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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디자인 거리’ 보기엔 좋지만… 서울시 50곳에 조성 중 멋만 강조 안전 위협


서울 방배동에 사는 직장인 김연희(31·여)씨는 지난 18일 출근길에 지하철 방배역으로 걸어가다가 경사진 길에서 심하게 미끄러졌다. 콘크리트로 된 보도에 전날 내린 눈이 얼어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다행히 팔과 다리에 멍이 드는 데 그쳤지만 잘못 넘어져 머리를 다치거나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며 “그날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디자인을 고려해 도입한 보도블록이 시민들의 보행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는 지난 5∼6월 지하철 방배역 2번 출구에서 방배동성당 방향으로 가는 640m 구간의 보도블록 교체 공사를 실시했다. 기존 시멘트 고압 블록 대신 가로 1m 세로 3m 가량의 콘크리트판을 이어놓는 방식으로 인도를 정비했다. 하지만 길이 경사진 데다 콘크리트판 표면이 미끄러워 겨울철 노면의 물기가 조금이라도 얼면 위험천만한 빙판길로 돌변한다.

이에 대해 서초구 관계자는 “블록이 아닌 커다란 콘크리트판을 이어놓는 방식은 미국 등에서 많이 하고 있는 형태라 도입했다”며 “경사진 길엔 어떤 보도블록을 깔아도 위험하긴 마찬가지 아니냐”라고 말했다.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교대삼거리에 이르는 반포로 770m 구간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곳은 2007년 7월부터 서울 시내 거리 50곳을 선정해 3단계에 걸쳐 조성 중인 ‘디자인 서울’ 거리 중 하나다. LED 가로등을 설치하고 보도블록은 매끄러운 화강암 타일로 교체했다. 하지만 군데군데 비탈진데다 녹은 눈이 얼어붙어 보행자들이 걸어 다니기엔 위험하다.

관악구는 2008년부터 1·2단계에 걸쳐 지하철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까지 2㎞ 구간에 ‘디자인’을 입혔다. 3∼5m 폭의 인도 중간에 가로수를 심고 반쪽은 직선 보도로, 나머지 반쪽은 나무 형상을 본떠 지그재그 모양의 보도로 만들었다.

관악구 관계자는 “모양을 그렇게 내서 위험해 보일 뿐 실제로 불편하거나 걸려 넘어질 문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주민 정태원(43)씨는 “얼마 전 통화하면서 걸어가다가 지그재그형 보도의 튀어나온 곳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며 “아이들이 뛰어다니다가 넘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학생 김주원(24)씨는 “위험한 것도 문제지만 지그재그형으로 된 길이 불편하다 보니 사람들이 일자 형태로 된 나머지 반쪽으로만 몰린다”며 “공간 효율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디자인은 시민을 불편하게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실정을 따지지 않고 외국 것을 모방하거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거리 설계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토목공학과 조원철 교수는 “미국은 도로가 대부분 평지인 반면 서울은 전반적으로 경사면이 많아 디자인을 차용하더라도 기후와 지형의 특색을 고려해야 한다”며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우리나라는 보도블록 표면을 더 거칠게 하고 덜 미끄러운 고무블록 등을 사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글·사진=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국민일보][2010.12.21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