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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인형은 도화지, 당신은 아티스트

손쉽게 만들어요 장난감 이상의 장난감 ‘아트토이’
 
예술작품으로 분류되는 장난감이 있다. ‘아트토이’다. 만든 이의 개성이 독창적이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고 실제로 갖고 놀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 개념을 살짝 비틀면 누구라도 아트토이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내 개성대로 꾸민 세상에 하나뿐인 인형이면 그게 바로 아트토이 아닌가.

빈 도화지처럼 흰색으로만 칠해진 ‘플랫폼토이’를 이용하면 작업은 훨씬 쉬워진다. 플랫폼토이는 일종의 3D 캔버스여서 원하는 대로 그리고 마음껏 색을 칠할 수 있다. 한국형 플랫폼토이 숍 두 곳을 찾아가 아이부터 어른까지 손쉽게 아트토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그리기 쉽고 지우기도 쉬워요, 무스토이

흰색 도자기 인형에 유성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무스토이’.

‘무스토이(無’stoy)’는 눈사람처럼 매끈하고 새하얀 도자기 인형이다. 여기에 유성 펜으로 그림을 그리면 누구라도 쉽게 아트토이를 완성할 수 있다. 선이나 색을 잘못 칠했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약국에서 파는 소독용 알코올을 면봉에 묻혀 살짝 닦아만 주면 모든 펜 자국을 깨끗이 지울 수 있다.

무스토이를 개발한 사람은 20년 경력의 CF감독 김학현(50)씨다. 손맛 나는 아날로그 문화가 사라져가는 게 아쉬워서 ‘내 손으로 만드는’ 장난감을 생각했다고 한다. 홍대 앞 무스토이 숍은 카페와 갤러리를 겸하고 있다. 손님들이 턴테이블에 올려진 LP판으로 음악도 듣고 차도 마시고 그림도 그리면서 아날로그 문화의 여유를 호흡하길 바라며 기획한 공간이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고 잠시 맡겨둔 작품을 하나씩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품은 온라인 구매도 가능하다. 남자인 ‘무스키’, 여자인 ‘무스피’ 두 종류가 있으며 가격은 개당 1만2000원이다. www.mustoy.com

초급 무스토이를 사면 상자 안에 무스키와 무스피가 그려진 흰 종이가 들어 있다(이 도안은 홈페이지에서도 출력이 가능하다). 여기에 그리고 싶은 그림을 스케치한다. 색색의 유성 펜으로 무스토이에 직접 그림을 그린다. 그림에 영 소질이 없다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무스토이 가득 인상적인 단어·문장만 적어 넣어도 멋진 작품이 된다.

중급 휴지, 단추, 천 조각, 털실, 색종이 등을 이용해 앙증맞은 액세서리를 만들어 장식한다. 미니 사이즈로 제작된 명품 옷 입기로 유명한 ‘브라이스 인형’처럼 액세서리를 바꿀 때마다 사진을 찍어두면 재미있는 스토리 북을 만들 수 있다.

고급 무스토이에 색색의 유성 펜으로 점을 찍은 후 알코올을 흘려서 색이 번지게 한다. 캔버스에 그려진 수채화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7개의 관절이 움직여요, 윕

전구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된 ‘윕’.

‘윕(Ouip)’은 3년 전 출시된 한국형 플랫폼토이 1호다. 캐릭터를 개발한 사람은 델리토이즈의 이재혁(37) 대표다.

베어브릭 같은 수입 플랫폼토이 매니어였던 그는 “한국 제품은 하나도 없다는 데 자존심이 상했다”며 “기발하고 순간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많이 쓰는 전구 이미지에서 힌트를 얻어 직접 만들게 됐다”고 했다.

윕의 재질은 플라스틱이고 여기에 아크릴 물감, 유성펜, 래커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한 번 어긋난 선은 수정이 어렵다는 게 아쉽다. 복구 방법은 수정할 부분에 흰색 또는 배경색을 다시 칠하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새로 그리는 덧칠뿐이다. 그만큼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린다.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다. 9인치(230㎜) 오리지널과 2.5인치(65㎜) 윕 주니어 두 종류가 있다. 가격은 각각 3만9000원, 7000원이다. www.delitoys.com

초급 수정이 어려워 그림 그리는 것조차 두렵다면 색종이를 붙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눈사람을 만들 때와 방법은 같다. 눈·코·입을 붙이고 필요한 액세서리도 색종이·천·털실 등을 이용해 만들어 붙인다.

중급 아크릴 물감 사용에 서툰 사람이 윕의 몸통 전체를 색칠하기는 어렵다. 초보자라면 유성 펜 또는 마커 펜으로 눈·코·입·머리카락 등 표현하고 싶은 부분만 간결하게 그려 넣는 게 좋다. 가슴의 여백에 예쁜 글을 적어두면 허전한 느낌을 없앨 수 있다. 커플끼리는 뒷면에 종이날개를 붙여서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고급 홈페이지에서 도안을 출력한 후 원하는 그림을 스케치한다. 수채색연필로 윕에 밑그림을 그린다. 수채색연필은 물에 지워지기 때문에 스케치가 잘못되더라도 휴지에 물을 묻혀서 선을 수정할 수 있다. 밑그림 작업이 끝나면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한다. 몸통 색깔을 바꾸고 싶다면 제일 먼저 래커를 뿌려둔다.


아트토이 잘 만들고 싶다면
손지영(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터 손지영 씨의 ‘서커스’ 윕 시리즈.

● 머리와 팔 다리가 있다고 해서 꼭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일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옮겨놓는 빈 도화지라고 생각하고 하늘·바다·숲을 그려도 좋다. 선물용이라면 전하고 싶은 메시지만 가득 적는 것도 의미 있다.

● 만화 캐릭터 등 그리고 싶은 형태가 정해지면 샘플 사진이나 그림을 많이 찾아본다. 그중 원하는 부분들만 조합해서 나만의 그림을 스케치한다.

● ‘내 얼굴’ ‘내가 좋아하는 표정’ 등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시리즈를 제작해도 재미있다.


TIP 홍콩의 젊은 예술가들이 처음 선보인 ‘아트토이’


90년대 중반 홍콩의 젊은 예술가 마이클 라우, 에릭 소 등이 똑같이 생긴 장난감에 서로 다른 그림을 그려넣으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유명 아티스트의 신선한 발상과 대중적인 장난감이 합쳐진 것이라 곧 매니어들의 수집 대상이 됐다. 더불어 ‘아트토이’라는 개념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요즘은 유명 작가와 브랜드가 협업해 기본 형태와는 달리 특별한 주제를 갖고 제작된 한정판이 수집가들의 목표가 되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기본형보다 가격이 몇 십배나 차이가 난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home&] 인형은 도화지, 당신은 아티스트
[중앙일보] 입력 2011.01.10 00:08 / 수정 2011.01.10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