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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김명한의 세계 디자인 여행기, 야마가타 ASAHI-SOFU

아사히-소푸를 간 것은 2009년 11월의 일이다. 단독 여행이 아닌, 덴마크 가구 회사 임원들과 함께 한 여정이었다. 아사히-소푸가 덴마크 가구를 만드는 전문 회사이며 핀율의 가구까지 생산하기로 결정된 후 이뤄진 행사성 여행이었다. 회사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다. 그러나 그런 규모 보다 나를 더욱 감동시킨 것은 이 회사가 전형적인 사회적 기업이라는 점이었다.

사회적 기업과 디자인의 인간적 조합

비행은 싱겁게 끝났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두 시간 반? 센다이 공항에는 우리들을 데리러 온 아사히-소푸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버스 창 밖으로 잠깐 센다이를 목격할 수 있었다. 센다이 역시 오래된 풍경과 낯익은 현대건축물들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시내에서 벗어나자 전원이 나타났다. 귀에서 아득한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고지대 특유의 현상이리라.

아사히-소푸가 있는 야마가타현은 숲의 축복이 내린 곳이라고 우리를 안내하는 직원이 한 마디 했다. 오우산맥 품에 있어서 수많은 온천이 터져나오고 스키, 골프 등 스포츠 공간이 즐비하다고 했다. 풍경에 취했을까? 어렴풋이 잠이 들었나 싶었을 때 아사히-소푸에 도착했다.

아사히-소푸가 있는 서무라야마군西村山郡의 아사히정朝日町. 이 풍광 좋은 곳이 1960년대에는 빈한한 농촌이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파종기부터 추수기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했다. 쉴새 없이 일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빈곤 속에서 그들은 겨울이면 모두 이산가족이 되어야 했다. 가을걷이가 끝난 농촌에서 할 일이라고는 빈둥거리기, 무기력하게 해바라기하기 뿐이었는데, 모두 돈벌이와 상관없는 소모였다. 해서, 농사가 없는 겨울철이면 모두들 도시로 나가 잡일을 하며 돈을 모아 농사 준비가 시작되는 이듬해 2월쯤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누가 이런 라이프사이클을 좋아하겠나.

마을 사람들은 고민했다. 가족이 언제나 함께 오순도순 살려면 농사도 잘 되고, 농한기 때도 할 일이 있어야 할텐데… 해답은 숲에서 나왔다. 숲의 향기를 맡으며 태어나 숲에서 살고 숲으로 돌아가는 그들에게 ‘나무로 만드는 그 무엇’이야말로 자신들에게 잘 어울리는 ‘비즈니스’라는 생각을 했고 그 일은 바로 가구공장이었다.

이 생각을 해낸 사람은 아사히정의 이장이었다. 그는 주민들과 협의 끝에 도쿄가구조합에 면담을 요청했고, 일정이 결정되자 도쿄으로 날아갔다.

도쿄가구조합의 반응은 좋았다. 아사히 마을에서 가구공장을 만든다면 그곳에 가구 제작을 맞기겠다는 약속도 받아냈고, 자립을 위한 기술 지원 등 각종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했다. 가구 공장이 설립되기 전 사람들은 가구 재료로서의 나무를 배웠고, 그것을 깎아보았고, 구부려보았고, 조립해 보는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무엇보다 겨울이산가족을 끝낼 수 있다는 행복감에 안면에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 그런 준비 끝에 1971년 8월, 드디어 ‘아사히-소푸 목공가공공장’이 탄생했다.

덴마크가구를 만들어내는 장인 시스템

공장은 발전했다. 품질표준을 철저하게 지켰다. 돈벌이가 좋아지자 그걸로 마을 돈잔치를 하지 않고 설비와 인력에 재투자, 생산력과 품질을 세계 수준으로 올렸다.

그 결과 일본의 6대 가구공장 반열에 올랐고 세계적인 가구디자인회사의 제품도 만들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아사히-소푸의 제작 형태는 NAMELESS-BRAND 즉, 이름없는 브랜드다. 그들은 이 NAMELESS-BRAND라는 구호 앞에 ‘Why not?’을 붙여 ‘Why not? NAMELESS-BRAND’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완성시켰다. 번역하면 ‘OEM이 뭐 어때서?’ 쯤 될 수 있을까?

가구의 기본은 디자인이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19세기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디자이너와 가구 회사가 제품을 기획하고, 그 기획을 100% 구현할 수 있는 가구공장에서 그 가구를 제작한다.

그러므로 가구공장이 디자인의 완성도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Why not? NAMELESS-BRAND’라는 자신감이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아사히-소푸’는 도쿄가구조합의 도움으로 목공공장을 열 수 있었지만 이제 도쿄가구조합은 물론 일본 전역의 가구회사의 디자인을 완성시키고 있으며 세계 가구의 꼭지점에 있는 스칸디나비안 가구까지 생산하는 세계적인 회사로 발전했다.

아사히-소푸에는 현재 천여 명의 디자이너가 협력자로 등록되어 있다. 시스템은 이렇다. 공장이 있고, 판매회사가 있고, 디자이너가 있다. 디자이너가 판매회사에 제안하거나 판매회사에서 디자이너에게 의뢰한 디자인을 공장에 보낸다. 그러면 공장에서는 그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 도면을 만들고, 삼자 협의가 끝나면 시제품을 만들어 보고, 3자가 합의가 되면 생산에 들어간다.

아사히-소푸는 최근 경사 하나를 만들었다. 그간의 실력을 인정받아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핀율의 45번체어 생산을 맡게 된 것이다. 핀율은 덴마크의 영웅적 디자이너다.

그의 가구는 그가 세상을 뜬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독보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세계 유수의 가구 제작사들이 핀율의 가구를 만들기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그 핀율의 45번 체어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ASAHI-SOFU www.asahi-sofu.co.jp

山形県西村山郡朝日町大字宮宿 600-15

아사히-소푸의 조상 야마가타 숲 여행

아사히-소푸가 가능했던 것은 이곳이 숲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인류의 조상이다. 나무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류사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그 안에 우주 질서가 모두 들어있다.

나무를 이해하면 나무와 이야기하게 되고, 그 물성을 깨닫게 되면 나무 덕에 부자가 되기도 한다. 숲의 나라 야마가타, 아사히-소푸가 있는 서무라야마군西村山郡은 특히 깊은 숲으로 유명한 곳이다.

자오온천

서기 110년에 발견된, 세상에! 1900년 된 온천지역이다. 독특한 유황냄새와 강산성 온천수가 매력적이다. 비누를 쓸 수 없을 정도의 강산성 유황온천인데, 체내 수분량을 증가시켜 혈관을 젊게 하여 피가 잘 돌게 해준다. 상처, 당뇨, 근육통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31곳의 온천과 100여 곳의 숙박시설이 있다. www.zao-spa.or.jp

자오온천스키장

사진에서 보듯이 슬로프 풍경이 완전히 색다른 이곳이 온천과 수빙(樹氷), 그리고 파우더 스노우 겔렌데로 명성 높은 자오온천스키장이다. 슬로프 주변이 솟아있는 것들이 바로 자오의 심볼인 ‘수빙’이다. 수빙은 아마가타의 독특한 겨울 기후가 만들어낸 예술 작품으로 아오모리 도도마츠(분비나무)에 눈과 얼음이 뒤섞이며 만들어진 것이다.

장기말과 텐도온천

이곳은 일본 최대의 장기말 생산지이다. 장기말이란 장기 둘 때 사용하는 말을 말한다. 인간장기가 개최되는 벚꽃의 명소 마이즈루공원의 북측에 위치한 텐도 온천은, 1886년 관개용수를 확보할 목적으로 가마다바루에 우물을 파는 도중 미온수가 솟아올랐고, 1911년 고온의 원천이 솟아 오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온천 지역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히로시게 미술관

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진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이 수집된 히로시게 미술관. 미술관 내에는 에도 시대 후기에 활약했던 초대 히로시게부터 4대째 히로시게까지 니쿠히쯔가(핸드 라이팅 풍속화의 한 기법)와 니시키에(다색 풍속화 판화)가 전시되어 있다. www.takinoyu.com/hiroshige

야마가타 전통 코케시관

일본 동북 지방의 귀중한 전통인 코케시, 목재 완구, 서적 문헌 등 수장하고 있는 6천 점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전시해놓았다. 야마가타 역에서 순환버스를 타고 나노까마찌 정류장에서 내려 1분만 걸으면 나온다. www.kankou.yamagata.yamagata.jp


■ 김명한은?

21세기 우리나라 디자인의 초강력 아이콘으로 뜬 김명한은 지금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그가 찾아다니는 디자인의 공통점은, 뛰어난 완성도는 물론 사회적 기업, 공공디자인, 메타디자인 등 ‘선한 디자인’들이다. 앞으로 한 달에 한번 김명한의 족적을 정리해드리겠다. 디자인 여행기들은 김명한이 이야기하고 여행작가 이영근이 정리하며 aA디자인뮤지엄의 무크지 ‘캐비닛’에 모인다.

[이영근 프리랜서 / 사진 = 김명한, 야마가타관광청 제공]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241호(10.08.24일자) 기사입니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