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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디지털시대에 손 맛으로 감성 자극하는 캘리그라피

임현욱 기자 gus@joongang.co.kr | 중앙선데이 | 제174호 | 20100711 입력

캘리그라피(Calligraphy)란 ‘특별한 곳’에 쓰기 위해 손으로 글씨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손멋글씨·상업서예라고도 한다. 소주병이나 책 표지, 영화 포스터에 들어간 멋스러운 글씨를 떠올리면 된다.
주로 붓을 사용하지만 나뭇가지나 펜으로 느낌을 살리기도 한다. 2000년 이전에는 대필소나 서예학원에서 손글씨를 제작했다. 이후 전문 캘리그라피 작가들이 등장했다.
 
현재 활동 중인 캘리그라피 작가 중 두 명이 그들의 세계를 이야기했다. 인터뷰 후 두 작가에게 캘리그라피로 쓴 ‘중앙SUNDAY 일요일 아침의 읽는 즐거움’이라는 문구를 받았다.


“의미만 존재하는 글자에 수 많은 감정 불어 넣지요”

국내 첫 캘리그라피 회사 ‘필묵’ 김종건 대표

한 팔로 책상을 짚고 서서 글을 쓰는 게 가장 편하다는 김종건 대표. 신동연 기자  
 
최초의 캘리그라피 전문회사 ‘필묵’의 김종건(39) 대표는 “이제는 ‘문방사우’가 아니라 붓·먹·종이·벼루에 ‘컴퓨터’를 더한 ‘문방오우’의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붓으로 글씨를 쓰고 스캐너로 글씨를 복사해 컴퓨터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 1일 오전 10시 서울 합정동 필묵 아트센터에서 만난 김 대표의 작업실에도 전통 서예도구들과 함께 컴퓨터가 여러 대 놓여 있었다.

김 대표는 “한글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문자인지 아세요”라고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학교’라는 단어를 보면 ‘ㅎㅏㄱㄱㅛ’가 한 글자씩 건축적으로 결합해 글자가 만들어지는데 구조적으로 얼마나 멋있는지 몰라요. 알파벳의 나열(school)에 그치는 영어랑은 비교가 안 되죠”라며 “한글의 특징은 초성·중성·종성을 모아 쓰는 건데 그것을 먹과 붓을 통해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하는 것이 캘리그라피예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이 환영받고 있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지난해 겨울 필묵 작가 8명이 참여해 제작한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라는 광화문 교보빌딩 대형 글씨는 완성하는 데 일주일 정도 걸렸다. 팀원들은 의뢰받은 글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 서체를 연구했다. 김 대표는 “작업을 시작하면 밥 먹을 때나 차를 탈 때나 온통 의뢰받은 글에 대한 생각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일주일간의 작업 후 8명의 팀원이 각자 1~2점씩 작품을 내 광고주가 그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으로 최종안이 결정됐다. 그는 “지난해엔 겨울을 표현하기 위해 글씨를 눈송이처럼 썼는데 그게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죠”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초등 4학년 때 서예를 시작했다. 친구 따라 간 서예학원에서 글씨에 빠져 대학도 서예학과로 갔다. “글씨를 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던 중 1989년 원광대에 서예학과가 생겼어요. 그걸 보고 이건 나를 위한 학과라며 다음 해 곧장 지원했죠.” 대학 졸업 후 서예잡지사 기자, 폰트회사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던 중 ‘스미’라는 일본 서예잡지에서 서예를 디자인화해 표현한 작품을 봤다. 전통서예만 해 오던 그에겐 충격이었다. 곧바로 캘리그라피 공부를 시작해 99년 회사를 차렸다.

처음에는 선배 사무실 한쪽에 책상 하나 놓고 일을 시작했다. 4~5년간은 돈을 전혀 벌지 못했다. 당시 시장의 분위기는 ‘뭐 하러 글씨에 돈을 들이느냐’며 냉담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여기저기 다니며 캘리그라피를 알렸다. “우리는 흔히 문자가 의미 전달 기능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캘리그라피는 그 생각을 뒤집어요. 글자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죠.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필묵은 2000년대 초반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담배 ‘순’, 소주 ‘스타일’,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챔피언’ 포스터, 광화문 교보빌딩 대형 글씨 등 많은 프로젝트를 맡았다. 교육원도 만들어 2001년부터 지금까지 5000여 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김 대표는 “ 이제는 질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예요. 요즘 걸핏하면 붓으로 하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붓글씨가 어울리는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거든요. 남발하면 금방 질리거나 유치해질 수도 있어요”라며 최근 과열된 분위기가 걱정된다고 했다.


“제품 알아야 좋은 글씨 나와 참이슬 땐 소주 엄청 마셨죠”


”‘참이슬’ 글씨 쓴 캘리그라피 작가 강병인

강병인 작가가 지금까지 작업한 술병들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신동연 기자  
 
강병인(48) 작가의 작업실 이름은 ‘술통’이다. 2일 오전 11시 홍익대 근처 작업실에 만난 그는 “술을 워낙 좋아해서 처음에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술 이름을 많이 썼네요”라고 말했다. 강 작가는 ‘참이슬·산사춘·대포·화요’ 등 다수의 술 이름을 캘리그라피로 작업했다.

그는 그중 2006년 작업한 ‘참이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처음에 의뢰가 들어왔는데 국민소주라고 하는 술 이름을 내가 쓴다는 게 많이 부담됐죠. 이름도 바꾸고 도수를 내려서 젊은 여성을 공략하자는 전략이라 이미지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의뢰를 받은 후 강 작가는 일단은 소주를 많이 마셨다. 표현할 대상을 잘 알아야 진짜 글씨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달가량의 준비과정 끝에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의 글씨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수천 장의 화선지에 글씨를 썼다. ‘슬’자의 경우 ‘ㅅ’은 여성의 머리 모양을, ‘ㄹ’은 젊음의 행복을 표현했다. 글씨를 완성하는 데 2~3주가 걸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참이슬’ 글씨체는 몇 번의 리뉴얼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자신이 쓴 글씨가 프린트된 술을 마시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처음엔 기분 좋은데 술이 취하면 내가 왜 이것밖에 못 썼나 하면서 자책을 많이 하죠(웃음)”라고 답했다.

강 작가는 2002년부터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술 이름 , 숭례문 가림막 글씨,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엄마가 뿔났다’ 등의 글씨를 캘리그라피로 썼다. 초등학교 시절 서예반에서 처음 붓글씨를 시작한 그는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서 양봉을 했었는데 서예반에 들어가면 꿀을 주겠다고 해서 들어갔다”고 말했다. 막상 들어가보니 먹을 갈고 화선지 위에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후 서예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스스로 ‘영원히 먹과 함께 산다’는 뜻의 ‘영묵’이란 호도 만들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디자인, 광고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중 2000년 초반 일본에 여행을 갔다. “일본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간판이 전부 손글씨로 돼 있더라고요. 우리 간판은 컴퓨터 폰트로 획일적인데 손맛을 살린 글씨를 보니 너무 멋져서 충격이었죠.” 한국에 돌아온 강 작가는 그때부터 디자인과 서예를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그리고 2002년 ‘술통’이란 작업실을 열었다. 처음엔 일이 많지 않았지만 2004, 2005년 캘리그라피가 유행하면서 그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그는 얼마 전 작업한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글씨를 보여주며 소의 뿔 형태가 연상되는 ‘뿔’자를 쓰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작업하기 전에 드라마 대본을 봤는데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던 엄마가 어느 날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내용을 보고 소가 생각났다고 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옆집 소를 돌봐주고 그 대가로 밥을 얻어먹었는데 소가 꼭 그렇다는 것이었다. 평소엔 조용히 있다가도 한번 화를 내면 말리기 힘든 것이 소였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뿔’을 썼는데 주변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했다. 강 작가는 “글씨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인생이 글자 하나하나에 그대로 표현돼 나오는 것이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