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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국산차로 보는 자동차 디자인 변천사②

1970∼80년대 차산업 태동기, 고유 모델 포니 탄생…쐐기형이 대세 

< 글 싣는 순서>
① 한국, 해외 완성차 브랜드의 각축장(1950년대∼60년대)
② 차 산업 태동기-고유 모델 포니 탄생(1970년대∼80년대)
③ 글로벌 산업으로 도약(1990년대∼현재)

[정수남기자] 1970년대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종전 수입 산업에서 미약하마나 수출 산업으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1974년 당시 현대차는 뉴코티나로 내수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했지만, 1970년부터 포드와 추진했던 합작 계약이 1973년 초 결렬되면서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절실했다.

또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 정책 선언을 통해 1980년대 경제지표 중 자동차 국내 생산을 50만대 이상으로 끌어 올린다고 발표하자 당시 고(故) 정주영 현대차 사장은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에 따라 고 정 사장은 같은 해 자동차 독자개발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소형차 개발에 전력투구 했다.

당시 회사 내부적으로는 자본금 17억원에 불과한 현대차가 300∼400억원의 개발비가 들어가는 소형차 개발 사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정 사장은 특유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방식으로 한국형 고유모델 개발에 착수한 지 1년6개월, 차 설계를 시작한지 1년여 만인 1974년 10월 고유모델 설계를 마쳤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는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자동차 고유모델을 갖는 영광을 대한민국에 안겼다. 포니의 국산화율은 90%. 또 포니는 현대차의 국내 시장 독주를 알리는 첨병으로 자리 잡았다.

쿠페 형식의 포니는 1천300cc급으로 설계됐으며,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맡았다.

당시 유선형 차량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포니의 직선형 스타일을 '꽁지 빠진 닭'에 비유했다. 1970년대 등장한 해치백 스타일의 '쐐기형 디자인'은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리는 고속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쐐기형 디자인은 고속으로 달릴때 생기는 부력과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디자인으로 1970년대 초반 오일쇼크로 인한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주행저항, 공기저항, 진동저항 등을 줄이기 위해 차량 후면부를 생략했다.

포니는 1974년 10월 55회 토리노 모토쇼에서 출품됐으며, 1970년대 초 1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소형차 선호 붐이 불면서 국내에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현대차는 자동차 공장 건설에 매진, 1975년 12월 울산공장에서 50대의 포니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현대차는 1976년에 본격적인 포니 양산체제를 갖추었으며, 같은해 7월 에콰도르에 5대의 포니를 수출하면서 차산업의 수출산업으로의 전환을 알렸다.

1903년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인 고종황제의 어차 '포드T'가 국내에 소개된지 73년만이다.

당시 국내에 선보인 기아차의 1천cc급 브리샤(1974년), GM코리아의 카미나(1976년), 새한의 제미니(1977년) 등과 비교해 포니는 스타일, 엔진성능, 주행성능, 경제성, 사후서비스 등 다방면에서 단연 돋보였다.

포니는 직렬4기통 1천238cc 새턴엔진에 80마력의 힘을 지녔다. 포니는 배기량에 비해 엔진추력이 커서 고속주행과 등판 능력이 좋고 기동성이 우수해 신호등이 많은 도심에서 유리했다. 또 배기량에 비해 큰 출력은 하루 400km 이상 달려야 하는 영업용차의 운행조건을 만족, 포니는 택시기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현대차는 포니의 차가격을 당초 228만9천200원으로 정했으나, 비싸다는 여론을 감안해 출고 10일을 앞두고 영업용은 204만7천300원, 자가용은 227만3천270원으로 각각 정했다.

포니는 첫해 1만726대가 팔려, 기아차의 브리샤(6천916대)를 제치고 단숨에 승용 시장 1위를 거머 쥐었다. 또 포니는 한국의 차 시장이 소형차 중심으로 전환하는 전기가 됐다.

1976년부터는 세계 경제의 호황으로 국내 경기도 활기를 띠었다. 이후 현대차는 4도어 세단 포니외에도 3도어 해치백, 왜건, 픽업 등으로 다양화하고 엔진도 1천238cc와 1천439cc 등 두 가지로 늘렸다.

아울러 현대차는 자동변속기도 적용하고, 내외장에 변화를 주는 등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하는데 주력했다.

1978년 2월 포니는 단일 차종으로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생산대수 5만대를, 같은해 12월에는 생산 10만대를 각각 돌파했다.

현대차는 1982년 외관을 둥글게 처리한 포니2, 1983년 5마일 범퍼를 단 포니2CX를 각각 출시했다. 캐나다 수출 모델인 포니2CX는 1984년부터 캐나다에서 판매됐으며, 수입차 시장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포니는 1985년 엑셀이 나온 뒤에도 인기는 여전했으며, 1990년 단종될 때까지 15년 동안 모두 66만1천510대(연간 6만6천151대)가 팔리는 등 전설적인 베스트 셀링 카의 반열에 올랐다.

또 현대차는 새한의 뉴 레코드에 맞서기 위해 포드가 1975년 내놓은 1.7리터(ℓ)의 배기량을 가진 그라나다 V6도 시판했다.

기아차는 1970년대 말 글로벌 경기 호황에 힘 입어 국내 경기의 호조로 중형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푸조606도 내놓으면서 중형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밖에 기아차는 1천995CC의 피아트 132를 출시했으나, 기아차 전성기는 1981년 출시한 배기량 2천209cc(70마력,110km/h)의 봉고와 1987년 3월 선보인 프라이드로 맞는다.

아울러 1980년대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전성시대를 예고하는 시기로 현대차 스텔라(1983년), 쏘나타(1985년, 스텔라의 최상급), 그랜져(1986년), 기아차 콩코드(1987년) 등이 속속 등장했고, 대우의 로얄(1980년) 시리즈와 전설적인 모델 르망(1986년)도 국내 차산업에 한 획을 그었다.

김필수 교수(대림대 자동차학과)는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차제라인을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으로 처리, 날렵한 스타일의 자동차가 인기를 끌었다"며 "이들 차량은 앞유리가 운전자의 머리부터 휘어져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뒷유리 역시 차체와 함께 완만한 경사로 바람에 의한 요동이나 소음을 줄여,'에지타입(UFO)'으로 불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에지타입 디자인은 스포츠카에 주로 쓰였으며, 1970년대 유행한 쐐기형 스타일의 자동차는 지금도 종종 출시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수남기자 perec@inews24.com

2011.08.07, 일 12: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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