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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자동차디자인, 복고풍 열기에 휩싸인 이유

흔히 현재보다 과거의 이야기를 많이 할 때 사람들은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앞으로 살날보다 살아온 시간이 더 길 때 자신도 모르게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라는 것은 때로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새로운 현재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려서 아버지가 타고 다녔던 자동차가 세월이 흘러 현대적으로 재탄생했을 때 자신에게는 회상이 되지만, 아이에게는 또 다른 새로움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68년형 포드 머스탱

레트로 자동차 열풍이 한창이다. 자동차에 있어 레트로 디자인(Retro Design)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930-1960년대 과거에 유행했던 자동차의 고전적인 스타일이나 이미지를 기본으로 현대 디자인의 새로운 기술이나 조형성을 적용하는 최근 디자인 트렌드의 하나'로 규정해 놨다. 과거의 예스러움에 현대의 모습을 덧씌우는 일이 바로 레트로인 셈이다.

972년형 포드 머스탱

요즘 등장하는 자동차에서 레트로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레트로 자동차는 소비자들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심지어 몇몇 차종은 오래 전 인기를 얻은 모델을 최대한 닮도록 만들어 레트로보다는 리디자인(Redesign)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레트로든, 리디자인이든 마치 과거를 부활시켜 놓은 듯한 모습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유혹한다.

2006년형 포드 머스탱 GT

복고풍 자동차의 선두는 미국이다. 그 중에서도 포드와 크라이슬러는 일찌감치 레트로풍을 자동차 스타일에 담아내며 세계 소비자들의 감성을 사로잡고 있다. GM도 최근 들어 레트로 흐름에 뒤늦게(?) 합류하고 있다.

2006년형 포드 머스탱 GT 주행


 ▲과거 영광의 현대적 부활

2006년형 포드 머스탱 GT 계기판

앞뒤 디자인을 조금씩 클래식 스타일로 만든 단순한 복고풍도 있지만, 진정한 레트로 모빌이란 스타일뿐 아니라 당시의 감성까지 포함한 자동차다. 여기에는 통상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새로운 모델을 내놓을 때 디자인을 처음부터 레트로풍으로 가는 것과 과거 엄청난 인기를 누린 인기차종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게 그것이다. 특히 오래 전 주목받았던 인기차종의 재해석은 지금 사람들이 어려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다니며 봤던 차로, 이들의 감성으로는 마치 과거와 이어주는 매개체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폭스바겐 비틀

포드자동차의 신형 머스탱과 BMW 미니, 폭스바겐 뉴 비틀 등은 과거 화려한 스포츠카로, 그리고 누구나 타는 국민차로 사랑을 받았던 자동차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1967년형 4인승 머스탱 GT250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머스탱은 사실 미국인들에게는 과거 영광의 재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자동차 영웅 리 아이아코카와 포드 2세가 만나 머스탱을 등장시킨 게 1964년의 일이다. 유럽형 스포츠카 개발을 외치며 내놓았던 머스탱은 1년여 만에 100만 대 판매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기며 미국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누려 왔다. 그러나 이후 유럽 정통 스포츠카의 등장과 오일쇼크로 인한 유가인상 등이 겹치며 인기는 한풀 꺾였지만 지금도 머스탱은 미국인들에게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아 있다. 포드의 신형 머스탱은 이런 미국인들의 향수를 겨냥해 만들었고, 외관뿐 아니라 실내도 옛적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놨다.

폭스바겐 뉴 비틀

머스탱과 달리 뉴 비틀은 독일의 국민차였던 폭스바겐의 재탄생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 뉴비틀의 원형인 비틀은 미국 사람들이 붙여놓은 별명일 뿐, 이 차의 원래 이름은 폭스바겐(Volkswagen)으로 '국민차'라는 뜻을 담고 있다. 2차 대전 때 히틀러가 포르쉐 박사로 하여금 국민차 개발을 지시했고, 그 결과 나온 차종이다. 하지만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히트를 치며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각인됐고, 급기야 지금은 자동차회사가 된 폭스바겐이 이 차의 별명이었던 비틀과 디자인을 재구성해 '뉴 비틀'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물론 뉴 비틀은 소비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사람들은 이 차를 통해 과거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며 흐뭇함을 느낀다. 만든 사람과 출생국가는 조금 다르지만 BMW 미니 또한 뉴비틀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러 과거 영광의 재현이라는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지켜내고 있다.

구형 미니 쿠퍼(클래식)

복고풍 대형세단으로는 크라이슬러 ;300C와 아우디 A8, 롤스로이스 팬텀이 꼽힌다. 300C는 1950년대 등장한 '300'에서 차명을 빌려왔는데, 이전 300M과도 연관이 깊다. 특히 300C는 과거 차종의 재현이라기보다는 몇몇 스타일만 가져왔다는 점에서 레트로풍 자동차로 분류한다. 60년대 미국의 대형차들은 힘을 강조하기 위해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을 썼는데, 300C 또한 당시의 분위기를 되살려 내기 위해 엄청나게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을 채용했다. 이는 아우디 A8과 롤스로이스 팬텀에서도 발견되는데, 이처럼 대형 라디에이터는 압도적인 위압감과 자신감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대형세단에 주로 적용한다.

신형 미니 쿠퍼 

 ▲레트로의 시작, 자동차경주

사실 레트로 스타일은 스포츠카에 많이 적용한다. 그 이유는 스포츠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갖고 싶은 열망이 있는 데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동차회사도 스포츠카로 기술을 과시하는 데에 매진해 온 덕분에 스포츠카의 레트로 트렌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크라이슬러 1955년형 300과 2005년형 300C

하지만 이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면 훨씬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초창기 유럽의 자동차 문화는 미국과 달리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헨리 포드가 포드 T형으로 미국에서 자동차 대중화를 이끈 것과 달리 유럽은 몇몇 장인들이 자신의 기술을 집약한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동차를 만들어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러던 중 자동차를 소유한 귀족들이 자신의 자동차를 자랑하기 위해 서로 경주를 하는 게임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자동차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인다는 것은 자동차 개발자에게는 자신의 새로운 자동차를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고, 게임에서 이기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자동차경주가 자동차회사의 스포츠카 개발을 부추겼고, 사람들은 자동차경주에서 입증된 고성능 스포츠카에 열광하게 됐다.

1960년형 포르쉐 356

포르쉐 복스터는 과거 356 프로토타입과 제임스딘이 즐겨 탔다는 경주용차 550 스파이더의 몇몇 디자인을 다시 적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550 스파이더가 복스터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물론 550 스파이더는 자동차경주용으로 만들어진 차종이고, 복스터는 일반도로용이기는 하나 보디와 일체형 범퍼, 싱글 헤드라이트, 테일램프, 리어 범퍼 중앙에 있는 배기구 등은 서로 크기와 모양만 다를 뿐 기본적인 디자인 설계는 매우 비슷하다. 550 스파이더는 제임스 딘이 마지막 죽기 전 몰았던 자동차로도 유명한데, 유럽에선 경주용차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포르쉐 박스터S

스포츠카 중에서도 세단형으로는 재규어 S-타입과 XK시리즈가 레트로 모빌로 꼽힌다. S-타입은 59년형 S-타입에서, XK시리즈는 60년대 자동차경주에서 이름을 날렸던 E-타입을 모방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2차대전이 끝난 후인 1945년 재규어 창업자인 윌리엄은 회사 이름을 재규어(Jaguar Car Ltd)라 바꾸고, 1948년 스포츠카 XK120을 출시한다. 스포츠 모델의 라인업을 일컫는 XK 시리즈는 120에서부터 140, 150으로 이어졌으며, 자동차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C-타입과 D-타입으로 맥이 이어졌다.

재규어 경주용 모델(E, D,D, XKSS)

1955년에는 세단형인 MK 시리즈의 첫 차인 MK1을 발표했는데, 2.4ℓ 엔진을 얹은 이 차는 최고시속이 193km나 됐다. 1959년 발표한 MK2는 4등식 헤드램프를 가진 재규어 디자인의 효시로 2.4ℓ와 3.4ℓ 모델이 있었으며, 시속 201km까지 달릴 수 있었다. E-타입은 1960년 재규어가 다임러(Daimler)를 인수한 뒤 내놓은 모델이다. XK120을 부활시켜 내놓은 E-타입은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일으킬 수 있는 몇 안되는 차로 평가받았는데, 특히 길게 굴곡진 모습과 아름다운 균형미의 2인승 쿠페와 컨버터블은 경주용 차의 유산을 물려받아 지상고가 낮았던 게 특징이다. 하지만 XK120에서 C-타입, D-타입이 진화했고, 또 E-타입은 XK120의 부활이라는 점에서 결국 XK시리즈는 과거 재규어 경주용차의 종합 레트로 모빌로 볼 수 있다.

재규어 E-타입


 ▲레트로 자동차의 진정성

2006년형 재규어 S-타입

앞서 레트로 자동차를 사전적 의미로 규정해 봤지만 사실 그대로 단정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단지 겉모습만 놓고 레트로라 하기에는 감성적인 부분이 배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레트로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감성, 그리고 무엇보다 향수를 담고 있어야 제격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레트로에는 미래가 담겨 있어야 한다. 만약 과거의 모습만 그대로 재현하면 이는 레트로가 아닌, 레플리카(Replica)의 범주에 머물러야 한다.

2006년형 재규어 XK시리즈 옆모습

어떤 이는 이런 이유로 레트로 자동차를 '과거라는 모습에 미래라는 기관을 내장시킨 자동차'로 표현하기도 한다. 모양으로는 과거를 지향하지만 성능이나 기타 상품성에선 미래를 겨냥하고 있다는 뜻이다.

2006년형 재규어 XK시리즈 주행

지금 우리가 새로운 형태, 파격적인 스타일로 인식하는 자동차 가운데 기억에 남는 차가 있다면 훗날 레트로 자동차의 원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에는 없는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전혀 새로운 레트로가 탄생할 것이다.

1955년형 시보레 벨에어

시보레 벨에어 컨셉트카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오토타임즈 | 2010/08/04 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