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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요트디자인,"안되면 되게하라"

요트디자이너 성지원의 꿈과 열정 ②

요트 디자인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뜻밖의 제안으로, 그러나 운명과도 같은 이끌림으로.

하지만 나는 모든 걸 처음부터 새로 배우는 대학생 초년이나 다름없었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Auto CAD 정도만 다뤄왔던 나에게 3D 프로그램은 너무나도 힘든 숙제였다. 더구나 당시 우리나라에는 유저들이 많지 않아 책조차 구하기 어려웠던지라, 영문 매뉴얼을 구해서 혼자 독학을 하며 습득해야 했던 초년생 요트 디자이너 시절, 정말이지 지금도 그 때를 되돌아보면서 입가에 쓰디쓴 웃음을 짓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첫 경험과도 같은 요트디자인의 벽은 3D 프로그램을 잘 다루느냐 못 다루느냐의 차원이 아니었다. 미적 감각의 디자인 문제로만 접근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요트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먼저 요트의 특성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먼저 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선박 일반에 대한 기술적 이해를 마친 다음, 마치 신체를 해부하듯 요트의 선형 특성과 재질, 그 쓰임새를 하나하나 익혀나가야 했고, 나아가 해상 구조물까지 그 영역을 넓혀 나가야만 했다. 조선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던 나로선 남들보다 두 세배 더 한 노력이 필요했고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선형을 만들기에 제일 먼저 필요한 라인스, 구조도, 단면도와 일반 배치도, 기본설계부터 구조계산까지 요트 디자인은 내게 어려우면서도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이었다. 힘들고 벅찬 시간이었지만, 정확하고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그렇게 하나씩 채워가며 다듬어 가면서 나는 오히려 행복감을 느꼈다. 마치 운명의 연인을 만난 것처럼.

작은 모터보트부터 대형 해상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숙박 시설인 해상 펜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템들을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일은 나 자신을 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식사 시간을 거르는 일 정도는 다반사였고, 자정이 훌쩍 넘도록 사무실을 뜨지 못할 때도 부지기수였다.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각종 기술 자료와 디자인 데이터를 한 보따리 싸 들고서 밤 새 씨름해야 했다.

유럽과 미국, 호주에는 쉽사리 볼 수 있는 보트와 요트, 해상 가옥 등이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어느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 하나 없었다. 국내에서 요트 디자인은 광활한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아 나선 캐러밴의 여정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나는 무한대로 큰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나가는 느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요트에 오롯이 담아갔다. 푸른 바다, 맑은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나의 꿈을 그려 나가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게 달콤한 초콜릿만을 쥐어주진 않았다. 국내의 요트 산업은 기대와 달리 기지개를 활짝 펴지 못했고, 요트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요트 디자인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초창기, 첫 시작은 내 자신과의 싸움이자, 높고도 차가운 세상의 벽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요트 디자인 작업이 진척되면서 세상은 우리에게 따가운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 투자 마케팅을 위해 접촉한 사람들은 백에 아흔아홉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국내에서 이런 걸 어떻게 만드느냐?’에서부터, ‘중고로 수입하면 더 싼데, 누가 국산을 사겠느냐?’, ‘당신네 기술력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까지.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심지어는 ‘사기꾼 아니냐’ 하는 눈길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정부 차원의 개발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 만났던 담당 공무원들조차도 반신반의 하는 눈초리가 역력했다. 이런 가운데 투자자는 하나 둘 등을 돌렸고, 지원한 프로젝트마다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고난의 시절이었다. 솔직히 직원들 급여를 맞추기조차 버거웠다. 세상의 높은 벽에 맞선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포기하거나 좌절하기에는 열정과 패기가 더 컸다.

그때마다 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을 되뇌며 다시금 자신을 격려하고 다독거리며 버텨 나갔다. 힘든 와중에서 나와 함께 요트에 모든 것을 건 회사 사장님과 몇 안 되는 직원 동료들의 지치지 않는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그만 포기하고 좌절했을 지도 모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버텨온 5년, 마침내 2008년도 산업자원부의 모터보트 육성산업개발 프로젝트에 우리 회사의 사업이 선정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 왔던 나의 디자인을 드디어 세상에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 희소식을 듣는 순간, 온 몸의 피가 솟구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그래, 지원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입술을 깨물며 나는 다시금 전의를 불살랐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나의 꿈, 나의 열정……

요트피아 성지원 칼럼위원 yachtpia@yachtpia.com
2011.04.21 00:00 입력 | 2011.06.21 09:41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