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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노페’ 열풍으로 본 ‘교복 패션’ 변천사…‘브랜드 광풍’ 늘 있었다

‘등골 브레이커(breaker)’란 말이 생겼다. 20~80만원을 호가하는 한 특정 브랜드의 다운점퍼를 지칭하는 말이다. 본래 40~50대의 등산복으로 인식되던 이 브랜드가 아직 경제력이 없는 1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자, 이를 사줘야 하는 서민 부모는 ‘등골이 휜다’는 의미다.

교복 위에 입는다고 해서 브랜드 이름을 따 ‘노페 교복’ 이라고도 하고, “비싼 만큼 따뜻하냐”고 비꼬는 뉘앙스로 ‘북극 잠바’ 라고도 부른다. 어른들은 ‘철없는’ 10대들의 모방심 아웃도어 열풍이 더해진 현상이라는 분석들을 내놓으며 혀를 찼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자.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 게 밥을 먹는 것보다 중요하고,고가의 수입청바지를 구하기 위해 이태원을 샅샅이 뒤지거나, ‘에어 조던’ 농구화를 사기 위해 없는 보충수업을 만들어 돈을 탔던 일. 당신에겐 없었는지.


▶1980년대 교복 자율화 세대, 수입 청바지=60~70년대는 제외하도록 한다. ‘먹고 사는 것’ 말고도 제법 입고 치장하는 것에 너그러워진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교복 자율화 세대다.

교복은 없었지만 ‘교복’ 이라 부를 수 있는 비슷한 스타일로 등교를 했다. 저마다 기억하는 유행 스타일엔 차이가 있다. 브랜드도 다양하다. 가격대, 개인적인 선호도와 관계없이 죠다쉬, 뱅뱅, 행텐, 게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나이키, 리복, 프로스펙스, 헌트, 브렌따노, 리바이스 등의 브랜드 등이 떠오른다.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죠다쉬 청바지. 하지만, 지금의 ‘노페’ 와 같은 ‘등골 브레이커’는 게스, 마리떼 프랑소아 저버 같은 수입청바지다.

“용산ㆍ이태원ㆍ동두천 등에 있는 수입상가에 가서 구하곤 했는데, 빨간 물음표 게스 마크가 그려진 뒷주머니를 보고 친구들이 ‘우와’ 해주면, 어린 맘에 우월감이 느껴졌다” (김○○, 남ㆍ43)

“얼마나 명성이 자자했는지, 아이들 사이에선 소매단을 걷어 올리며 ‘나, 접어(저버)입었어’ 라는 말도 유행했다” (이○○, 여ㆍ41)

여기에 나이키와 리복에서 출시된 하이탑 슈즈, 일명 ‘비비화’ 라고 불린 운동화를 신는다. 즉시 ‘내가 제일 잘나가’ 라고 외칠 수 있는 순간.

▶1990년대 초ㆍ중반, 나이키ㆍ리복 농구화=80년대 후반부터 수입청바지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며, 이름도 애매한 검정 청바지, ‘블랙 진’ 이 등장한다.

소재와 색상이 무궁무진해진 지금에 와선 참으로 평범한 아이템이다. 진 소재의 바지에 검은 색을 입혔을 뿐. 하지만 당시엔 ‘블랙 진’은 신선했다.

그런데, 다시 교복을 입게 된 이 시기 10대들은 별로 입을 일이 없는 사복보다는 등교용 책가방, 신발 등에 집중하게 된다. 특히, 이 시기 ‘노페’ 로 볼 수 있는 것은 농구화. 농구선수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미국 프로농구(NBA)를 즐겨보는 학생들이 늘면서 농구화 시리즈 열풍이 분다.

대표적인 것이 나이키 ‘에어 조단’ 과 리복의 ‘샤크’. 미국 최고의 농구선수였던 마이클 조던과 샤킬 오닐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신발 뿐만 아니라 가방, 옷까지 출시되며 10대 소년들을 안달나게 했다.

한 패션업체 홍보팀 사원은 “90년대 중반에 ‘에어 조단’이 9만8000원 정도였는데, 진짜 나이키는 한 반에 3~5명 정도 신었던 것 같다” 면서 “남학생들은 누구나 신고 싶어했다. 없으면 비슷하게 그림을 그려넣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또, 교복을 벗게 되는 야외수업, 수학여행 등에서 남녀 관계없이 인기 있었던 브랜드는 닉스, 미치코런던, 보이런던, 스톰 등이 있었고, 투박한(당시로선 ‘시크’한) 검정 구두 브랜드 무크도 인기가 높았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ㆍ중반, ‘국민’ 가방ㆍ코트ㆍ신발=심플한 디자인에 솔리드 컬러. 거기에 ‘EASTPAK’ 로고가 박힌 큰 앞주머니. 중고생부터 대학생까지 심심한 모양새가 매력인 이 가방에 홀렸던 시절도 있다.

이스트팩과 쌍벽을 이룬 잔스포츠 백팩도 ‘국민 가방’ 대열에 합류했으며, 뒤를 이어 헤드, 휠라에서 출시한 백팩은 소위 ‘노는 학생’ 들의 필수품이였다.

패션홍보그룹 APR에이전시의 이재옥 주임은 “일명 ‘거북이 등딱지’로 불렸는데, 끈을 짧게 해 등에 딱 달라붙게 하고, 목 위로 조금 올라오게 멨다”며 “새 학기 첫날 교실에 가면 4~5명은 꼭 그렇게 메고 앉아서 폼을 잡았다”고 전한다.

교복 위엔 ‘국민 코트’였던 일명 ‘떡볶이 코트’ 라고도 불린 더플코트가 자리잡았다. 또, ‘패션의 완성은 신발’ 이라더니 학생 패션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민 신발’ 닥터마틴은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색 스티치와 에어 패팅이 들어간 무겁고 튼튼한 단화로, ‘학생 신발’ 로는 만만치 않은 가격인 10만원대 후반~20만원대였다. 여기에 폴로 양말을 신으면 종결.

스포츠 브랜드를 선호하는 남학생들은 여전히 나이키였다. ‘에어포스원’을 사기 위해 급식비를 모아서 운동화 계(?)까지 했다. 특히, 이 모델은 국내 출시가 되지 않아 압구정동 멀티숍 등에서 20~50만원을 주고 사야했던 귀한 아이템.

“비싸서 사달라고 못하고, 보충수업비를 받아 몰래 샀다.”(지○○, 남ㆍ31)

▶2000년대 후반~현재, 아이돌이 입는 아웃도어 브랜드=중ㆍ장년층의 고급 등산복에서 10대들의 ‘교복’ 으로 전락(?)한 ‘등골 브레이커’ 노스페이스가 최근 중고생들에겐 가장 ‘핫 브랜드’다. 여기에, ‘네파’ 등 몇몇 아웃도어 브랜드가 뒤따른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10년새 거의 6배 성장한 아웃도어 시장의 영향을 받아 학생 패션도 스포츠에서 아웃도어 브랜드로 이동한 것 같다” 고 설명했다.

2003년에 8000억 규모였던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올해 5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아이돌 스타들이 아웃도어 브랜드의 메인 모델로 발탁 되면서 스포츠 캐주얼이 핵심이던 ‘교복 패션’이 또 한 번 변화한 셈.

단순히 ‘유행’ 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노페 교복’ 열풍은 돌고 도는 ‘학생 패션’ 과 다를게 없다. 놀랍지도, 우려스러운 일도 아니다. 다만, 이것이 사회현상으로 번진 데는 한때 유행했던 다른 브랜드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대 때문이다. 10대들의 경제권을 쥐고 있는 부모들은 이 ‘등골 휘는’ 가격에 적잖은 절망과 위협을 느꼈을 터. 하지만 브랜드에 열광하는 10대들에 대한 질책보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가격 공정성에 물음에 던지는 게 현상의 본질에 더 빨리 다가서는 방법일지 모른다.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 여전히 백화점 노스페이스 매장엔 잔뜩 상기된 표정의 10대들이 바글거린다. 명품매장에 가보라. 내달 또다시 10%의 인상을 앞둔 샤넬 백을 ‘사재기’ 하기 위해 어른들도 긴 줄을 섰다.

<박동미 기자 @Michan0821>/pdm@heraldm.com

2012-01-31 11:10 |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