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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덴마크 "예쁘기만 한 디자인은 가라… 녹색과 뉴클래식 시대"

'디자인 DNA' 바꾸는 디자인 강국
"덴마크 하면 의자? 이젠 잊어라 사람과 환경 위하는 디자인 추구"
"유엔에서 덴마크를 대표하게 된 점,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난 10일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이 미국 뉴욕 유엔 본부 연단에 올라 2명의 덴마크인에게 상을 주며 격려했다. 이들은 외교관도, 유명 정치인도 아니었다. 대규모 보수 공사에 들어가는 유엔신탁통치이사회의 새 가구 디자이너로 선정된 디자이너 케스퍼 살토와 토마스 시그스가르드였다. 신탁통치이사회 내부는 지난 1951년 덴마크 디자이너 핀 율이 디자인한 것으로, 60년 만에 젊은 덴마크 디자이너가 바통을 이어 리모델링을 맡게 된 것이었다.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는 이처럼 여왕이 국제무대에서 외교 수단으로 디자인을 활용할 만큼 디자인을 중요한 국가 가치로 내세우는 나라다. 기능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게 특징인 덴마크 디자인은 1950~60년대 핀 율, 아르네 야콥슨, 베르네 판톤 등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를 배출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1997년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디자인 정책을 수립한 덴마크는 최근 '지속 가능한 친환경 디자인'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디자인 DNA를 새롭게 변이(變異)시키고 있다.

▲ 덴마크식 아파트 '8 하우스'의 V자 공중정원… 李 대통령도 참관 - 덴마크의 신진 건축그룹 BIG이 최근 설계한 주거 빌딩‘8 하우스’. 모든 집에 정원이 딸려 있고, 자전거를 타고 집 앞까지 갈 수 있도록 계단 대신 비스듬한 경사로를 만들어놨다. 사진에서 V자로 보이는 부분은 잔디를 심은 공중 정원.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이 덴마크를 방문했을 때 대표적인 친환경 건축물로 참관한 곳이기도 하다. /사진가 옌스 린데

◆전통과 환경 담은 '뉴 클래식(New classic)

덴마크 디자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물은 의자다. 요즘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빈티지 카페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 의자들의 원형(原形)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정작 덴마크 현지에서 만난 디자인 관계자들은 "덴마크의 오래된 의자 이미지는 잊고 새로운 디자인을 봐달라"고 입을 모았다.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덴마크 디자인 센터(DDC)'. 덴마크 디자인의 현주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곳에선 요즘 'Challenge Society(사회를 향한 도전)', 'Challenge Waste(쓰레기 문제를 풀기 위한 도전)' 등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시간에 쫓겨 휴게소에 들를 시간이 없는 트럭 운전사들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면서 휴지를 던져 넣을 수 있도록 투입구를 나팔처럼 크게 만든 휴지통, 노인들이 사용하기 편한 독서대, 병원의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침상 디자인 등 겉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효율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 '8 하우스'의 내부… 집집마다 미니 정원 - '8 하우스'내부에서 밖을 바라본 풍경. 왼쪽 아래로 집마다 딸린 미니 정원이 보인다. 중앙은 주민들이 함께 쓰는 공동 정원. /김미리 기자 티나 뵤른 미트가르트 DDC 큐레이터는 "덴마크 디자인의 뿌리는 사람을 생각하는 디자인이며, 이제 그 의미가 환경으로 확장됐다"며 "예쁘기만 하고 생활에 보탬이 안 되는 디자인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한편에선 '노만 코펜하겐', '무토', '구비', '헤이' 등 덴마크의 대표적인 디자인 기업들이 비베케 폰네스버그 슈미트, 야콥 하이베르그 등 젊은 디자이너와 협업하면서 덴마크 디자인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유기적이고 간결한 형태적 특성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수잔 쇤달 울프 DDC 정책개발 담당관은 "과거의 장인 정신을 계승하면서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뉴 클래식'이 덴마크 제품 디자인의 흐름"이라고 했다.

▲ 디자이너 마이클 게르츠센이 만든 꽃병(왼쪽), 트럭 운전사用휴지통 - 트럭 운전사들이 운전하면서 휴지를 버릴 수 있게 디자인한 휴지통(가운데), 덴마크의 아이콘 - 지난해 '클래식 디자인상'을 받은 '크리스티아나 자전거'. /덴마크디자인센터 제공(왼쪽)

◆건축, 도시의 숨통을 틔우다

디자인의 연장선상에서 덴마크는 친환경 건축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개발되고 있는 코펜하겐 남쪽의 외레스타드 지역은 녹색 건축의 전시장 같다. 최근 완공된 '8 하우스'는 덴마크 건축의 실험 정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주거 빌딩.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 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덴마크를 방문했을 때 들른 곳이기도 하다. 건축사무소 'BIG'이 설계한 이 건물은 위에서 보면 숫자 8을 닮아서 '8 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입주한 476가구 모두에게 개인 정원이 딸려 있다는 것. 11층 높이의 건물인데도 엘리베이터 없이 자전거를 가지고 집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었다.

 

▲ 신진 디자이너 비베케 폰네스버그 슈미트가 덴마크 디자인의 기하학적 전통을 계승해 만든 조명<왼쪽>. 영국의 스타 디자이너 제스퍼 모리슨이 간결한 덴마크 디자인에서 영감받아 만든 의자‘트라토리아’.

'8 하우스'에서 북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벨라 스카이 호텔'은 코펜하겐의 새 랜드마크로 불린다. 건물 상층부가 바깥으로 15도 정도 휘어진 두 개의 동(棟)이 연결된 형태이다. 건물을 설계한 3XN의 대표 건축가 킴 헤르포스 닐슨은 "스칸디나비아 지방의 빛과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 채광을 살렸다"고 했다.

코펜하겐시 클라우스 뵤른 빌레호이 지속가능한도시개발국장은 "코펜하겐은 도시 자체를 거대한 '그린 랩(Green lab·친환경 연구소)'으로 삼고 있다"며 "건축과 디자인은 이를 뒷받침하는 두 개의 주춧돌"이라고 했다.

코펜하겐=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 입력 : 2011.06.24 03:12 / 수정 : 2011.06.2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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