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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대기업 회장들의 패션 스타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회장들이 입는 슈트는 무엇일까.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품격을 나타내주는 특별한 슈트를 알아보았다

외국 CEO들은 패션도 비즈니스 전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업을 상징하는 최고의 모델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가장 극명한 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다. 애플의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프로패셔널한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앞세워 대중 앞에 서는 스티브 잡스의 패션은 단연 화젯거리다. 최첨단 IT그룹을 이끌어 가는 CEO인 그는 ‘리바이스 501’ 청바지를 즐겨 입고 검정색 터틀넥에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는다. 그가 몸에 걸친 모든 아이템의 가격을 합하면 400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인 아이폰 신화를 만들어 낸 그는 새로운 버전의 아이폰을 소개할 때도 늘 같은 패션을 고집한다. 사람들은 이제 스티브 잡스를떠올릴 때면 으레 그의 패션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이건희 양복으로 불리는 키톤 
 

이건희 삼성 회장

우리나라는 어떨까. 서양에 비해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의 대기업 회장들은 한결같이 슈트를 선호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개개인의 취향과 철학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기업 회장들이 선호하는 슈트는 이탈리아 슈트 브랜드와 맞춤양복, 두 가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제일모직 란스미어(Lansmere) 양복을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식 정통 맞춤복으로 가볍고 몸에 감기는 부드러운 촉감이 일품이다. 란스미어는 1995년 원단 브랜드에서 2005년 원단과 맞춤 슈트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갔다. 이 회장은 재킷 안에 칼라의 넓이가 다양한 셔츠를 매치한다. 뿐만 아니라 슈트의 전체적인 디자인과 컬러, 공식석상의 경우 행사의 성격에 따라 셔츠와 타이를 매치하는 패션감각이 탁월하다. 란스미어 슈트는 이 회장과 삼성 사장단뿐만 아니라 국내 굴지의 기업 총수들도 즐겨 입는다. 가격은 250만원대부터 1000만원 이상까지 다양하다. 이 회장은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의 조언을 참고한다고 알려져 있다. 키톤(Kiton)은 세계적인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 리처드 기어 등이

즐겨 입는 최고급 슈트 브랜드다. 셔츠는 90만원대부터, 정장은 10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 1968년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의 치로 파오네오 안토니오 카를롤스가 공동성립한 브랜드로 지금도 나폴리 현지의 재단사 400여 명이 100% 수작업으로 만든다. 양복 한벌을 완성하는 데 바느질 4000땀 이상을 들인다고 하니 완벽한

테일러링을 위해 쏟는 정성을 엿볼 수 있다. 키톤의 가격이 비싼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원단. 합성섬유가 주를 이루는 요즘에는 쉽게 볼 수 없는 천연 재료로만 만든 원단을 사용한다. 원단을 구성하는 원사 한 가닥의 굵기가 머리카락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입지 않은 듯한 가벼운 착용감은 물론이고 몸에 부드럽게 감기는 감촉이 그만이다. 주름이 생기더라도 손으로 툭툭 쳐내기만 하면 된다. 해외 출장이 잦은 대기업 총수들이 키톤 정장을 즐겨 입는 데에는 주름이 잘 생기지 않는 원단의 특성도 한몫한다. 2007년 그랜드 하얏트 호텔 지하에 첫 매장을 오픈 하며 국내에 들어왔고, 이건희 회장이 즐겨 입는다고 해서 ‘이건희양복’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좌측부터 최태원 SK 회장 / 구본무 LG회장 / 신동빈 롯데 부회장

브리오니의 마니아 구본무·이재현 회장

온화하고 소탈한 이미지의 소유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매우 맵시 있고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한다.

구 회장이 선호하는 브랜드는 브리오니(Brioni). 로마시대 지중해의 브리오니 군도에서 이름을 딴 이 브랜드는 1945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작됐으며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품 슈트 브랜드다. 영화 <007 시리즈>에 출연한 영화배우 피어스 브로넌이 4편의 시리즈에서 모두 브리오니 정장을 입고 나와 유명세를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책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양복 브랜드로 브리오니를 꼽았다. 한 벌의 브리오니 슈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220번의 공정과 60번의 다림질이 필요하다.구 회장을 비롯해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 회장도 브리오니를 입는다.

브리오니를 즐겨 입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최근 한화유통이 수입하기 시작한 스테파노 리치(Stefano Ricci)를 즐겨 입는다. 스테파노 리치는 실크, 캐시미어, 이집트산 면사, 악어가죽 등 최상급 소재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 회장은 스타일에 있어서도 특유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겨울에는 모피코트를 입을

정도로 개방적이고 감각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너무 크지도 타이트하지도 않게 몸에 잘 맞는 슈트를 입는다. 캐주얼 선호하는 최태원 SK 회장

최태원 SK 회장은 정장보다는 캐주얼 스타일을 선호한다. 평소 직원들에게도 자유로운 복장을 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성이 중요한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비슷한 복장으로 근무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최 회장의 생각이다. 정장을 입을 때는 컬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클래식 스타일보다는 캐주

얼 하게 입는 것을 즐긴다. ‘오바마 슈트’로 유명세를 탄 까날리(Canali) 역시 대기업 회장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다.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 전 축하행사와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입었던 슈트는 모두 까날리 제품이다. 1934년이탈리아에서 시작한 까날리는 원단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에서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가장 큰 특징은 100% 비접착 방식을 고집하는 것. 캔버스 소재를 상의 내부에 부착해 제품의 실루엣과 착용감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겉감은 물론 슈트 내부에 쓰이는 원단까지 모두 천연소재만 사용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좌측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이재용·정용진 등 젊은 오너가 선호하는 비스포크 슈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젊은 CEO들 또한 맞춤 양복을 선호한다. 그들은 신세계 인터내셔널에서 운영하는 편집매장 분더숍에서 진행하는 비스포크(BeSpoke) 슈트를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스포크는 손님의 마음과 취향에 맞도록 완전히 새로운 옷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개인의 취향에따라 테일러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기 때문에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을 위한 슈트가 탄생한다.

몇몇 회장은 소규모 맞춤양복점 선호

국내 맞춤양복 전문점을 선호하는 CEO들도 있다. 롯데 신격호 회장이 그 주인공. 신 회장은 1987년 롯데호텔 로비에 ‘피닉스’가 입점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당시 호텔 37층에 회장실을 두었던 신회장은 오가는 길에 작은 맞춤양복집을 눈여겨보았고, 이곳에서자신의 양복을 맞추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을 자주 오가는 신

회장은 피닉스에서 보통 한 번에 서너 벌씩 양복을 주문한다. 주로 깔끔하고 검소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신 회장에 이어 신동빈 부회장도 단골이다. 신 부회장은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의 마니아로도 알려져 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장미라사’를 자주 찾는다. 장미라사는 1956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제일모직에서 생산한 원단으로 샘플복을 만들던 장미라사는 삼성이

본격적으로 기성복 사업에 뛰어 들었던 1988년 분리되었다. 현재는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과 소공동 본점에서 영업하고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 주요 행사나 외국 방문 시 이곳에서 양복을 맞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경미 기자 lalala-km@mk.co.kr]

[본 기사는 프리미엄 월간지 Luxmen / NOVEMBER, 2010 vol. 02 기사입니다 / 자세한 기사는 럭스멘 11월호 참조]

기사입력 2010.11.09 14:36:04 | 최종수정 2010.11.09 18: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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