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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디자인은 제품의 영혼… 파산 기업도 살린다

회사 존폐위기 맞았던 P&G - 과자에 캐릭터 새기자 매출 폭등
아우디 일류 디자이너 영입 기아車 - 적자서 연매출 23조2600억원
美의 삼성전자 연구소 - 디자이너 1人위해 회사이전까지


지금은 애플 하면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사고파는 '앱스토어'를 먼저 떠올리지만 망해가던 애플의 부활을 이끈 것은 디자인이었다. 애플이 2001년 출시한 아이팟은 심플한 디자인으로 단번에 세계시장을 장악했다. 애플의 디자인이 제품의 기능과 품질을 앞세우던 기존 MP3플레이어 업체들을 압도했다. 애플 직원들은 "디자인은 인간이 창조해 낸 상품의 영혼"이라고 말한다. 디자인은 제품을 둘러싼 껍질이 아니라 제품을 감싸는 영혼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디자인을 위해 다양한 파격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1년 당시 미국 디자인 전진 기지인 샌프란시스코 북미디자인연구소의 휴대전화 디자인 조직을 분리해 LA에 휴대전화 디자인 전담팀을 만들었다. 공들여 스카우트한 경쟁업체 출신 초일류 휴대전화 디자이너가 "LA가 아니면 출근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이후 확 달라진 삼성전자 휴대전화는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끌어당기는 견인차 구실을 했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 7월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크리스 뱅글과 협업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뱅글은 지난 20년간 BMW 디자인 총책임자로 일한 인물. 디자인 혁신을 통해 세계 일류 기업의 위치에 오른 회사가 디자인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180년 전통의 P&G(프록터앤갬블)는 1990년대 후반 큰 위기를 맞았다. P&G는 디자인에서 활로를 찾았다. 2000년대 초 대대적 구조조정을 했지만 디자인 인력은 4배로 늘렸다. 변화가 나타났다. P&G의 과자 브랜드 프링글스가 대표적인 예. 과자 표면에 디자인을 입히면서 매출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과자 표면에 캐릭터를 입히고 퀴즈나 유머도 적어 넣었다. 이른바 프링글스 프린트다.

1986년부터 적자에 허덕이던 푸마는 1993년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 푸마가 선택한 부활의 카드도 디자인. 푸마는 독일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와 손잡고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또 프랑스·일본의 디자이너들과도 잇따라 협업을 하는 등 회사를 '오픈소스 디자인 기업'으로 전환했다. 쉽게 말해 사내 인력뿐 아니라 실력이 있다면 세계 어느 곳의 디자이너와도 손잡고 디자인을 하겠다는 것. 이후 푸마는 패션에 민감한 젊은 층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로 등극했고, 매출도 해마다 급증했다.

덴마크의 세계적인 오디오 회사 뱅앤올룹슨은 신제품을 만들 때 디자인을 먼저 정하고, 그 후 제품을 만든다. 디자인 아이디어를 먼저 고르고 그 디자인을 제안한 디자이너가 제품 개발을 책임진다.

국내에서도 이런 디자인 제일주의가 이미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국내 최초(1983년)로 디자인 종합연구소를 만든 LG전자는 2006년 6월 이른바 '디자인 경영'을 선포했다. 제품 개발의 주축은 디자인팀이고, 상품기획·설계·마케팅 등 관련 부서가 협업팀(Cross Functional Team)을 만들어 상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디자인 영역은 후발 기업들엔 시장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기아차가 디자인으로 변방의 후발 업체 가운데 하나에서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로 발돋움한 사례. 기아차는 2006년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였던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후 회사는 '직선의 단순화'란 기치를 내걸고 국내 자동차 업계 최초로 패밀리룩(디자인 통일)을 시도했다.

로체 이노베이션을 시작으로 포르테·쏘울·쏘렌토R·스포티지R·K5·K7으로 이어지는 히트작들은 직선의 단순함을 극대화한 디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덕분에 디자인 혁신 초기 적자(2007년 영업적자 554억원)에 허덕이던 회사가 작년 사상 최대 실적(매출 23조2600억원, 영업이익 1조6800억원)을 냈다.

백강녕 기자 young100@chosun.com
신은진 기자 momof@chosun.com

기사입력 : 2011.08.2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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