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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4> 베이징

[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4> 베이징-예술특구 다산츠798의 성공과 실패
150만명 찾는 예술의 해방구… 과도한 상업화 탓 작가들 떠나기도
60만㎡ 부지에 400여동 빼곡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창작촌… 신인 작가들 등용문 역할
정부, 관광지구 조성에만 힘쓰다 임대료 급등·콘텐츠 부실 초래

베이징=허정헌기자 xscope@hk.co.kr


[사진]옛 화약공장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다산츠 798예술구의 페이스갤러리. 늑대들과 싸우는 군인의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베이징=조영호기자 voldo@hk.co.kr 

쌍봉 낙타의 혹 모양으로 생긴 터널형 건물로 들어갔다. 비행기 격납고 같은 폭 30여m, 길이 50여m의 건물 안에는 중국 사진작가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일부러 초점을 맞추지 않은 사진들이 흰색 벽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위대한 우리의 마오쩌둥 주석 만세 만만세' '우리는 모든 일을 마오쩌둥의 지시 하에 처리한다' …. 건물 벽에 적힌 색 바랜 붉은 글씨와 바닥에 박혀 있는 드릴링 머신이 이곳의 과거를 말해주고 있었다.

[사진]낡은 공장 외벽에 '798 창의광장' 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중국 베이징 동북부의 차오양구(朝阳区) 다산츠(大山子) 지역에 있는 '798 예술구'의 한 전시장이다. 798예술구는 원래는 군수물자와 전자제품을 만들던 공장 지역으로, 1950년대 구 소련이 건설을 지원하고 구 동독이 설계한 공업 중심지였다.

중국 정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며 이 지역에 있던 공장들을 2000년대 초반 베이징 외곽으로 옮기면서 건물이 텅텅 비기 시작하자, 예술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창작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 798예술구의 시작이었다. 군수공장이었던 까닭에 건물은 명칭도 없이 그냥 번호로 불렸다. 예술가들이 처음 전시장을 차린 곳이 '798' 번호를 단 공장이었기 때문에 798예술구가 된 것이다.

중국 문화예술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


798예술구는 자생적인 공간이었다. 싼 임대료 덕분에 젊은 예술인들이 몰리면서 카페, 갤러리, 서점 등이 따라 들어왔고,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자 정부는 꽃 심기, 도로 정비 등으로 환경을 가꾸기 시작했다. 지금은 60만㎡의 드넓은 부지에 화랑, 작업실, 카페 등으로 개조한 건물 400여 동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처음에 소문을 듣고 하나둘 찾아오던 관광객들이 2009년에만 150만명을 돌파, 명실상부한 예술, 상업, 여행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사진]798예술구 거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정부 지원은 환경 정비 외에는 없었다. 화랑 주인 서너 명을 만나 "세금이나 임대료 지원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 "우리가 좋아서 모여들었고, 예술가들끼리 소통하는 장이 형성된 것이지 정부가 나서서 이런 곳을 조성했다면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798예술구는 단순한 미술작품의 전시장이나 판매장이 아니다. 새로운 작가들이 둥지를 틀고 그들의 등용문의 기능을 하는 장소이자, 베이징올림픽을 거치면서는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중국의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하나의 강력한 브랜드가 됐다.

일본 작가 준코 코시노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이곳 동경화랑에서 만난 중국인 여성 화가 한야준(韓娅娟ㆍ29)씨는 "외국인들이 많이 다녀가기 때문에 여기서 전시회를 열면 해외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이곳에서 전시했던 작품이 외국계 회사 직원의 눈에 띄어 디자인 계약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작가들의 생활, 문화, 전시공간으로서 798은 특별한 곳"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사진]공장 설비가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에서 열리는 사진전.

벨기에 컬렉터가 운영하고 있는 대형 갤러리 UCCA(Ullens Center for Contemporary Art)는 798예술구의 대표적인 화랑이다. 연간 이곳을 찾는 관람객 수만 15만명. 2007년 텅 비어있던 공장을 갤러리로 바꿔 일군 결과다. 4개의 전시공간도 그렇지만 입구에 있는 작품판매공간은 작가들에게 창작의 대가를 지불해주는 곳이다. 이 갤러리 직원들은 798예술구 일대를 돌아다니며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판매를 대행한다. 상품성 검증과 신진 작가 육성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기자가 취재를 하는 동안 종이를 우그러뜨린 모양의 축구공만한 흰 접시 하나가 17만원에 팔렸다.

과도한 상업화, 타산지석 삼아야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은 798예술구에도 여실히 적용됐다. 과도한 상업화에 대한 염증, 관광객 유입으로 인한 혼란스러움 등으로 작가들이 이곳을 등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798예술구 거리에 내걸린 그림을 감상하는 행인.

올해 초에만 30여 개 갤러리가 이곳을 떠났다. 임대료 인상도 작가들을 밀어낸 원인이었다. 한 화랑 주인은 "5~6년 전만 해도 1위안(약 170원) 하던 평당 임대료가 지금은 7~10위안으로 올랐다"며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우리도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가들이 떠난 자리에는 관광객을 겨냥한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들어섰다.

임대료가 20배 가까이 오르는 동안 정부는 인근의 관광상업지구 조성에만 열을 올렸을 뿐 798예술구의 안정을 위한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급속한 상업화로 인해 다산츠는 이미 이름뿐인 예술구로 변질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다산츠 등 산업유산을 통한 도시 재생 사례를 연구해온 오민근 문화체육관광부 컨설턴트는 "예술공간을 지역개발의 거점으로 삼을 때 예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관광의 소재로만 이용하면 콘텐츠 부실과 임대료 상승을 부추겨 결국 고급 주거단지로 전락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뉴욕의 소호가 대표적인 케이스라는 것. 오씨는 "예술공간을 관광자원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예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 주민들과 교감할 수 있는 곳으로 발전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김윤환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추진단장도 "베이징시 정부가 자생적 창작촌인 다산츠를 창작의 거점으로 이해하지 않고 문화산업지대로 인식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798예술구를 모델 삼아 속속 문을 열고 있는 국내의 예술공간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우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옛마을 '후통' … 지금도 베이징 곳곳서 현대 건물과 공존


[사진]관광객들이 운집하는 난뤄구샹 후통의 입구.

"베이징은 3,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다. 오래된 건물이 많아 중심부에는 절대 고층 건물을 짓지 않는 게 역사 보전의 시작이다." 베이징시 도시계획전시관 관계자의 말이다. 고층 건물을 지을 때 발생하는 진동으로 인한 문화재의 손상, 문화재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얘기다.

베이징 시내에서 그런 노력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후통(胡同)'이다. 1215년 칭기즈칸이 베이징을 정복한 뒤, 우물을 중심으로 도로를 내서 형성된 마을을 후통이라 불렀다. 원, 명, 청대를 거치면서 지역별로 후통이 발달해 "이름이 있는 후통이 3,600개요, 이름이 없는 것은 소 털보다 많다"는 베이징 속담이 있을 정도다.

2008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베이징시 중심부의 후통은 대부분 헐렸지만, 가치를 인정받은 스차하이(什刹海), 징산(景山), 용허궁(雍和宮), 궈주지엔(國子監) 등의 후통은 잘 보존되고 있다. 이곳이 여행지로 손꼽히는 이유는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처럼 덩그러니 문화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후통에는 주택들만 모여 있는 것이 아니다. 둥청구(东城區) 난뤄구샹(南锣鼓巷)의 경우는 대표적인 상업지구다. 이곳은 길이 786m, 폭 8m의 도로를 중심으로 16개의 다리가 양쪽으로 뻗어 있는 지네 형상이라고 해서 우궁제(蜈蚣街)로 불리기도 한다. 고풍스러운 가옥은 물론 공예품점, 레스토랑 등 수십 개의 상점이 성업 중이다. 한 상점 주인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싼리툰(三里屯)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주 고객"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유럽풍 바와 카페가 밀집한 싼리툰에서 이곳까지 오는 이유는 "어줍잖게 유럽을 흉내 낸 것보다 가장 중국다운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2004년 철거위기에 맞서… 정부 표현의 자유 보장해야"

인터뷰- 798예술구의 산증인 전시기획자 펑보이

[사진]펑보이

"중국 문화예술의 메카가 모조리 철거될 뻔했죠.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중국의 유명 미술평론가이자 전시기획자인 펑보이(馮博一ㆍ50)씨는 798예술구의 위기부터 회상했다. 그는 2002년 798예술구에서 열린 '중국당대미술전' 등 수십 건의 전시를 기획하며 이곳의 태동부터 현재까지를 지켜본 산증인의 한 사람이다.

2004년 베이징시 정부는 다산츠 지역에 쇼핑센터와 아파트 등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문화예술인들은 798을 더 번영시켜야 한다며 강하게 맞섰고, 대학 교수 등 관련 인사들의 성명 발표로 이어졌다. 이 사실을 독일, 영국 등의 해외 언론까지 보도하면서 베이징시는 이듬해 개발 의지를 꺾었다. "경제발전에 못지않은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중국 내에 알린 쾌거"라고 펑보이씨는 말했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그는 현재 798예술구의 모습에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미국의 소호 예술거리도 공장이 중심이 됐다고 들었지만 정부의 반대는 없었다"면서 그는 "798처럼 발전해온 외국의 사례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또 "사회주의 국가에서 예술구가 생겼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며 "798이 모티프가 돼 선전(深圳), 칭다오(靑島), 상하이(上海) 등 중국 주요 도시에 공장을 화랑으로 바꾼 곳이 늘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상업화로 798을 떠나는 작가들이 늘고 있는 데 대해 걱정도 했지만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 듯했다. "앞으로 문화예술을 책임질 젊은이들이 더 많이 이곳을 즐겨 찾길 바란다. 젊은 취향의 카페, 식당 등이 들어오는 걸 꺼리지 않는 이유다. 그것은 798을 중심으로 진행된 중국 예술문화의 대중화가 앞으로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지 않은가. 톈안먼, 만리장성에는 못 미치지만 젊은이들이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798을 꼽는다면 중국 미술의 앞날은 밝지 않을까."

그의 또 다른 걱정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억제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다. 그는지난해에는 798 중심부의 한 건물 외벽에 10여m 크기의 벌거벗은 여성 그림을 걸었다가 공안이 출동, 강제로 뜯어내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예술가들에게 창작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생명과도 같다. 다소 선정적이거나 정치성이 드러나는 발칙한 전시를 지금도 제한하고 있는데, 798만큼은 문화예술의 해방구로 만들어줬으면 한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0/06/16 21:34:15  수정시간 : 2010/06/18 11:02:32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6/h201006162134158633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