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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구상 교수의 車 디자인] 모났지만 괜찮아 `박스카`

모났지만 주행성능 효율 低 괜찮아 공간활용 능력 高 박스카
상자형 차의 뿌리는 日 주거문화와 지형조건
좁은 공간 활용하던 것 디자인에도 영향 미쳐
  

요즘 국내 도로에서 상자형 자동차(박스카)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들 차는 주로 일본 메이커가 만들었다.

지난 2009년 뉴욕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던 도요타 사이언의 컨셉트카 `하코(Hako)`는 상자형 승용차의 디자인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 하코는 `상자(箱子)`를 의미하는 일본말 단어 `はこ`를 영어로 표기한 것이다. 하코는 거의 직각에 가까운 필러(pillar)와 상자형 차체 형태로 상당히 낯선 이미지를 줬다.

오는 8월 국내 출시될 닛산 큐브(Cube)도 이름 그대로 상자형 디자인의 차체를 가지고 있다. B필러와 C필러의 디자인도 좌우가 다르게 돼 있는데, 이것은 운전석에서 볼 때 뒤쪽 시야 확보에 유리하다.

젊은 소비자들을 위한 도요타의 별도 브랜드 `사이언(Scion)` 역시 상자형 승용차를 미국에서 출시해 인기를 얻고 있다. 사이언xB는 차체 폭으로는 국산 준중형급 승용차와 거의 같다. 그러나 높이는 1600㎜에 이르러 마치 소형 밴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산 메이커가 만든 차 중에도 상자형 차인 쏘울이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또 다른 상자형 차도 국내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자형 차의 주류는 일본 차들이다. 그 이유는 일본의 주거문화와 지형조건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전통 주택을 들여다보면 다다미(tatami)라고 불리는 일본식 돗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본래는 나무로 된 방바닥에 접을 수 있는 깔개를 깔았기 때문에 `접는다`는 뜻의 `다타무`에서 온 말이다. 덥고 습한 일본의 기후를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돗자리다. 다다미 한 개의 크기는 대체로 너비 90㎝, 길이 180㎝, 두께 5㎝가량이며 바닥 전체를 다다미로 덮는다고 한다.

일본 전통 주택은 또 지진을 견디기 위해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을 좁히면서 나무로 지어진 구조를 가졌다. 일본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의식은 이러한 일본 특유의 주택구조와 다다미에 영향을 받았다.

기본적인 공간 단위가 작아지게 되고,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조건에 맞춰 일본의 의식주 문화가 이루어지다 보니, 사실상 모든 사물들의 형태가 좁은 공간에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일본 주택에는 물건을 넣어 두는 붙박이 벽장도 많은데,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다. 상자형 차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자동차의 주행성능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더 날렵한 유선형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실내공간의 거주성을 높이기 위해서 공간은 가능한 한 상자형에 가까워야 한다.

공간 활용에 대한 인식은 자동차와 관련된 일본의 법규에도 나타난다. 차체의 폭을 기준으로 세금을 달리 매기는 방법이다. 일본의 경승용차들은 차체 폭이 1600㎜ 이하로 규정돼 있고, 실제 경승용차 차량들 차체 폭은 1595㎜ 수준이다.

소형에서 준중형 승용차들은 차폭이 1700㎜ 이하로 정해져 있고, 실제 차량들은 1695㎜ 수준이며, 차폭이 1700㎜ 이상이면 대형 승용차로 분류된다. 일본 주택가를 지나가다가 넓지 않은 골목길에서 차들이 서로 비켜 지나가는 것을 보면 이러한 차체 폭 규제가 이해된다. 상자형의 형태가 가지는 추상적 메시지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자동차가 단지 장소의 이동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또 다른 생활 공간으로 변함에 따라 보다 쾌적한 거주성을 위해 주택과 같은 개념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유선형을 가진 대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오늘날의 도시에서 자동차는 교통체증으로 더 이상 빨리 달릴 수 없다. 그럼에도 유선형 디자인의 차체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미 굳어져버린 편견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기존의 자동차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들에 대해 반대의 입장에 서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어쩌면 사이언(Scion) 같은 브랜드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을 얻는 측면일지도 모른다. 상자형 디자인은 기존의 자동차 형태가 가진 유선형을 부정하는 모습이며, 오늘날의 자동차가 지닌 `다양한 가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스타일이냐 공간 확보냐 문제는 선택!

= 현대인은 상자 형태의 사물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거의 날마다 들여다보는 TV, 컴퓨터,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가 그렇다.

장롱, 책꽂이, 책상 등의 물건들도 복잡한 형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상자 모양에 이것저것 붙여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집과 아파트 역시 상자 모양이다.

이처럼 우리는 상자 형태 속에서 상자 형태의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다만 우리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상자 형태의 물건들이 왜 이리 많은 걸까?

상자 형태는 다른 형태의 구조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고 튼튼하며, 같은 치수 조건이라면 공간 확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로와 세로의 높이를 같은 크기로 했을 때, 어떤 형태의 도형보다도 사각형이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

상자형은 공간의 효율, 즉 공간 확보에서는 가장 유리한 형태인 것이다.

초기 자동차들도 상자에 가까운 모습들이었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만들기 쉽다는 점 때문이었겠지만, 보다 넓은 실내공간을 위해서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후로 자동차 속도가 빨라지고, 1930년대를 전후로 속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스타일 좋은 유선형`이 등장하면서 자동차 차체는 `상자 형태`에서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유선형으로 발전하는 동시에 자동차의 실내공간은 점점 좁아진 것이다.

이것은 자동차의 형태가 가지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의 모순(矛盾)이자 딜레마(dilemma)다.

자동차의 주행성능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더 날렵한 유선형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한편으로 실내공간의 거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간은 가능한 한 상자형에 가까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공간과 유선형 두 개의 상반된 가치를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면 그들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상 한밭대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기사입력 2011.05.23 15: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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