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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색채로 보는 각국의 '우체통'이야기

글∙사진 | 박명환 디자인뮤제오 실장, 에디터 | 김유진(egkim@jungle.co.kr)

거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전하는 우체통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있다. 색채와 모양은 각기 다르지만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풍기며 개성적인 목소리를 낸다. 형형색색의 우체통은 거리에서 만나는 시각적 즐거움의 하나이자, 때때로 도시를 상징하는 아이콘의 역할을 한다.
공공디자인은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케 하는 척도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며 사용하는 우체통 역시, 한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그 중 색채가 가지는 상징적 이미지는 나라마다 도시마다 그들의 성격을 대변한다.

각 나라별 공공 우체통의 색채를 분류해 보면 빨간색이 가장 많다. 한국, 일본, 영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호주, 멕시코, 포르투갈, 태국, 마카오 등에서 사용되었다. 빨간색이 내포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는 정열과 행복, 기쁨과 사랑, 자유와 열정이다.
노란색을 적용한 독일과 스페인, 스위스, 프랑스는 희망과 상상, 따뜻하고 즐거운 이미지를 담고 있어 권위적인 유럽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과 러시아는 파란색 우체통을 쓴다. 보수적인 국가 이미지 때문인지 신뢰감과 믿음, 안전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컬러를 선택했다.
그 외에 초록색이 적용된 아일랜드, 중국, 홍콩은 자연과 평화, 행운과 안전의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핀란드의 경우는 친근하고 따뜻하며 온화함을 상징하는 주황색 컬러로 춥고 지루한 북유럽의 기후를 극복하려는 느낌을 준다. 이 외에 검정색이나 회색으로 적용된 사례도 있으며 색을 혼용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같은 색을 적용함에도 고채도나 저명도로 느낌을 달리한 경우도 있다. 영국의 우체통은 역사적 우월과 특유의 고풍스럽고 멋스런 이미지를 저채도의 빨간색으로 깊이 있게 보여주며, 포르투갈 역시 역사적 자부심과 진취적인 이미지를 저명도의 빨간색으로 우아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와 반대로 일본의 경우, 국기에도 있는 태양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서인지 고채도의 빨간색을 띄며, 포르투갈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마카오도 고채도의 빨간색과 독특한 형태의 모습을 보인다. 초록색이 적용된 국가 중 중국과 홍콩은 저채도의 색으로 표현되었고, 아일랜드는 연중 흐린 날씨 때문인지 고명도의 초록색이 적용되었다.

대부분 공공디자인 조형물은 그 나라의 상징색이나 사람들에게 친근한 원색계열이 주류를 이룬다. 이렇듯 같은 우체통이라도 그 나라의 색채와 이미지를 다양하게 담고 있으며,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중요한 건 색채는 달라도 우체통이 상징하는 ‘기대감과 흥분, 그리고 기쁨’의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색은 한 국가 한 도시의 성격을 대변하는 컬러 아이텐티티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된다. 이것은 곧 한 나라의 이미지를 담는 또 다른 요소다. 그 속에 담긴 색은 해당 국가의 이미지를 소리 없이 생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박명환 학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컬러와 사인의 색채 감정효과’란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캐나다, 중국 등지에서 수학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겸 시각전문출판사 디자인뮤제오 실장으로 있으며 <도시 속 컬러를 읽다 Color Design Book>, <타임스퀘어 낮과 밤> 등 다수의 그래픽 서적을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