 가처분 소송에 대해 삼성의 갤럭시탭,갤럭시S2 등이 디자인을 모방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반면에 독일 뒤셀도르프 지방법원은 애플의 권리가 보호돼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현상은 트레이드 드레스의 침해에 대한 판단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트레이드 드레스는 디자인을 보호해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자칫 자유로운 경쟁의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다. 첨단 디지털 제품의 경우 트레이드 드레스를 너무 포괄적으로 적용하면 창의적인 디자인 개발이 제약받을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한 소송으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되고,자칫 소송에서 패하면 엄청난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등 양날의 칼과 같다. 세계 초유의 디자인 분쟁을 보면서 솔로몬의 지혜 못지않은 국내외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이 기대된다.

정경원  < KAIST 산업디자인학 교수 >

기사입력: 2011-11-08 17:17 / 수정: 2011-11-09 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