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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 ①

車에 담긴 표정·이야기 그게 디자인이죠 
단순히 멋진 모습만으론 부족 차별화된 `아이덴티티` 갖춰야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 ①◆   
 

구상 한밭대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도로 위에서 굉음을 내며 달리는 슈퍼카에 눈길을 준 적이 있는가. 엔초 페라리,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등 슈퍼카는 단지 고성능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스타일 때문에 마음을 빼앗긴다. 사진만 보고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 다이내믹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슈퍼카만이 아니다. BMW 미니, 폭스바겐 비틀, 닛산 큐브는 작고 깜찍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디자인의 힘이다. 소프트웨어인 디자인이 자동차 경쟁력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자동차 디자인 전문가로 인정받는 구상 한밭대 산업디자인학부 교수(44)가 독자들이 자동차 디자인의 매력을 맛볼 수 있도록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를 5회 연재한다. 구 교수는 서울대 미술대학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홍익대에서 미술학 석사를, 서울대에서 디자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아차 디자인연구소에 입사해 크레도스 책임 디자이너, 미국 캘리포니아 기아차 디자인연구소 선임 디자이너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자동차디자인 핸드북, 자동차 디자인 아이덴티티의 비밀 등 디자인 관련 서적도 왕성하게 집필했다. 지난해에는 자동차 디자이너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의 자동차디자인 소설책 `꿈꾸는 프로메테우스`를 쓰기도 했다. 
 
1939년 벤츠 170V --> 벤츠 S Class 2010년형  
 
최근 자동차 디자인에서 나타나는 경향은 감성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의 제품으로서 자동차가 가지는 물리적인 기능보다도 심리적 기능이 커지고 있음을 뜻한다. 단지 성능이 좋은 엔진을 가지고 있다든가 혹은 좋은 가죽으로 의자가 만들어졌다든가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좋은 제품일 뿐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물리적으로 좋은 제품의 수준을 뛰어넘어 그 차가 어떤 표정을 가지고 있느냐 혹은 어떤 전설적인 이야기를 가진 브랜드인가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단지 깔끔한 기계가 아니라 표정과 이야기를 가진 자동차를 통해 대리만족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비자와 자동차 메이커 모두 그러한 이미지를 제3자에게 보여주는 도구로 디자인 아이덴티티(design identity)를 중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어떤 제품이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다듬어지지 않은 외형을 가지고 있다면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인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본래의 뛰어난 기능적 가치도 인정받지 못해 성공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지 제품이 `멋있다`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번듯하고 깔끔한 겉모양 이전에 좀 더 근본적인 `디자인 아이덴티티` 문제가 새로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가진 기술적 특성이 자사 차량에서의 주된 차별화 요인이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자동차 메이커들의 인수와 합병으로, 메이커들 간에 기술적 차별성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기업들이 차량을 구성하는 부품이나 플랫폼(flatform) 등을 서로 공유하면서 기술적인 특징은 평준화하고 오히려 각각의 브랜드가 가지고 있었던 역사나 감성 요소가 차별성의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한 차별화된 특징을 보여주는 방법이 바로 차체 디자인이기 때문에 최근 자동차에서 디자인 아이덴티티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 디자인 아이덴티티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 프리미엄 메이커들이다.

1980년대까지의 아우디 차량들은 통일된 이미지 없이 전면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가 수평으로 배열된 리브(rib)를 가진 형태였으나 1989년부터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를 분리한 형태로 바뀌게 된다. 2005년형 모델부터 전격적으로 라디에이터 그릴을 하나의 큰 단위로 통합하고 단순화해 차체 전면부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보여주는 모노프레임(Mono-frame) 라디에이터 그릴을 채택하게 된다. 이것은 1930년대의 반더러(Wanderer) 모델에 사용된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의 이미지를 주제로 해 모던한 이미지의 전면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아이덴티티의 차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1936년 아우토우니온 반더러 쿠페 --> 아우디 2010년형 A8  
 
그런데 이런 방법은 사실은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자동차 메이커 벤츠에서 해오던 방법과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벤츠는 20세기 초 개발한 수랭식 냉각장치의 기술력을 강조하기 위해 전면의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을 대표적인 아이덴티티로 만들어 왔다. 이에 따라 전면의 이미지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으로 통일된 형식을 유지하면서 차종별로 차체 디자인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쓴 것이다. 벤츠는 라디에이터 그릴의 가로 세로 비율과 세부적인 형태는 변화되면서도 1930년대 이후부터 공통적인 이미지로 통일시켜서 디자인해 왔다.

BMW 역시 1933년에 내놓은 303모델의 두 개로 나뉜 일명 키드니(kidneyㆍ콩팥)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 형태를 동일하게 유지시켜 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벤츠 사례와 유사하게 키드니 그릴 형태는 유지하지만 비율이나 세부 형태 등은 차체 디자인에 따라 변화돼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메이커들이 이처럼 통일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갖는 것은 아니다. 독일 브랜드들은 차종에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통일된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같은 독일 메이커이면서 대중적인 차량이 중심이 되는 폭스바겐은 각각의 차량 모델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이나 감성을 중시하는 디자인 전략을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뉴 비틀(New Beetle)은 클래식 비틀과의 디자인 연관성을 가지면서 보다 여성적이면서 부드러운 이미지의 차체 디자인을 가지는 반면 골프(Golf)는 실내공간의 활용성과 성능이 중심이 되는 기능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차체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 두 차량 모델이 지향하는 기능적 목표는 다르며, 그에 따라 차체 디자인의 형태와 전면의 디자인 이미지 역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이 전면 디자인에서 공통된 이미지는 원형의 폭스바겐 엠블럼뿐이다. 그런데 이들 두 차량은 엔진을 비롯한 플랫폼은 대부분이 공유된다. 그러나 각각의 차량이 지향하는 소비자와 시장이 다르며, 뉴 비틀은 클래식 비틀(Classic Beetle)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골프는 1979년 이후 오늘날까지 6세대에 걸쳐 진화한 기능적인 차량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즉 폭스바겐 브랜드로서의 아이덴티티보다는 각 차종의 아이덴티티를 더 강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리미엄인가 또는 대중적인가에 의한 브랜드에 의한 이러한 아이덴티티 전략의 차이는 지금 살펴본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중 브랜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포드나 도요타 등의 차량들 역시 전체적인 통일성보다는 각각의 차종별 특징을 강조하는 디자인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요타의 소형 승용차 아이고(Aygo)와 중형 승용차 캠리(Camry)는 차체 디자인에서 닮은 모습이 없다. 아이고는 마치 표정을 가진 귀여운 이미지면서 둥글둥글한 모습이다. 반면에 캠리는 중형 승용차로서의 직선적 이미지다. 브랜드 전체의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각 제품 안에서의 아이덴티티(product identity) 개념으로 디자인이 개발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품 중심의 아이덴티티는 다른 일본의 대중 브랜드 닛산이나 혼다 역시 어느 정도 같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국의 대중 브랜드인 포드 역시 비슷하다.

■ 아우디의 정체성, LED 램프만 봐도…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공통점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같은 전면부를 대표하는 디자인 요소를 통일된 양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벤츠나 BMW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아우디 역시 2005년형 차량부터 `모노 프레임(Mono Frame)`이란 명칭으로 통일된 라디에이터 그릴을 디자인함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통일된 아이덴티티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아우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헤드램프 디자인을 보다 특징적인 요소로 활용하여 LED(Light Emmiting Diod)를 이용한 주간 주행등(Daylight driving lamp) 장착과 아울러 램프 자체 디자인도 마치 생명체 눈을 연상시키는 형태와 점등 시 강렬한 이미지를 함께 고려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아우디 헤드램프 디자인은 아우디 브랜드 고유 이미지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헤드램프뿐만이 아니라 테일램프에도 LED를 이용한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했다. 광선을 이용한 새로운 디자인 이미지를 통해 보다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는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제시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런 광선을 이용하는 이미지는 국내 메이커들도 최근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 주간 주행등에 대한 규제사항이 없으므로, 아우디와 같은 주간 주행등 개념은 아니고, 미등을 대체하는 보조적인 등화장치로 채택하고 있다. 광선을 이용한 디자인은 앞으로 더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구상 한밭대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출처 : 매일경제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0&no=185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