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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이젠 세계 건축가분야도 여인천하

솔랑주 세계여성건축가협회장 "편견 깨는데 50년 걸려"  
   

"여자 건축가들이 차별을 받는다고 항의했더니 당시 영향력 있는 건축가였던 사람이 `여자들은 부엌에 있는 게 오히려 어울린다`고 하더군요. 건축 분야에 한해 프랑스는 남녀가 평등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4일부터 닷새간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성건축가협회 총회 참석차 방한한 솔랑주 데르베주 드 라투르 세계여성건축가협회 회장(87)은 "아직 협회가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솔랑주 회장은 프랑스 건축사로 전 세계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그의 베이스캠프인 프랑스에서도 여성 건축가의 전통은 길지 않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 건축가의 위상이 매우 낮았던 것. 프랑스에서는 문화유적을 발굴ㆍ복원하거나 공공청사를 신축할 수 있는 건축가를 군복무를 마친 남자로 한정했다. 공정한 경쟁은커녕 대회장에 입장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국제건축가연맹(UIA)에서도 여자에게는 회장 자격을 주지 않았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편견은 프랑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솔랑주 회장은 이런 불평등한 상황을 불평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1960년 프랑스 여성건축가협회를 만든 데 이어 핀란드에서 이미 결성됐던 여성건축가협회와 일본, 프랑스의 여성 건축가들을 모아 1963년 세계여성건축가협회를 창립했다. 반세기를 지나지 않아 회원국은 80개국으로 늘었고, 3~4년에 한 번씩 세계여성건축가대회를 여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협회는 건축가와 도시계획가, 인테리어디자이너, 조경디자이너, 환경 관련 전문인력과 연구원, 공무원을 아우른다.

`여자 건축가는 안 된다`는 인식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솔랑주 회장은 "1996년 헝가리대회에서조차 `이전엔 여자 건축가가 존재한 적이 없다`며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장 누벨, 렌조 피아노, 안도 다다오 등 외국 남자 건축가들이 공공건축물과 상업시설, 주택설계에 활발하게 참여한 데 반해 여성 건축가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적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한 이라크 출신 건축가로 건축계의 아카데미상 격인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자하 하디드 정도가 알려졌다.

`여성 건축가가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느냐`는 질문에 솔랑주 회장은 `위상은 분명히 달라졌다`고 정색했다. 세계여성건축가협회 창립 후 약 50년 만에, 그리고 국제건축가연맹이 1948년 창립한 후 60주년을 맞던 2008년에는 여성인 루이스 콕스가 국제건축가연맹 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그녀는 "하지만 아직 북아프리카 등 여성에게 건축가가 될 기회를 주지 않는 곳이 많다"며 "여성의 평등한 활동을 돕기 위해서 협회가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했다.

솔랑주 회장은 1924년생이다. 한국 나이로는 87세. 하지만 낮은 허스키 보이스에는 내내 카리스마가 넘쳤다. "스키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한 적도 있다, 시즌이면 어김없이 스키장으로 향한다"고 귀띔하는 모습에는 장난끼가 보였다.

26개 종목 스포츠를 즐긴다는 솔랑주 회장은 프랑스 스포츠시설협회(AFDES) 이사도 겸하고 있다. 그녀는 "설계사무실에서 열심히 싸울 수 있는 힘이 바로 이런 체력에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기사입력 2010.10.10 20: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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