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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노후에 살 주택도 `유니버설 디자인` 필요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얼마전 미국에 사는 한국인 교포 부부로부터 '특별한 집'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원래 미국인 노부부가 살던 곳으로 매우 싸게 급매물로 나와 집을 사게 됐단다.

그런데 처음 집을 둘러봤을 때 집안 여기 저기에서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거실에 있는 등을 켜는 스위치가 세 군데나 있어서 이곳 저곳에서 켜거나 끌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또 부엌에서 뒷문으로 나가는 통로가 계단이 아닌 경사로로 돼 있고 욕실과 거실 등 출입구마다 문턱이 없었다.

처음에는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속내를 알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단다. 전에 살던 미국인 노부부가 노후생활을 하면서 고령자에게 맞도록 집을 오랫동안 고쳐왔던 것이다.

미국 은퇴자들 중 상당수는 자기 집에서 거주한다. 실버타운은 고령자를 위한 시설들을 잘 갖춰 놓긴 했지만 노인들만 모여 살기 때문에 자칫 생활이 지루해지기 쉬운 문제가 있다. 게다가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 때문에 결국 자기 집에서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집에서 거주하더라도 나이가 많아지거나 각종 질환 등으로 거동이 어려운 경우,특히 휠체어를 타야 한다면 생활하기에 불편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고령자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집을 고쳐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것이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다른 말로 '보편적 디자인'이라고도 한다. 본래 장애의 유무나 연령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제품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고령자가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생활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65세 이상 노인 중 약 30%가 넘어지면서 부상을 입는 사고를 경험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해 문턱을 없애고 안전 손잡이나 미끄럼 방지 제품 등을 설치하면 이런 낙상 사고의 상당부분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이런 추세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은퇴 이후 주거계획에 대해 깊은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커녕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도 고민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미 유럽 등에서는 자기 집에서 노후를 보내는 것이 만족도가 가장 높은 노후 주거 방법이라는 것을 지난 수십년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스웨덴의 경우 노인 중 93%가 자기 집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정부가 노인 주택으로 리모델링하는 비용을 지원한다. 한국도 이제부터 구체적인 은퇴 이후 주거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자기 집에서 살 계획이라면 고령생활에 맞도록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리모델링하는 게 필요하다.

[우재룡의 준비된 은퇴] 노후에 살 주택도 `유니버설 디자인` 필요
입력: 2011-06-26 13:38 / 수정: 2011-06-26 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