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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좌우 문 숫자 다르고 천으로 씌우고 … 통념 깨는 차들

상식 파괴한 아이디어
 

현대 벨로스터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아이디어가 속속 신차에 접목되고 있다. 자동차 업체가 파격을 서슴지 않는 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이달 북미모터쇼(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공개된 현대 벨로스터는 양쪽 도어(문짝)의 개수가 달라 화제를 모았다. 운전석 쪽엔 한 개, 동반석 쪽엔 두 개의 도어를 달았다. 그래서 좌우 측의 생김새가 다르다. 뒷좌석을 드나들기가 불편해 소비자가 쿠페(도어가 두 개만 달린 차)를 꺼리고, 뒷좌석 승객은 인도에 가까운 동반석 쪽 도어를 주로 이용한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좌우가 다른 차는 벨로스터 이전에도 있었다. 미니 쿠퍼 클럽맨 역시 동반석 쪽에 도어를 한 개 더 달았다. 앞 도어 절반 정도의 크기다. 승하차 시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보조 도어다.

엔초 페라리

롤스로이스 뒷좌석 좌우 도어는 마차와 같다. 손잡이가 운전기사에 가까워 운전기사가 보다 빨리 뒷문을 열 수 있다.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의 도어는 가위처럼 위쪽으로 빗겨 열린다. 좁은 공간에서 열기 어려운 단점을 지우기 위해 고안됐다. 벤츠 SLS 63 AMG의 도어는 위아래로 여닫힌다. 1954년형 300SL의 도어를 재현했다. 당시 기술로 차체 강성을 유지하되 승하차 편의성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갈매기 날갯짓과 비슷해 ‘걸 윙 도어’라고 불린다. 엔초 페라리와 SLR 맥라렌도 날개를 펼치듯 전방을 향해 비스듬히 열린다. 이른바 ‘나비 도어’다.

자동차의 소재도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다. 차의 무게가 성능 및 연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이 대표적이다. 과거엔 강성이 떨어지고 이어붙이기가 까다로웠다. 따라서 경주용 차량에만 제한적으로 썼다. 하지만 합금, 용접, 접착 기술이 뒷받침되면서 뼈대와 차체로 거침없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재규어 XJ와 XK, 아우디 A8과 R8이 알루미늄 차다.

과거 발화위험 때문에 기피하던 마그네슘도 합금 기술이 발달하면서 경량 소재로 각광받는다. 포르셰 파나메라가 대표적이다. 창문틀과 차체 앞면의 라디에이터 그릴 안쪽 등 차체 무게의 2%를 마그네슘으로 채웠다. 플라스틱은 연료 탱크의 소재로 인기다. 무게와 폭발 위험성을 동시에 낮출 수 있어서다. 단단하고 가벼운 탄소강화섬유도 관심 높은 소재다. 예전엔 경주차에 주로 썼다. 하지만 이젠 일반 차량의 차체와 구동축까지 사용범위를 넓혔다. BMW M3의 지붕, 맥라렌 MC4-12C의 탑승 공간, 혼다 레전드와 닛산 GT-R의 구동축은 탄소강화섬유로 만들어졌다.

BMW 지나 비저너리

2008년 BMW가 선보인 컨셉트카 ‘지나 비저너리’ 모델은 ‘차체는 딱딱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알루미늄과 탄소강화섬유로 골격을 짜고 그 위에 천을 씌웠다. 골격이 움직이면 차의 외모도 변한다. 가령 헤드램프(전조등)를 켜면 차가 꼭 감았던 눈을 뜬다. 도어는 팽팽히 씌운 천이 살짝 구겨지면서 열린다. 아직 상용화를 꿈꿀 단계는 아니지만, 무게와 공기저항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고민은 네모반듯한 박스카를 탄생시켰다. 1998년 데뷔한 닛산 큐브가 좋은 예다. 차체를 냉장고처럼 빚어 실내공간을 구석구석 넓혔다. 이후 도요타 bB, 기아 쏘울 등 비슷한 컨셉트의 경쟁자가 등장해 박스카 유행에 본격적인 불을 붙였다. 세단·해치백·쿠페 등 자동차의 전통적인 장르(차종 구분)도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서로의 장점만 조합해 각 장르의 벽을 허무는 시도가 늘었기 때문이다. 신호탄이 됐던 모델은 4도어 쿠페를 표방한 벤츠 CLS였다. 멀쩡한 도어를 네 개나 달았지만, 앞뒤 유리를 납작하게 눕혀 쿠페 못지않게 날렵한 디자인을 뽐냈다.

CLS가 성공을 거두면서 4도어 쿠페의 유행이 빠르게 번져나갔다. 폴크스바겐은 파사트를 기본으로 지붕을 낮춘 CC를 내놨다.

김기범 중앙SUNDAY 객원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1.01.28 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