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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앙증맞은 디자인 도심 가로등 "눈이 즐겁다"

대구 중구 종로에는 최근 가로등에 청사초롱을 달고 호롱불 모양을 그려넣어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가로등이 등장했다.

이글대던 태양이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면 황혼의 도심에는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 켜진다. 숨 막힐 것 같은 회색 속에 박제돼 있던 불빛들이 휘황찬란하게 살아나는 시간이다. 가로등 불빛은 밤의 ‘태양’이다. 밤을 살아 숨 쉬게 하는 도심의 생명력이다. 이 가로등 불빛을 따라 차들이 오가고, 손을 꼭 맞잡은 연인들이 밤길을 걷고, 새벽녘 환경미화원들이 빗질을 한다.

한때는 회색빛 기둥에 희뿌연 불빛으로 도시의 쓸쓸한 풍경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기도 했지만, 요즘 가로등은 앙증맞은 디자인에 달님도 울고 갈 강력한 밝기를 자랑하는 등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불만 밝히는 가로등 NO

최근 몇 년 새 공공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중앙정부에 비해 지역 주민들과 밀착된 생활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각 지자체들이 공공디자인에 더욱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추세인 것.

공공디자인을 통해 두드러진 변신을 하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가로등이다. 불만 밝히면 된다는 기존의 기능적 측면에서 벗어나 디자인적 요소가 한층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야경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빛을 이용한 도시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다.

대구 도심의 가로등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북구의 안경 가로등이다. 2003년부터 3공단 일대의 대표업종인 안경산업을 알리기 위해 북구 침산교~노원네거리 사이 90여 개의 가로등에 안경 모양의 조형물을 부착한 것. 밤에는 안경테 모양을 따라 조명이 들어와 낮보다 한층 화려한 느낌을 준다.

달성군 현풍천 주변을 수놓은 청사초롱등도 지역의 ‘명물’로 꼽힌다. 화원읍 천내리 천내3교 역시 이런 청사초롱등이 설치됐다. 알록달록 단풍잎과 여인이 청사초롱을 든 모습을 가로등에 형상화한 것이다. 낮에는 색색깔 단풍 모양이 눈길을 끌고, 밤이면 초롱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에 반사된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동구 반야월로에는 현수등이 설치됐다. 가로수로 인해 가로등 조명이 가려지는 사례가 잦다보니 기둥과 기둥 사이에 와이어를 설치하고 그 가운데 조명등을 다는 방식이다.

서구청 앞 인도에는 별자리가 수놓아졌다. 서구청 육교에서 대구지법 가정지원까지 250m 인도에 은하수 물결 조명등 1천200개와 별자리 조명등 12개, 소나무와 이팝나무 등 가로수 투광등 40개가 설치돼 마치 별이 쏟아지는 밤길을 걷는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중구청은 최근 종로 일대 가로등에 청사초롱을 달고 이 안에 호롱불 모양을 그려넣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대비돼 강렬한 색상을 자랑하는 청사초롱을 달아 한국적인 미를 강조함과 동시에 화려함까지 함께 노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가로등은 천편일률적 디자인이 대다수다. 중구청 박찬수 주무관은 “몇 년 전부터 가로등의 디자인적 요소가 강조되고 있지만 사실 지자체에서 이를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가로등 교체 공사를 위해서는 도로를 파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교통 불편과 막대한 공사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것. 그는 “종로의 경우에는 거리 환경개선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함께 공사를 시행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아름다운 도시 미관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절전도 OK

최근 가로등의 또 다른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절전’이다. 같은 비용으로 얼마나 효과적인 불빛을 내느냐가 관건이 된 것. 특히 요즘은 전력사용이 늘어나면서 여름과 겨울 등 연중 전력 수급이 문제가 되는 상황인 것.

이 때문에 가로등 관리를 맡고 있는 대구시 시설관리공단에서는 가로등 조명등을 고효율등으로 교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미 전체 가로등 중 27% 정도를 고효율등으로 교체한 상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CDM램프(세라믹고압방전등). 현재 1만3천691개 가로등에 CDM램프가 사용됐다. CDM램프는 부피는 작고 수명은 긴 반면 전기료는 최대 50%까지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CDM램프는 신천대로 지하도 구간 등 낮에도 조명이 필요한 곳을 중점으로 많이 설치돼 있다. 대구시 시설관리공단 정해기 가로등관리 과장은 “기존 나트륨 램프나 메탈할라이트 램프 등의 경우에는 가로등을 껐다가 재점등을 해야 할 경우 램프가 식을 때까지 최대 24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하지만 CDM램프는 즉시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1천936개 등이 설치돼 있는 ‘무전극램프’ 역시 전기료를 절감해주는 고효율등이다. 기존의 램프와 달리 필라멘트나 발광판이 없어 수명은 5배 이상 길어지고 전력소비는 30% 이상 줄였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LED조명은 아직 가로등 사용에는 보편화되지 않았다. 녹색성장 붐을 타고 전력소비를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고, 친환경적이며, 수명 또한 반영구적이라는 발광다이오드(LED`Light Emitting Diode) 조명이 급부상하고 있지만 가격과 설치비가 워낙 비싼데다가 기존 가로등에 비해 광효율이 떨어진다는 것. 정 과장은 “직진성이 강한 LED 조명의 경우 빛이 바닥에 고루 퍼지지 않고 광속 또한 낮아 당장 설치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어두워? 요즘은 ‘빛 공해’도 문제

영천 보현산 인근의 가로등은 갓을 쓰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을 관측해야 하는 천문대가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특성상 가로등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불빛이 위를 향하지 못하도록 갓을 씌운 것이다.

한때는 가로등 확충에 힘썼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빛 공해’ 문제가 대두 되고 있다. 한밤중에도 가로등을 비롯해 네온사인, 각종 조명들의 환한 불빛으로 사람의 생체리듬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생태계에도 이상이 생기면서 “조명을 줄여 달라”는 요구도 거세지고 있는 것.

대로변에 살고 있는 이지현(29`여) 씨는 최근 방마다 두꺼운 천의 검은색 커튼을 달았다. 바로 앞에 있는 가로등 불빛과 건물조명, 밤새 오가는 차량 조명들로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커튼을 바꾼 뒤로는 남편도 아기도 좀 더 편안하게 잠을 이루는 것 같지만, 아침이 되어도 날이 밝았는지를 알 수 없는 단점이 있다”고 푸념했다

이 씨처럼 과도한 조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의 민원도 증가하는 추세다. 정 과장은 “예전에는 가로등 조명이 너무 어두우니 추가 설치해달라는 민원이 주를 이뤘지만, 요즘은 조명이 너무 밝아 밤잠을 이루기 힘들다는 시민들의 민원이 크게 증가해 가로등 민원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라고 했다.

사실 외국의 경우에는 25칸델라(광도의 단위) 수준으로 건축물을 짓고, 영국에서는 이를 위반하면 최대 1억원 정도의 벌금을 매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빛 공해’에 대한 법률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서울시가 ‘빛 공해 방지 및 도시 조명관리 조례’ 시행규칙을 마련했으며, 부산 해운대구에도 인공조명의 오`남용으로 인한 빛 공해로부터 주민을 보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부산시 해운대구 도시조명관리 및 빛 공해 방지 조례안’이 지난 4월 발의됐다. 조례안에 따르면 건물의 소유주 또는 관리자는 옥외조명에서 발생되는 불빛이 빛 공해를 유발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환경부가 대도시 지역의 상가, 대형 쇼핑몰, 해수욕장, 자연경관지역을 대상으로 빛 공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건축물 조명은 70%가 국제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주거지역의 기준 초과율도 62%에 달해 거주자는 물론 보행자 피해가 심각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농촌지역 역시 도로변 가로등이나 주변 건축물 불빛으로 농산물이나 과일의 수확량이 줄었다며 환경분쟁조정을 신청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 추세다.

정 과장은 “전반확산조명 등기구로 광원이 직접 시야에 들어와 눈이 부신 불편을 막기 위해 특정 부분만 비추도록 한 컷오프형 등기구를 지속적으로 도입하고, 농촌지역에는 소등이나 제한조명 등의 방식을 통해 빛 공해를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기사입력 2011-07-2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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