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sign Trend/패션

구두는 알고 있다, 지나온 내 인생을

구두와 명사
구두로 개성을 신었고 구두로 신념을 신었다, 구두로 나를 보여줬고 구두로 다른 사람을 읽었다… 구두는 곧 나, 구두는 소통이다

남자는 때론 '발끝'으로 말을 건다. 미국의 명(名)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Bernstein·1918~1990). 그는 남들에게 강인하고 단단한 인상을 주기 위해 늘 신발을 고심해서 골랐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가 택한 것은 발끝을 뾰족한 U자 모양으로 감싸는 신사화. 오케스트라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끌기 위해 그는 무대에서 늘 같은 모양의 신발을 신었다.

이탈리아 출신 구두 디자이너 살바토레 페라가모(Ferragamo·1898~1960)는 "구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많은 명사(名士)들은 구두 한 켤레를 고를 때도 그렇게 자신의 개성과 신념을 담는다.

◆오바마·베컴…"난 진중한 남자"

당신이 오늘 정장 구두를 신고 왔다면 잠시 그 끝을 살펴보자. 신발 위로 단호한 직선이 한 줄 가로지른다면 '스트레이트 팁(straight tip)'이다. 구두 절개선이 일자인 구두로, 발가락 부분에 뚜껑을 씌운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캡 토(cap toe)'라고도 불린다. 이 군더더기 없고 분명한 모양은 격식과 진중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국 출신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Beckham)은 이 스트레이트 팁 구두 애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평상시에도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신사 정장을 즐겨 입는 그답게, 스트레이트 팁 구두로 자신의 명석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마무리 짓는 것이다.

반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플레인 토(plain-toe)'를 자주 신는다. 발등 부분에 절개 장식이 없는 매끈한 구두로 부드러운 품위를 자랑한다. 발등에 장식이 없어 무난하지만 그만큼 구두 코 모양에 따라 분위기를 달리하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등도 '플레인 토'를 신고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퍼거슨·처칠…"난 활동적인 남자"

끈을 묶는 부분의 아래쪽이 터져 있는 구두를 '더비(derby)'라고 한다. 끈 묶는 구두의 격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발등에 여유가 있어 활동적인 신발이다. 수입화 전문 편집숍 '짐머만 앤 킴'의 김지윤 이사는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알렉스 퍼거슨(Ferguson) 감독이 늘 더비 스타일의 구두를 주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Churchill·1874~1965)도 신발을 고를 때 격식과 편안함을 동시에 추구했다. '조지 클레버리'란 맞춤 구두 가게에서 주로 신발을 주문했던 그는 정통 신사화를 맞출 때도 꼭 신고 벗기 편하도록 신발 입구에 '사이드 거셋(side elastic gusset)'이라 불리는 고무밴드를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 촬영협조=알덴·스테파노 베메르·잘란 스리위자야·에드워드 그린 by 유니페어, 조지 클레버리 by 헤리티지, 벨루티, 테스토니 그래픽=김현지 기자 gee@chosun.com◆이건희·앤디워홀…"난 유연한 남자"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공항 패션'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밝은 파스텔톤 재킷에 크림색 바지. 딱딱한 정장을 벗어나 한결 편안하고 여유로운 옷차림이었다. 그가 옷에 맞춰 택한 구두는 밝은 갈색의 '로퍼(loafer)'. '게으름뱅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발등에 끈이 없어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낮은 가죽신이다. 갈색 구두 중에서도 가장 밝은 축에 속하는 황갈색 구두로 젊은 면모도 강조했다. '유연하다'는 인상을 주기 좋은 차림이다.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미국 예술가 앤디 워홀(Warhol·1928~1987)도 유명한 로퍼 애호가였다. 구두를 워낙 좋아해 구두 그림만 수십 점을 남겼던 워홀은 자신의 날씬한 발을 강조하는 가늘고 매끈한 구두에 돈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정재…"멋을 안다면"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던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Brosnan)은 구두 앞부분 절개선이 새의 날개 모양을 한 '윙팁(wing tip)' 신발을 자주 신는다. 유려하고 화려한 이 구두는 캐주얼한 옷을 즐겨 입으면서도 멋스러움은 놓치지 않으려는 남자들에게 적합하다.

좀 더 과감한 멋을 즐기는 남자는 '보트 슈즈(boat shoes)'를 신기도 한다. 말 그대로 보트를 탈 때 신을 수 있도록 고안된 이 신발은 물에 젖은 갑판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에 천연고무를 사용한 것이 특징. 한여름에 맨발에 신어야 어울린다. 배우 이정재가 보트 슈즈 마니아로 유명하다. 명사 덕에 더욱 유명해진 신발도 있다. 영화배우 해리슨 포드(Ford)가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신고 나온 부츠는 영화의 제목을 따 '인디 부츠'란 별명을 얻었다.

글=채민기 기자 chaepline@chosun.com
사진=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canyou@chosun.com

기사입력 : 2011.05.18 02:59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