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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style&] 불황이 바꾼 패션, 편한 옷이 대세

‘뉴욕 패션 위크’로 가늠해본 내년 봄·여름 유행

2012년 봄·여름에는 어떤 옷이 유행할까? 이달 8일(현지시간)부터 1주일간 진행된 ‘뉴욕 패션 위크’를 보면 어느 정도 그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패션위크에 참가한 200여 명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무대에서 내려와 바로 거리로 나가도 자연스러울 만큼 ‘실용적인 옷’을 강조했다. 난해한 장식을 배제한 간결하고 섹시한 원피스부터 가볍고 발랄한 스포츠 점퍼까지 누구라도 입기 쉽고 편한 옷들을 주로 선보인 게 특징이었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소비가 줄면서 디자이너들이 ‘팔리는 옷’에 집중했다는 분석이다. 뉴욕 패션쇼 현장을 찾아 6개월 후 만나게 될 봄·여름 옷을 미리 살펴봤다.

뉴욕=서정민 기자 사진 협조=트렌드포스트

기성 디자이너, 고급스러운 섹시미에 주목

1 ‘여성스러움’과 ‘스포티한 매력’을 조합한 대표적인 옷. 카바레 무희들의 의상처럼 층층이 주름잡힌 치마에 운동복 같은 스웨트티셔츠와 머리띠를 매치시켰다. 마크 제이콥스. 2 가슴과 허리 라인에 들어간 여러 줄의 절개선과 주름으로 입체감은 물론 섹시함까지 부각시켰다. 캘빈 클라인.이번 뉴욕 패션위크에서 디자이너들이 제시한 2012년 봄·여름 옷의 주제는 크게 ‘여성스러움’ 또는 ‘스포티함’이다.

기성 디자이너들은 ‘고급스러운 여성미’에 포커스를 맞췄다. 랄프 로렌의 무대가 대표적이다. 랄프 로렌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위대한 개츠비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길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드레스와 통 바지를 주로 선보였다. 들판에서 소풍을 즐기는 상류층의 한가로운 풍경을 옮긴 듯 부드러운 분위기의 꽃무늬 치마와 스카프들도 등장했다. 미니멀리즘(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절제미를 살린 패션)의 대가인 캘빈 클라인은 요란한 프린트나 장식을 배제한 채 모던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들을 주로 선보였다. 가슴과 허리 부분에 절개선이 많이 들어간 원피스들은 코르셋·슬립 등의 속옷이 연상될 만큼 보디라인을 잘 살린 디자인으로 섹시함을 부각했다.

도나 카란과 마이클 코어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역시 고급스러운 여성미에 주력했지만 추구한 이미지는 조금 달랐다. 이들은 오렌지·빨강·노랑 등의 원색 컬러를 많이 사용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얻은 얼룩말, 원시 벽화 무늬 등을 대담하게 도입해 강렬하고 자극적인 섹시함을 표현했다.

아시아계 신진 디자이너들의 ‘스포티 룩’ 강세

3 무릎까지 올라오는 글래디에이터 스타일 샌들과 뱀피 무늬 수영복으로 섹시함을 강조했다. 마이클 코어스. 4 원시적인 벽화 무늬 등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얻은 프린트를 선보였다. 도나 카란. 5 산악 자전거·자동차 경주 등 익스트림 스포츠 유니폼에서 영감을 얻은 스포티 룩. 알렉산더 왕. 6 원피스와 클러치 백에 동일한 무늬를 넣어 통일감을 줬다. 다이앤본 퍼스텐버그. 7 부드러운 파스텔 계열과 잔잔한 꽃무늬로 고급스러운 여성미를 표현했다. 랄프 로렌.

알렉산더 왕(중국), 제이슨 우(대만), 필립 림(캄보디아). 최근 뉴욕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신진 디자이너는 이들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이번 패션위크 기간 중에도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았다. 아시아계이지만 이들의 디자인에서 동양문화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우아한 오피스 룩인 동시에 자유분방한 캐주얼 패션의 매력까지 갖고 있는 게 이들 옷의 특징이다.

이들은 이번에 ‘스포티 룩’에 관심을 보였다. 산악자전거와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 룩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알렉산더 왕은 몸에 꼭 맞는 레깅스와 바람막이 점퍼를 응용한 상의들을 대거 선보였다. 운동을 막 마친 듯한 모델들은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보디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실루엣을 강조했다.

제이슨 우는 펜슬 스커트·바지(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폭이 좁은 스커트와 바지), 러플 블라우스, 테일러드 재킷 등 도시의 전문직 여성들이 선호하는 모던한 의상에 비닐 소재의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모델들을 무대에 세웠다. 필립 림 또한 모던하고 여성스러운 레이디라이크 룩에 불투명한 비닐 점퍼 또는 티셔츠를 조합해 또 다른 스포티 룩을 제안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매 시즌 독특한 컨셉트를 제시해온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역시 이번에 여성스러움과 스포티의 조합을 강조했다. 무희들의 의상처럼 여러 겹으로 층층이 나뉜 여성스러운 스커트에 평범한 스웨트티셔츠(일명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의상을 자신의 ‘2012년 키워드 룩’으로 꼽았다.

각양 각색의 가방과 소재 선보여

경기 침체로 줄어든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뉴욕의 디자이너들은 ‘가방’에서 해결책을 찾은 듯 보인다. 여성의 소비 성향이 계절에 맞춰 명품 옷을 구입하기 보다 계절에 상관없고 스타일링 효과도 확실한 가방 구매 쪽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디자이너에겐 가방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이번 뉴욕 패션위크 무대에도 각양각색의 가방이 줄줄이 등장했다. 작은 클러치부터 여행용 빅백까지 사이즈는 물론이고 뱀피부터 캔버스까지 소재도 다양했다.

의상에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것도 이번 뉴욕 패션위크의 특징 중 하나. 여름용 가죽과 스웨이드, 헐렁하고 풍성한 느낌의 니트 스웨터가 사용된 것은 가벼운 수준이다. 레이스 대신 새의 깃털이 나풀거리도록 디자인된 스커트도 여럿 보였다. 엘리 타하리처럼 가벼운 실크와 면 소재에 뱀피 무늬를 프린트한 경우도 있다. 디젤 블랙 골드 무대에선 금색·은색 등의 반짝이는 소재로 표면을 가공한 데님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아예 투명 비닐을 레이스나 망사처럼 이용해 스커트와 원피스를 만들기도 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1.09.28 00:08 / 수정 2011.09.28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