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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현대·기아차]‘디자인’이 최고의 의사결정 기준

디자인 경영, 5년 만에 극적인 발전 이룬 비결

2000년대 중반까지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성능은 비슷하지만 가격이 약간 저렴한 차로 인식됐다. 모든 차급이 겹치는 상황이었고 파워트레인도 동일했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현대차에는 살짝 못 미치는 메이커로 인식됐다.

파워트레인이 동일하다면 차별화는 디자인에서 승부를 봐야 했다. 2006년 기아자동차는 디자인 경영을 선포하고 모든 역량을 디자인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송세영 기아자동차 스타일링실장(이사)은 “디자인 경영은 차량 개발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때 디자인에 오리엔티드(orient-ed)된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를테면 개발 과정의 이슈가 있을 때, 원가·재료비가 걸렸을 때 판단 기준을 디자인으로 하고 디자인이 더 좋다고 하면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다.

둘째로 개발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조립하는 기술자가 더러운 손으로 문짝이나 내·외장재를 만지면 안 되는 것처럼 전 직원의 의식 수준이 함께 올라야 한다. 송 이사는 “종업원들의 마인드를 디자인적으로 끌고 나가야 했다”고 표현했다.

K5는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경영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3월 국내 자동차 업계 최초로 세계 3대 디자인상에 꼽히는 레드닷 어워드에서 수송 디자인 부문 최우수작(Best of the best)에 꼽혔다.
 
종업원의 디자인 이해도 높여야만 가능

기아차의 디자인 경영이 존재할 수 있었던 데는 현대차그룹 차원의 품질 경영이 바탕이 됐다. 송세영 이사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의 발전 단계로 볼 때 1단계는 ‘생산’이다. ‘10만 대냐, 20만 대냐’처럼 규모의 경쟁이다. 2단계는 ‘품질’이다. 아무리 디자인이 좋더라도 품질이 떨어지는 차는 시장에서 외면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3단계는 ‘디자인’이다. 자동차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물리적 만족도 외에 감성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차원의 품질 경영을 통해 기아차 또한 자동차로서의 품질이 크게 향상됐고, 이를 통해 글로벌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디자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직관적이 디자인 감각에 의지하는 것을 넘어 해외에서의 현지 리서치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기아차는 해외 진출과 함께 2000년대 초반 11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유럽과 미국의 디자인센터를 한국과 동시에 운영해 왔다. 현지에서의 리서치 능력이 발전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주력했고, 또 디자이너들의 교류를 통해 공통적인 디자인 감각을 찾을 수 있었다.

유럽과 미국의 판매량이 늘면서 현지 전략형 모델을 내놓은 것이 주효했다. 유럽에서는 시드·뱅가를, 미국에는 쏘울이 크게 성공했다. 쏘울은 지난 7월 1만131대를 판매해 박스카 시장의 경쟁 차종인 도요타 싸이언(1194대), 닛산 큐브(1122대)를 크게 앞질렀다. 쏘울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을 만들어낸 ‘트렌드 세터’로서 기아차 브랜드를 각인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쏘울, 디자인 경영으로 만든 ‘대박’

기아차의 디자인이 짧은 시간에 크게 발전한 비결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동안 기아차만의 디자인이 없었다는 점도 꼽힌다. 송 이사는 “오래된 메이커는 그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기아차는 오히려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었다.

고정된 것이 없다는 것이 기아차의 강점이다. 앞으로 나올 차도 새로운 것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벤츠· BMW·아우디를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대형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에 원 안의 삼각별(벤츠), 키드니 그릴(BMW), 싱글 프레임 그릴(아우디)은 그 메이커를 상징하는 존재다.

송 이사의 말에서 향후 기아차 디자인의 전개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전통이 오래된 메이커는 여러 실험을 통해 그 메이커 고유의 룩(look)을 찾아낸 반면 기아차는 앞으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고유의 룩을 찾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기아자동차는 디자인 경영을 선언한 후 쏘울을 통해 기존에 없었던 시장을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쏘울은 미국에서 월 1만 대 이상 팔리며 1000대 안팎의 경쟁차 싸이언(도요타)·큐브(닛산)를 크게 앞서고 있다.
 
그리고 현재보다 더 뛰어난 디자인이 나올 것이라는 점도 예상할 수 있다. 송 이사는 “빌 게이츠가 상승의 나선 곡선이라고 했듯이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을 가진 디자이너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발전 속도라 빨라질 것이다. 앞으로 기아차에서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입력일시 : 2011-10-20 14:59 |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