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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이 화장실 냄새가 난다… 디자인 냄새가

공중 화장실 시리즈로 '젊은 건축가상' 수상… 화장실 건축가 김창균
공중 화장실이 보잘것없다? 남녀노소 모두가 이용하는 공공 건축의 시작…
화장실부터 조금씩 바꿔보라, 동네 문화 수준이 높아질 것

"와, 바로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던 집처럼 생겼어. 자연 속에 파묻혀서 소통하는 것 같은…. 나중에 우리 집 지을 때 이렇게 좀 지어줘."

한 젊은 건축가가 만든 작품을 보고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친구가 집의 이상형이라고 언급한 건물은 집이 아니었다. 서울 남산야생화 공원 안에 있는 공중 화장실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건축가는 진짜 이 화장실과 비슷한 집을 짓게 됐다. 친구의 집이 아니라 친구 누나의 집이지만.

이 '집 같은 화장실'을 설계한 사람은 건축가 김창균(40·유타건축 대표·사진)씨다. 그는 '화장실 건축가'로 불린다. 서울 남산야생화 공원, 남산 장충체육회 화장실, 상계동 상상어린이 공원 화장실, 비석골 공원 화장실 등 4개의 화장실 연작을 통해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재료의 성질과 공간적 움직임에 독자적인 관점을 결합시켜 화장실에 대한 기존 통념을 뒤집었다"고 평했다.

"공중 화장실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남녀노소 모두가 이용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공공건물이다. 어떤 공공 건축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난주 남산야생화 공원 화장실에서 만난 김씨는 화장실 가리개 아래 벤치에 앉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화장실도 만남의 장소, 쉼터 역할까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 산책길의 연장선으로 만든 서울 남산야생화 공원 화장실. 주변 환경을 고려해 한눈에 띄는 형태 대신 노출 콘크리트로 외벽을 만들어 자연에 파묻힌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화장실 옆 회색 외벽을 캔버스 삼아 향나무가 가지런히 서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그가 화장실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장소성'이다. 주위 환경과 어우러지고 가급적이면 주변 공간에 사용된 재료를 화장실에 써서 시선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한다. 김씨는 "지자체에서 화장실을 의뢰해서 가보면 하나같이 한옥이나 오두막 같은 화장실 아니면 피아노나 변기 모양 화장실처럼 한눈에 띄는 디자인을 원한다"며 "과한 디자인에 익숙한 담당자들을 설득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고 했다.

2009년 건축사무소를 연 뒤 처음 맡은 프로젝트인 남산야생화 공원 화장실은 '자연의 연장(延長)'을 주제로 삼았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동 사이에 폭 3m 정도의 빈 공간을 둬 화장실 뒤편에 있는 나무가 보이도록 했고,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길 끝도 틔워 화장실 옆쪽 숲길이 배경처럼 보이게 했다. 화장실 사이사이로 숲이 들어온 듯하다. 외벽은 자연 소재인 노출 콘크리트로 담백하게 만들어 화장실 주위의 느티나무와 향나무가 마치 회색의 캔버스를 배경 삼아 서 있는 것 같다. 김씨는 "화장실에 작은 산책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설계했다"고 했다.
 

▲ 테트리스 게임 조각 2개를 끼워 넣은 듯한 형태의 상계동 상상어린이 공원 화장실.

월계동에 있는 비석골 공원 화장실은 주변에 돌이 많은 환경을 고려했다. '비석이 세워져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비석골 명칭과 어울리도록 벽돌로 정갈한 형태의 직육면체 매스(덩어리) 3개를 나란히 배치했다. 어렸을 때 했던 비석치기의 추억을 떠올린 디자인이다. 남산 장충체육회 화장실은 자연과 건물이 소통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하기 위해 화장실 천장을 요철 형태로 올록볼록하게 만들었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동시에 기능적인 면도 고려했다. 어린아이와 장애인이 쓰는 다목적 화장실 천장은 높게 만들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의 양이 많도록 했다.

흉물이었던 놀이터 화장실을 리모델링한 상계동의 상상어린이 공원 화장실은 테트리스 게임에 등장하는 조각 2개를 끼워 넣은 듯한 형태다. 컬러도 강렬한 주황색과 하얀색을 섞어 화장실 자체가 하나의 놀이 기구처럼 보인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표피"라는 설명이다. 한때 범죄의 온상이었던 화장실이 리모델링으로 이 지역의 아이콘 같은 존재가 됐다.
 

▲ 비석골이라는 지명에서 착안해 벽돌로 외벽을 쌓고 건물 사이에 나무를 넣은 비석골 공원 화장실. /김창균씨 제공

김씨는 "공중 화장실이 문화 지형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까지 지녔다"며 일본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를 예로 들었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의 제안으로 공공화장실, 다리, 경찰서 등 구마모토 지역의 소소한 공공시설을 건축 작품으로 만들어 관광 상품화한 프로젝트다. 그는 "동네의 문화 수준을 높인다고 모든 동네에 '예술의 전당'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공중 화장실처럼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작은 공공시설들을 조금씩 바꿔 나가면서 동네 풍경을 문화적으로 진솔하게 가꿔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스스로를 '동네 건축가'라고 부르는 그는 "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는 화장실을 만드는 게 꿈"이라 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1.08.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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