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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패션과 IT의 만남… 내 아바타가 옷 입어보면 스마트폰으로 구매

디지털 패션

지난해 12월 발렌티노의 3차원(3D) 가상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컴퓨터에 애플리케이션을 공짜로 내려받으면 거장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드레스, 스케치, 사진자료 등을 생생하게 둘러볼 수 있다. 발렌티노 3D 가상박물관 홈페이지

“옛날 만화 주인공들은 몸에 딱 붙는 쫄쫄이만 입었지만 요즘은 패션 취향이 다양해졌어요. 우리가 그걸 가능하게 하죠.”

이창환 에프엑스기어 대표와 공동창업자인 최광진 기술이사는 인기 애니메이션 ‘슈렉’에 옷을 입혀주는 사람들이다. 주인공들이 움직이거나 바람이 불 때 실제처럼 옷자락이 흔들릴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사람의 움직임과 외부환경을 일일이 공학적으로 계산하는 첨단 기술이다. 실크, 울, 한복까지 소재에 따른 변화도 모두 계산된다. 이 대표와 최 이사는 2004년 서울대 박사과정 중에 이런 기술을 담은 옷감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퀄로스’를 개발해 벤처회사를 차렸고 무작정 슈렉의 제작사 드림웍스의 문을 두드렸다. 엔씨소프트와 영화사 등도 그들의 고객이다.

3차원(3D) 게임과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옷차림이 점점 정교해지자 이들은 실제 사람에게도 옷을 입혀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게임 캐릭터처럼 사람도 자기 모습과 똑같은 아바타를 디지털 공간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서울대 디지털 클로딩센터 등과 연계해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며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온라인 쇼핑 등 디지털 공간에서 옷이 들어가는 모든 영역에 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프엑스기어처럼 정보기술(IT)에서 시작해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곳도 있지만 거꾸로 기존 패션업체들도 IT에 다가가고 있다. 패션과 IT가 만나 이른바 ‘디지털 패션’이 시작되는 셈이다.

디지털 패션이 본격화하면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로 옷을 디자인하고 아바타에게 옷을 입혀본 뒤 곧바로 생산에 들어가도록 해 빨리 옷을 만들 수 있다. 또 소비자들은 자신의 아바타에게 옷을 입혀볼 수 있고, PC에서뿐 아니라 스마트폰, 스마트TV에서도 언제든지 쇼핑할 수 있게 된다.
최 이사는 “랄프로렌, 루이뷔통 등 명품 브랜드들이 오히려 의류 제작에 IT를 활용하는 데 관심이 더 크다”며 “자라, H&M처럼 유행에 맞춰 빠르게 옷을 만드는 ‘패스트 패션’이 뜨는 것도 패션의 디지털화에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명품업체들은 마케팅에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발렌티노. 지난해 12월 거장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작품을 담은 3D 가상박물관을 열었다. 컴퓨터에 애플리케이션을 공짜로 내려받고 클릭하면 3D 게임처럼 가상 박물관 속을 탐험할 수 있다. 현실의 넓이로 계산하면 1만 m²(약 3300평)에 달하는 공간이다.

질스튜어트뉴욕은 지난해 9월 국내에서 3D 가상 패션쇼를 열었고, 버버리는 세계 150개국에 패션쇼를 생중계한 뒤 각 매장에 홀로그램으로 패션쇼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가장 큰 화제가 될 서비스는 아바타 쇼핑이다. 나와 똑같은 아바타를 하나 만들어 두면 기성복을 쇼핑할 때도 맞춤복을 만들 때도 집 안에서 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이미 코오롱인더스트리의 골프웨어 엘로드는 손과 발을 스캔해 맞춤 장갑과 골프화의 ‘인솔’을 만든다.

손과 발을 넘어 자기 몸을 스캔하거나 치수를 입력해 아바타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다. 지식경제부 산하 재단법인 아이패션 박창규 센터장은 “교통카드가 상용화될 때처럼 표준화된 시스템이 유통과 패션에 적용되면 아바타를 통해 쇼핑하는 시대도 머지않았다”며 “최근 모바일 혁명에 대해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올해 안에 본격적인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기사입력 2012-02-03 03:00:00 기사수정 2012-02-03 11:09:06 |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