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sign Trend/환경

[오피니언] 랜드마크는 높이가 아니라 디자인이다

“나는 건축의 위대성, 건축의 미학적 수준 그리고 위대한 국민성 사이에는 직접적 관계가 있다고 확신한다. 건축은 나를 항상 감탄하게 하고 예술 중에서도 첫 번째이다. 뿐만 아니라 유용한 예술이다.”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프랑수아 미테랑은 자신의 건축적 철학을 이처럼 표현했다.

1981년 미테랑은 중국계 미국 건축가 페이(I. M. Pei)의 설계안을 채택해 루브르 박물관의 뜰에 유리 피라미드를 설치하려 했다. 800여 년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루브르에 손을 댈 경우 고전미를 해친다며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우여곡절 끝에 유리 피라미드가 완성돼 그 모습을 드러내자 전 세계는 극찬을 보냈다. 21m 높이, 600여 개의 유리 패널로 구성된 피라미드 모양의 건축물로 인해 옛것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조합된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미테랑은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해 그랑 프로제(Grand projects)를 시작했다. 유리 피라미드를 비롯해 프랑스 대혁명에 불씨를 당긴 바스티유 감옥 자리의 오페라극장, 가운데가 뚫린 정육면체 형태의 신개선문, 책을 펼쳐놓은 형상의 국립도서관 등이 그 일환이다. 이들을 통해 아름답고 의미 있는 옛 건축물들을 보존하면서도 파리의 도시경관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된 이 건축물들을 보려고 오늘도 몰려들고 있다.

요즘 제주도에서도 랜드마크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40m 높이의 해녀 조형물 건립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해녀상은 전망대, 영상실, 체험실 등 실내공간을 갖춘 관광지로 운영될 계획이라고 한다. 해녀박물관 외에 특별히 해녀를 대표할만한 상징물이 없기에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기본개념으로 한 초대형 해녀상을 건립해 랜드마크로 삼자는 것이 추진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제주 해녀의 문화적 가치를 키우자는 의미에는 공감하지만, 상징성 확보를 위해 거대한 높이만을 강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랜드마크는 ‘어떤 지역을 식별하는데 목표물로 적당한 사물로서, 주위의 경관 중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쉬운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많은 사람들이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는 이른바 ‘거기’가 랜드마크일 수 있다. 대개 가장 눈에 띄는 곳을 약속장소로 정해야 오류를 범하지 않으니 말이다.

제주도에서는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 해녀상처럼 크기나 높이를 강조하는 방법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어떤 유명 건축가는 “제주도에는 한라산 외에는 랜드마크가 될 수 없다.”라는 말까지 하기도 했다. 얼핏 “건축물은 랜드마크가 될 수 없다.”라는 의미로 들리기도 하지만, 거대한 건축물이나 높다란 기념탑 등은 도시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며 우리 주변 적재적소에 알맞게 자리한 의미 있고 적당한 규모의 건축물이 더욱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트레비 분수가 전 세계인을 이탈리아로 이끌고 있듯 굳이 크고 높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스토리가 있는 랜드마크는 한 도시와 나라를 상징할 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까지 새롭게 창조하고 아우른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처럼 참신하고 새로운 건축형태, 피사의 사탑처럼 역사적 유물 역시 훌륭한 랜드마크이다.

이처럼 가치 있는 건축물 하나가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이끌어 나간다. “랜드마크는 높이가 아니라 디자인이다!”라는 파리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리처드 로저스의 말처럼,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특성을 반영해 아름답게 디자인된 건축물이야말로 지금 제주에서 필요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랜드마크이다.

박철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2011.08.17   제주일보 | webmaster@jejunews.com
ⓒ 제주일보(http://www.jeju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