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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청바지계의 대부' 디자이너 프랑소와 저버

값비싼 청바지 시대는 이제 끝났다
'청바지계의 대부' 디자이너 프랑소와 저버
60~80년대 스톤워싱·배기 진 등 발명…
"수십만원짜리 바지에 질린 사람들에게 '거리의 옷' '청춘의 옷'을 돌려줘야"
"물 소비 적은 청바지로 다시 혁명 꿈꿔"


이들은 여전히 청바지의 소명(召命)을 믿는다. 수십만원짜리 프리미엄 진이 득세하고, 청바지 상표가 신분의 상징인 시대. 언제부터 청바지가 이런 자본주의적 욕망의 화신이 된 걸까. "내가 꿈꾸던 청바지는 거리의 옷이었고, 변혁의 옷이었다. 그리고 우린 아직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청바지계의 대부'로 불리는 프랑스 디자이너 마리떼·프랑소와 저버(Marithe·Francois Girbaud). 1990년대 한국에선 장동건이 '우리들의 천국' 등에 입고 나와 불티나게 팔렸던 바로 그 청바지,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를 만든 주인공이다.

이들이 지난 13일 패션교육기관 '에스모드 서울'의 패션 학도들이 만든 새로운 청바지를 품평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왔다. 학생들의 옷을 살펴본 프랑소와 저버(65)는 이렇게 말했다. "좀 더 대담해져도 된다. 혁명은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

▲ 소신있는 언행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프랑소와 저버. 13일 만난 그는“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에스모드 서울’학생들이 만든 데님 작품 앞에 벌렁 드러눕는 포즈를 취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스톤워싱 진, 배기 진, 인디고 진, 엔지니어드 진…. 이 모든 게 당신의 발명품이라고 들었다.

"1967년 스톤워싱 진을, 1978년 처음으로 배기 진을 만들었다. 리바이스가 히트시킨 엔지니어드 진은 1988년 내가 만든 메타모포 진(Metamorphojean:변형진)을 대량상품화한 것이다. 가난한 뒷골목에서 자란 난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근사한 옷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성의 해방, 사회 변혁의 표현, 억눌린 이들의 자아를 옷으로 표출하는 게 내 목적이었으니까. 그래서 옷을 빨고, 찢고, 구기고, 늘어뜨렸다."

―청바지를 미국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해방하겠다고 주장했던 적도 있다.

"흔히 청바지를 미국 서부 문화의 상징으로 본다. 물론 청바지의 시작은 미국 광부를 위한 옷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마리떼와 나는 청바지에 유럽 혁명의 정신을 입혔다. '섹시 진'이란 제품을 내놓고 여자도 청바지를 입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도, 미국과 전혀 다른 옷임을 선언하기 위해 스톤워싱 기법을 도입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 변혁 정신이 미국에서 쏟아지는 프리미엄 진의 득세로 희석된 게 안타깝다. 아시아 디자이너들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동양인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자마자 알 수 있는 청바지, 누가 봐도 혁신적인 디자인의 청바지를 내놔야 한다. 아직도 아시아 디자이너들은 미국과 유럽의 디자인을 재해석하고 살을 붙이는 데만 만족한다."

―이번에 학생들의 작품 중엔 한지사(닥나무 종이와 실크 등을 혼합한 실(絲))로 만든 청바지도 여럿 있었는데?

"시도는 좋다. 하지만 그걸론 부족하다. 한지사로 만들었다는 걸 강조해봤자 디자인이 압도적이지 않다면 무슨 소용인가. 옷은 철저히 디자인 그 자체로 웅변해야 한다."

―최근엔 스톤워싱 기법 대신 '와트워싱(Wattwashing)' 기법을 내놨는데.

"1960년대 말엔 청바지 염료를 빼서 얼룩덜룩하게 만드는 것으로 또 다른 시대가 왔음을 알리고 싶었다. 젊은 층의 반향도 뜨거웠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 난 이 발명품을 저주한다. 이 스톤워싱 바지 하나를 만들려면 150L의 물이 든다. 패션이 전 세계 강을 오염시키는 뜻밖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고심 끝에 5L의 물만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와트워싱을 개발했다. 두 번째 혁명을 꿈꾸는 이유다."

―다시 한국에 진출하려고 한다고 들었다.

"프리미엄 진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수십만원짜리 나태한 청바지에 질린 이들에게 다시 거리의 옷, 청춘의 옷을 전파하겠다. 몇 년 전 여자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서는 러시아 갑부가 내가 만든 청바지를 입은 걸 보고 충격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린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의 젊은 패션 학도들도 좀 더 공격적으로 꿈꿨으면 좋겠다."

조선일보 | 송혜진 기자 enavel@chosun.com  | 입력 : 2010.07.16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