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동 날개벽화’ 시민 추태로 사라져

옷까지 벗고 사진 촬영… 1박2일 나온 ‘이화동 날개벽화’ 시민 추태로 사라져
[쿠키 톡톡]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 등장해 유명세를 치른 이화동 ‘날개 벽화’가 주민 요청에 의해 삭제됐다.

이 작품을 그린 작가 ‘스위치걸(네이버 ID)’은 4일 자신의 블로그에 “이화동 날개벽화를 지우고 돌아왔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지난달 26일 KBS ‘해피선데이-1박2일’에서 이승기는 이화마을을 방문해 날개벽화 앞에서 천사가 되는 인증샷을 찍었다. 다채로운 벽화로 꾸며진 마을 모습이 전파를 탄 이후 이승기처럼 이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이 늘었다. 벽화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려는 인파는 평일 낮에도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작가가 블로그를 통해 전한 마을 주민의 불편은 상상이상이었다. 작가는 방송 이후 날개 한쪽의 귀퉁이를 보수해 달라는 요청에 다시 마을을 찾았는데 여기서 만난 많은 주민들이 한결같이 “벽화 때문에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새벽녘 작품 보수를 위해 작업을 하던 작가에게 다가온 한 주민은 “안 그래도 유명해서 사람이 끊이질 않았는데 방송이 나간 이후로는 밤낮 없이 사람이 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그림을 제발 지워달라고 사정하면서 “방송이 나간 이후 잠을 잘 수 없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촬영, 새벽이고 남의 집 앞이면 조심해 주면 좋으련만 소리치고 웃고 떠들어 너무 힘들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작가는 "어린 딸을 둔 아주머니가 ‘새벽 남자들이 우르르르 몰려와 옷을 벗어 팬티만 걸치고 사진을 찍어댔다’는 말에 할말을 잃었다”고 전했다.

이 작가는 “제가 무어라 말할 수 있겠냐”며 “우리의 시민 의식은 제 상상 범주를 훨씬 벗어난 모양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린 딸아이가 집밖을 나가지 못한다는 한 주민의 불만을 전하며 “집 앞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어린 마음에 이런 곳(현재 이화마을은 재개발대상지역이다)에서 사는 게 창피하다고 하더라. 우리는 괜찮은데 아이들이 창피해 한다며 제발 지워달라고 거듭 말씀하셨다”며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걸까”라고 자책했다.

또 “다들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지만 우리의 즐거움이 누군가의 상처와 불편을 담보로 한다면 그 일을 포기하는 게 맞는 거겠죠”라면서 날개 벽화를 옮겨 그릴 다른 장소를 추천해 달라는 글도 남겼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공공 미술의 성공사례로 꼽혔던 이화동 날개 벽화가 시민 의식 결여로 인해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 네티즌은 작가 블로그에 “방송에서 나온 멋진 모습만 보고 '저 동네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그날의 마음이 부끄러워진다"며 "동네 분들이 이번 일로 상처 받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적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2010.10.05 14:02]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