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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일사일언] 디자인을 살린 '인간의 자랑 본능'

▲ 김신 디자인 저널리스트

'밸런스(balans)'라는 이름의,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된 혁신적 의자가 있다. 이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대신 무릎 받침대가 있다. 무릎을 꿇듯이 앉는 의자다. 불편할 것 같지만, 등받이가 없어서 이 의자에 앉으면 앉아 있는 내내 허리를 꼿꼿하게 펼 수밖에 없다. 바른 자세를 강요해 척추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워낙 생긴 게 의자 같지 않아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당혹스러워한다. 디자인 월간지의 햇병아리 기자 시절, 한 디자인 회사에서 이 의자를 처음 봤다. 그곳 직원이 앉아보라고 했을 때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몰라 쩔쩔맸더니, "기자가 그것도 모른다"며 혀를 끌끌 차던 기억이 난다. 이 의자를 산 사람들은 누구나 그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 우월감에 빠진다.

노르웨이의 피터 옵스비크(Opsvik)란 디자이너가 척추를 보호하려는 의도로 이 의자를 디자인했다. 그러나 독특한 생김새가 이 의자에 새로운 구실을 더해주었다. 그건 "나는 이런 특이한 의자를 알고 있다"는 문화적 자부심을 주인에게 주는 것이다.

이처럼 물건 중에서는 디자이너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랑거리로 또 다른 만족감을 주는 물건들이 있다. 개성 있는 형태에 독특한 기능이 더해질수록 그럴 물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밸런스 의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아예 처음부터 문화적 우월감을 주려고 디자인되는 제품도 많다.

독특한 디자인이란 이처럼 사람의 자랑 본능을 만족시키고자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백화점에 가보면 이런 물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비싼데도 이런 물건이 팔리는 걸 보면 '우리나라도 취향이 다양해지고 있구나'라고 느낀다. 

김신 디자인 저널리스트

기사입력 : 2011.05.25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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