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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행사

워커 에번스 사진전

바로 이 순간, 다큐멘터리는 시작되었다
워커 에번스 사진전 

» 사진 1

미국 뉴욕 월가의 주식 폭락에서 비롯한 1930년대 대공황 시대를 많은 후대 사람들은 생활고에 찌들린 당시 미국 민중들의 지친 표정들로 기억한다. 남루한 삶터를 배경으로 카메라 앵글에 잡힌 농부, 서민 군상들의 고단한 몸짓은 경제 위기 때마다 잔상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떠오르곤 한다.

‘사진 거장’ 한국서 첫 회고전
1930년대 공황 민중 삶 대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생생한 삶을 찍은 이 다큐 사진들은 원래 관제 사진의 일종이었다. 당시 미 정부가 복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난과 기근에 신음하는 농민, 소작인들의 생활 실태를 사진으로 찍으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미국 사진가 워커 에번스(1903-1975)는 이런 ‘사진 정치’ 덕분에 사진사에 우뚝한 거장이 된다.(사진 3) 도러시아 랭, 벤 샨 등 동료 사진가들과 함께 1930년대 후반 미국 농촌과 산골 등을 돌며 27만장 넘게 사진을 찍은 이 정부 발주 프로젝트가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의 등장을 알리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 사진 2 
 
19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시작하는 워커 에반스 회고전(9월4일까지)은 다큐 사진 일가를 이룬 이 거장을 국내에서 처음 조명하는 자리다. ‘거대한 작전’으로 불렀던, 30년대 미국 농업안정국(FSA)의 공공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해 그가 찍은 농민 노동자들의 사진 140여장을 통해 에번스의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정부 의도적 기획 ‘걸작’ 낳아
형식적·공간적 ‘비극미’ 눈길

에번스의 사진은 본질상 기록적 다큐 사진이지만, 형식 구성을 중시한다. 메시지 전달에 치중하는 일반 다큐멘터리 사진과 달리 서민들의 생활 공간들을 건축적으로 부각시키는 시선이 특이하다.

» 사진 3

작품 속 중심은 사람의 삶이지만, 유심히 보면 그 풍경의 구도, 건물 내부 공간 집기 등이 별도의 화자로 말을 건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시시피 강 기슭에 사는 농부들 얼굴의 깊은 주름과 시름시름한 표정엔 어김없이 사는 농가의 바랜 판자벽이나 ‘누추한 질서’ 속에 구축된 가재도구, 집기들의 모습이 같이 드러난다. 앨라배마에서 한 빈민가족과 가장을 찍은 사진(1936)은 이런 에번스 다큐 사진의 진수를 보여준다.(사진 1) 흔한 가족사진 구도지만, 생계의 중압감에 짓눌린 그들의 내면은 뒤편의 누덕누덕 벗겨진 판잣집 벽과 단출한 기념사진들을 통해 증폭된다. 유명한 대표작 ‘면화 소작농의 아내’(1936)는 가난의 고통, 불안감을 애써 누른 채 입을 앙다물고 앵글을 주시하는 농가 여인의 얼굴을 담고 있다.(사진 2)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주름 가득한 미간과 슬픈 눈빛이 뒤편의 판자벽 조각들과 어울려 더욱 처연한 느낌을 주고 있다. 

» 사진 4 
 
앨라배마 팜스테드의 농가 부엌 풍경은 잘 구성한 반추상 풍경화를 보는 느낌이다. 나무 막대 조각으로 만든 선반으로 판잣집 벽체를 구획해 물통, 양념통 등을 놓고 사이사이 포크, 숟가락 등의 식기를 쑤셔박은 모습이 보는 맛을 자아내면서도 처절한 삶의 흔적들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아이 혼자 야릇한 눈길로 의자에 앉아 작가를 응시하는 웨스트 버지니아 광부 건물의 사진도 그런 건축 공간적 구성을 배경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사진 4) 

에번스의 예일대 교수 시절 동료였던 존 티 힐과 공동기획한 이 전시 출품작에는 에번스 작품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와 농업안정국 시절 작품, 쿠바·지하철 초상, 작가가 잡지 <포천>에 근무하던 당시 작품들이 망라되었다. 널리 알려진 대표작들과 함께 1930~40년 주요 작품들이 회고전 형식으로 나온다. 이미지 평론가 이영준 교수(계원디자인예술대)와 작가 강용석씨의 특별강연회가 26일이 열리며, 에번스의 사진 세계를 전문가들과 이야기하는 갤러리토크(7월10일, 8월14일)도 마련된다. (02)418-1315.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신문

Sharecropper’s Family(1936 ), Hale County, Alabama,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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