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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디자인이 돈…도심빌딩, 직각을 벗다

[머니위크]디자인 입은 건물들
광화문사거리 한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찾기 힘든 게 있다. 바로 곡선 형태의 건축물이다. 광화문사거리에 연접한 동아일보 건물과 먼발치에 보이는 종로타워가 모서리를 타원형태로 마감한 정도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온통 네모로 된 것은 그것이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연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을 짓는 방법이 바로 성냥갑 형태인 것이다. 결국 '돈' 문제다.

파격 디자인 건물이 뜬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가 대표적이다. 대우센터빌딩을 리모델링한 이 건물은 정면은 물론 어느 각도에서 봐도 정확히 직사각형 모양이다. 공간활용도를 극대화한 것이다. 2007년 모간스탠리가 이 빌딩을 9600억원에 매입, 당시 국내 빌딩 거래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패션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말처럼 가장 단순한 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 성냥갑 모양의 빌딩도 제대로 지으면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저마다 효율성만 찾다보니 서울이 도미노 조각을 줄줄이 세워놓은 것 같은 획일적인 도시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빌딩들이 획일적인 직선에서 벗어나 보다 기하학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건축비도 더 많이 들고 공간활용 면에선 효율성도 떨어질 텐데 왜 그럴까. 이젠 효율성이 건물가치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특한 디자인이 랜드마크를 만들고 건물값을 끌어올리는 요소로 부상했다. 건물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만족, 즉 효용이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근엔 건축주들이 유명 디자이너들에게 설계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강남역 인근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준공된 강남역 사거리의 'GT타워'는 S라인의 이색적인 설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네덜란드 건축가 피터 카운베르흐와 한국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김종호 디자인스튜디오 대표가 설계를 맡았다. 시공업체 대림산업이 유선형으로 건물을 짓기 위해 각종 첨단기술을 적용했다고 한다.

바로 옆 럭셔리 오피스텔 '부띠크 모나코'도 2005년 분양 당시부터 디자인 때문에 화제가 된 건물이다. 정육면체(큐브) 모양으로 군데군데 튀어나오거나 파들어간 파격적인 모양이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다. 유명 건축가 조민석 씨가 디자인을, GS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맞은편 '삼성타운'은 미국의 유명 건축설계사무소 KPF가 설계하고 삼성물산이 지었다. 삼성타운은 이채로움보다 서울스퀘어처럼 극단적인 단순미로 오히려 더 눈길을 끄는 쪽이다. 매력적인 디자인이 건물의 가치를 끌어올린 것은 분명하다.

부띠크 모나코는 디자인 덕분에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2배 이상(3.3㎡당 3000만원 정도)이었음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이런 건축물이 좀 더 늘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건축주가 디자인의 가치에 돈을 쓸 줄 아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GT타워의 경우 밀로의 비너스상 조각에 쓰인 이탈리아 대리석을 마감재로 사용하는 등 건축주가 건물외관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당국 의지도 한몫…디자인 중요시

당국의 정책 의지도 매우 중요하다.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서울시는 성냥곽 아파트 일색의 서울을 탈바꿈하기 위해 건축 승인 때 디자인 요소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성냥곽 모양에 대한 노이로제 때문에 심지어 업계에서는 직육면체 형태의 건물은 사실상 심의를 통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불문율까지 생겼다. 실제로 수많은 건축물들이 직육면체 모양이란 이유로 심의에서 탈락했고, 이들은 나선형 형태의 엑센트를 주는 등 건물 형태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킨 후에야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직육면체 형태의 건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격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성냥곽 건물이 가득한 서울을 바꿔보자는 정책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GT타워도 처음엔 일반적인 성냥곽 모양으로 건축 심의를 신청했다가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지금의 형태로 설계가 바뀌었다고 한다.

디자인이 건축물의 가치에서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다 보니 시세 변동에 민감한 아파트 분양에서는 일찌감치 디자이너의 이름을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2007년 용인 동천동 동천 래미안을 분양할 당시, 세계적인 건축가 장 미셀 빌모트를 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웠다. 빌모트는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신도시를 건설할 때 설계를 맡아 유명세를 탄 건축가로 홍익대학교 건축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빌모트의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설계가 그대로 반영된 동천 래미안 단지 내 타운하우스인 힐하우스는 지금도 래미안이 아파트 광고를 할 때 플래그십 단지로 내놓는 곳이다. 탤런트 이미숙 씨가 등장하는 TV CF의 배경이 바로 동천 래미안 힐하우스다.

동천 래미안은 세련된 디자인과 최고급 편의시설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판교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전세가가 판교와 거의 맞먹고, 인근 시세와 많게는 1억원 정도 차이가 난다. 전용면적 85㎡의 경우 동천 래미안 전세가는 3억2000만원 정도다. 이는 서울로의 접근성이 훨씬 뛰어난 동판교 이지더원이나 풍성 신미주아파트와 같은 수준이다. 래미안 단지 인근 아파트의 경우 같은 면적의 전세가는 2억3000만~2억4000만원가량이다.

해운대의 초고층 주상복합 해운대 아이파크도 2007년 분양당시 바로 옆에서 같은 시기 분양 경쟁을 벌였던 두산위브와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광고에 디자이너를 내세웠다. 해운대 아이파크의 설계자는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본사 건물 설계로 이 회사와 인연을 맺은 다니엘 리베스킨트다. 리베스킨트는 뉴욕 그라운드 제로 부지에 세워질 건축물 설계를 맡으면서 한층 유명세를 타고 있는 스타 건축가다.

머니투데이 김창익 기자 입력 : 2011.03.19 11:48|조회 : 2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