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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디자인경영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는

지난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일선에 복귀하면서 가장 먼저 서초동 디자인센터를 찾았다. 지난달 초에도 예고도 없이 "디자인센터로 가자"며 발걸음을 돌려 직원들이 상당히 당황해했다(?)는 후문이다.

비단 삼성뿐 아니라 대다수 국내외 기업들이 업종을 불문하고 디자인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래 성장을 이끌 `차별화`의 답을 디자인에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트렌드는 이미 십수년 전에 예고됐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영학자 허버트 사이먼 교수는 "모든 조직이 혁신을 한다며 모든 것을 바꿔 보지만 결국 근본적인 차별(difference)은 없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디자인 혁신"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현재 디자인 경영의 주류는 `감성 디자인(Emotional Design)`. 이는 시장의 변화, 소비자의 변화, 그리고 가치의 변화와 맞물린 꽤 심오한 흐름이다.

◆ 감성을 울리는 껍데기를 원한다

= 제품의 디자인은 스타일에서 기능으로, 이후 감성적 니즈(Emotional Needs)를 중시하며 발전해 왔다.

남에게 얼마나 멋지게 보이느냐, 품질이 얼마나 훌륭한지가 과거의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소비자의 오감을 자극하고 즐거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특별한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디자인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감성 디자인은 소비자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케팅의 대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그의 책 `마켓 3.0`에서 소비자를 이성뿐 아니라 감성과 영혼을 지닌 전인적인 존재로 정의했다. 오히려 이성보다 감성과 영혼이 갖는 힘이 더 커지면서 `감성공감시대`가 도래했고 기업에는 `브랜드 소울(Brand Soul)`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문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감성 디자인이 각광을 받는 이유로 기술의 발달과 세계화를 꼽는다. 그는 "기술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발달했고 시장이 하나로 개방된 마당에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제품의 껍데기, 그것도 감성을 울리는 껍데기"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제품이 어째서 좋은지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는다. IT기기나 통신 서비스 회사들이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정(情)이고 어려움을 극복해 낸 감동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다.

디자인 역시 갈수록 직관적, 인간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광고 기획사 이노션의 김근한 디자인 소장은 "과거엔 금속적이고 직선적이며 복잡한 디자인이 첨단으로 불렸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고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다"고 전했다. "직관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쉬운 디자인이 첨단 디자인"이라는 얘기다.

◆ 감성 디자인, 직관의 과학

 = 애플의 `아이맥(imac)`은 감성 디자인의 현주소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모니터와 본체를 하나로 연결한 이 컴퓨터는 사용자들을 심란하게 했던 수많은 연결 선들을 모두 없애고 파워코드 딱 하나만 연결하도록 디자인됐다. 모니터에는 음량이나 화면밝기 조절버튼은 물론 전원버튼조차 없다. 전원버튼은 모니터 뒷면 아래에 잘 숨겨져 있다. 아이맥은 소비자들이 어떤 감정적 거슬림도 없이 단번에 제품의 단순함과 순수함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스토리가 있는 디자인이 각광받는 것도 감성 디자인 트렌드와 상통한다.

이탈리아의 디자인 거장 알렉산드르 멘디니는 자신이 디자인한 와인 오프너에 아내 `안나(Anna)`의 이름을 붙였다. 실제 이 와인 오프너의 모양은 영락없이 가는 목에 치마를 입고 춤추듯 팔을 늘어뜨린 여인과 닮아 있다. 이 디자인에는 웃지못할 스토리가 담겨 있다. 코르크를 뽑기 위해 여인의 목을 돌릴수록 양팔은 마치 항복하듯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 말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아내가 자신에게 항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멘디니의 욕구를 다른 남성 소비자들도 직관적으로 느끼지 않을까? 솔직하고 사실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공감을 일으키고 구매 욕구로 이어진다.

이처럼 스토리, 감정 등 직관적인 단어로 도배된 감성 디자인은 사실 첨단의 인지과학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지과학에 기반을 두고 감성 디자인을 연구해 온 도널드 노먼 박사에 따르면 본능적으로 욕망하는 것과 필요한 것, 일상생활에서 있으면 유용한 것을 넘어서는 것이 감성 디자인이다. 뇌에서 벌어지는 고도의 사고행위에서 형성된 기업과의 관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등이 감정을 불러일으켜 순간적으로 제품이든 서비스든 선택하게 만드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인지과학ㆍ뇌과학을 통해 분석될 수 있다.

◆ 다음은 경험ㆍ서비스 디자인

= 최근 감성 디자인을 대표하는 용어는 `유저 익스피리언스(UX)`, 즉 사용자 경험을 이끌어내는 디자인이다.

김근한 소장은 "UX 디자인은 사용자가 디자인을 통해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다소 거창한 목적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하나같이 UX 디자인을 강조한다.

삼성전자 디자인팀의 이성식 상무는 "스마트폰의 외관 디자인이 점점 심플해짐에 따라 UX가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며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주느냐가 휴대폰 디자인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스마트폰, 태플릿PC 등 스마트 기기 산업은 점점 더 사용자들이 쉽고, 편리하고, 직관적이며 친근감을 느낌 수 있는 UX 디자인 쪽으로 갈 것"이라며 "단순한 휴대폰이나 PC가 아닌 사용자가 원하는 다양한 기기로 사용될 수 있는 디자인 제품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UX 개념의 창시자인 도널드 노먼 박사도 "감성디자인 다음의 트렌드는 경험 디자인이 될 것"이라며 단순히 라이프스타일에 개입하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ㆍ사용자들에게 공통의 경험을 제공하는 디자인과 전략이 성공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클라우드앤드컴퍼니(Cloud and co.) 디자인 스튜디오 공동대표 유영규 디자이너는 "감성 디자인은 필연적으로 `경험`, `관계`, `서비스`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경험 기반의 단순한 UX디자인을 넘어 이제는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제품을 구경하고 사용후기를 읽고 제품을 선택ㆍ구입하면서 자신도 사용기를 올리고 고장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애프터 서비스를 받으면서 감동을 받는다는 말이다. 이후 그 제품을 버리는 과정까지 일체를 회사와의 소통 속에서 구현한다는 것이다.

그는 "감성 디자인을 구현한 데 그치지 않고 `경험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으로 발전시킨 한국 사례가 하나 있다"고 제시했다. 바로 현대카드M의 디자인이다. 전 세계 최초로 네모난 카드에 디자인을 입혔다. 유 대표는 "해외출장 다니면서 내 카드를 꺼내면 해외 디자이너들조차 놀란다"며 "그냥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카드를 쓰게 만드는 효과, 과시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파격적인 카드 디자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혜택을 맞춤형으로 집어넣고 이걸 디자인으로 이미지화함으로써 감성 디자인이 됐다는 얘기다. 유 대표에 따르면 현대카드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는 데 이것이 서비스 디자인 혹은 경험 디자인이다. 슈퍼콘서트, 슈퍼토크 등 회원들끼리 함께 문화를 창출하는 과정이 있다는 얘기다. 그는 "제품이 아니라 경험을 팔고 공유시키는 과정이고 감성 디자인에서 감성브랜딩으로 가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곧 감성 서비스, 서비스 디자인 혹은 경험 디자인이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소아 기자 / 고승연 기자]

기사입력 2011.07.22 14:11:22 | 최종수정 2011.07.22 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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