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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함께 놀고싶도록…`즐거움` 을 디자인하라

단순히 예쁘고 좋은기능 많으면 물건 잘 팔려? 천만의 말씀!!  

지난 19일 성균관대학교 인터랙션사이언스 학과를 방문한 도널드 노먼 박사가 600주년 기념관 대강당에서 "복잡성 속에서 살아가기"(Living with Complexity)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날 강연에는 국내 대기업의 디자이너와 디자인회사 직원, 학생 등 1000여 명이 몰려와 세계적 디자인 대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디자인이 모든 것이다!"

21세기 들어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전면에 `디자인 경영`을 내세웠다. 이전까지 기업들은 제품을 예쁘고 눈에 띄게 만들고 훌륭한 기능을 많이 넣어 팔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작고 예쁜 디자인에 다양한 기능까지 탑재했던 수많은 MP3플레이어는 직사각형의 아이팟에 밀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갔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던 에스프레소 기계도, 여러 기능을 첨가해 첨단기기로 거듭났던 커피메이커도 단순한 모양의 `캡슐커피` 기계에 밀려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감성 디자인`의 구루(Guruㆍ대가) 도널드 노먼 박사는 지난 19일 매일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고객이 만족하기만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로는 더 이상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디자인을 구현해야 물건이나 서비스가 팔리는 시대"라며 대표적 캡슐커피 메이커인 `네스프레소`를 사례로 들었다.

제아무리 우아한 디자인에 첨단 기술을 응용한 기능을 부가해도 에스프레소 기계에는 언제나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반드시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캡슐커피 기계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두 가지 문제는 동시에 해결됐다. 우선 외양 자체도 사무실이나 거실에 자랑스럽게 둘 만큼 단순하고 예뻤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조작이 간편했고 청소 부담도 사라졌다. 누군가가 커피를 만들어 타다 주길 바랐던 사람들은 캡슐을 뚫는 경쾌한 소리와 스스로 기분에 따라 커피를 선택하고 물을 조절해가며 자신만의 커피를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커피맛도 훌륭했다. 커피를 마시는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

물론 기계와 캡슐의 디자인과 색깔도 일관된 디자인으로 구현했고 여기에 캡슐커피를 마시는 모습 그 자체가 디자인의 일부가 되는 형태다.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봤을 때 `더 좋은 에스프레소 기계`는 분명히 따로 존재했지만 캡슐커피 기계는 `사람들에게 혹은 다른 사무실에 자랑하고 싶은` 물건이었고 보는 사람마다 만져보고 직접 사용해보고 싶은 물건이었다. 아이팟처럼 사용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감성 디자인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사용자가 물건에 애착을 갖다 보니 문제점을 스스로 찾아서 함께 해결하려고 나서기도 한다. 캡슐커피가 갖는 단점인 `쓰레기 과다 배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사용자로부터 나왔다. 이제 기계와 커피를 생산한 기업과 함께 소비자가 캡슐의 재활용 방법을 찾고 있다.

캡슐커피 기계의 성공스토리는 또 다른 감성 디자인의 대표적 성공사례인 아이팟 신화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노먼 박사는 "이전에도 훨씬 작고 예쁘면서 기능이 뛰어난 MP3플레이어는 많았지만 고객들은 그런 제품에 만족했을 뿐 행복해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아이팟이 행복을 준 이유는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음악을 내려받아 저장하고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고,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구매자들에게 `나는 아이팟 유저다`라는 자부심을 심어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간단한 장착으로 스피커와 연결할 수 있는 등 여러 부가적인 기능이 통일된 디자인 속에서 적절하게 구현됨으로써 `라이프스타일`을 지배하는 디자인이 됐고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후 아이폰, 아이패드 등 후속 상품들의 연이은 성공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제품을 꺼내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만지작거리면서 노는 모든 행위, 캡슐을 꺼내 기계에 넣고 맛있는 커피를 직접 만들어 먹는 일련의 행위가 사람들에게 행복감과 `즐거움(pleasure)`을 줬다는 얘기다. 노먼 박사가 감성 디자인의 키워드가 즐거움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노먼 교수는 이어 `감성 디자인`을 이어가 차세대 디자인으로 경험을 중시해 서비스하는 `경험 디자인`이 부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 He is…

도널드 노먼(Donald A. Normanㆍ76) 박사는 감성 디자인의 대가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UCSD) 인지과학과 명예교수이자 노스웨스턴대학교 컴퓨터과학과 명예교수다. 과학자이자 공학자로 출발했지만 디자인 전문가로 더 유명하다.

전기공학으로 MIT에서 학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5년 넘게 애플사의 부사장으로 재직하기도 한 그는 인간중심 제품ㆍ서비스 컨설팅 회사 `닐슨 노먼 그룹`의 공동설립자이자 현직 이사다. 애플 근무 당시에 노먼 박사는 애플의 수석협상가로 미국의 차세대 디지털TV 시스템 개발에 있어 컴퓨터와 텔레비전 산업 간의 토론과 회의에 참여했다. 디자인 전문기업인 아이디오(IDEO)의 멤버이기도 하다.

비즈니스위크지가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27명 중 1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던 노먼 박사는 유저 익스피리언스(UXㆍ사용자 경험) 디자인 개념과 인간중심 디자인 개념을 최초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감성 디자인`이란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지난 5월부터 국책사업 WCU(World Class University) 프로그램 지원에 따라 석학교수로 KAIST 산업디자인학과에 초빙돼 있다. • 고객은 이성으로 제품 선택안해…마음을 움직여야 결정한다

[고승연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기사입력 2011.07.22 14:21:43 | 최종수정 2011.07.22 22: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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