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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항공사들 인테리어 '공중전'하늘

더블침대,샤워실,회의실...항공사들 인테리어 '공중전'
하늘의 특급호텔 A380

강갑생<kkskk@joongang.co.kr> | 제212호 | 20110403 입력 

1 싱가포르항공 스위트 클래스 

2007년 9월 6일 오전, A380이 인천공항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대한항공이 마련한 A380 시승행사로 독도를 한 바퀴 돌아 오는 경로였다. 기내에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을 비롯, 200여 명이 탑승했다.당시 비행기 내부는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이코노미석의 3등급으로 기본적인 좌석만 배치돼 있었다. 실내 중간에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스탠딩바가 설치돼 있을 뿐 별다른 시설은 없었다. 2층 구조의 기내는 그야말로 광활했다. 종전 어떤 여객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넓이였다.

에어버스 관계자는 “기내를 탁구공으로 가득 채우면 3500만 개가 들어간다”며 “기존 비행기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시설을 항공사가 원하는 대로 갖출 수 있다”고 자랑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조 회장도 “A380이 들어오면 대한항공도 명품 항공사로 도약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0월, 싱가포르항공이 세계 최초로 A380에 손님을 태우기 시작했다. 항공계는 경악했다. A380의 내부 인테리어 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비행기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비행기 내부는 싱가포르~호주 시드니 노선에 투입되기 전 공개됐는데 특히 12개밖에 안 되는 일등석은 호텔룸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화려했다. 특히 가운데 두 좌석을 연결하면 최고급 호텔의 더블침대나 다름없었다. 운항 초기 승무원들은 만약의 불상사에 대비해 남녀 동반 승객들에게 “성 행위는 삼가 달라”고 공지를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2 콴타스항공 일등석 3 에어프랑스 회의공간 4 EK 일등석 샤워룸1 5 A380, 기내 면세점 조감도  
 
싱가포르항공의 A380 인테리어에 충격을 받은 항공사들은 그때부터 기내에 보다 화려하고, 보다 차별화된 인테리어를 도입하는 경쟁을 시작했다. 싱가포르항공 이후 A380을 도입해 운영 중인 항공사는 현재 에어프랑스, 에미레이트항공, 독일의 루프트한자항공, 호주의 콴타스항공 등 5곳뿐이다. 대한항공이 6월 초 운항을 시작하면 세계 여섯 번째가 되는 것이다.A380의 기내 인테리어는 가히 혁명적이다. 에미레이트항공(EK)은 2009년 인천공항~두바이공항을 운항하는 A380을 취항했다. 이 비행기의 일등석에는 ‘샤워스파’가 있다. 한마디로 비행기 안에서 샤워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에미레이트항공은 “VIP인 우리 고객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미팅이나 세미나 등에 참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스파시설은 아주 유용하다”고 말했다. 현재 에미레이트항공은 A380을 15대 운항 중이다.

화장실로 승부를 본 경우도 있다. 독일 루프트한자항공의 A380 일등석(8석) 화장실에 가면 탈의실이 따로 있다. 비행기 안에서 편안한 잠을 자려면 잠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탈의 장소가 마땅치 않으니 화장실에 탈의실을 만든 것이다. 또 화장실 안에는 가죽소파도 만들어 놓아 마치 방 안의 거실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에어프랑스도 일등석 승객을 위한 별도의 탈의실이 있고, 비즈니스석 승객을 위해서는 2층에 가죽소파를 갖춘 회의 겸 휴식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함께 출장을 가는 회사 동료들끼리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간단한 즉석 기내 미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호주 콴타스항공의 A380 일등석은 개인룸처럼 독립돼 있다. 필요에 따라 좌석 방향을 정면과 측면으로 바꿀 수 있다. TV 모니터를 볼 때, 독서 또는 취침할 때 좌석 방향을 원하는 대로 변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여섯 번째 항공사인 대한항공도 극비리에 인테리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대한항공에 인도될 예정인 A380 한 대가 독일 함부르크의 에어버스 공장에서 외부 도색을 끝낸 모습을 선보였다. 대한항공 고유의 파란색 바탕에다 꼬리날개에 태극무늬를 그려 넣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A380 인테리어 정보에 대해 철저히 보안을 지키고 있다. 일종의 충격요법을 노리는 듯하다. 승객들로부터 “와” 하는 찬사를 얻어 내려는 전략이다.

사실 대한항공은 2004년 일찌감치 A380을 주문해 놓은 뒤 2006년부터 마케팅·운영·디자인 부문 등 전사적으로 A380을 맞아들일 준비에 착수했다. 특히 A380의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승객을 위한 편의시설 설계에 신경을 집중했다. 비즈니스석 승객 한 명을 유치하면 이코노미석 승객 4~5명을 유치하는 효과와 맞먹어 항공사로서는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4월 초 기준으로 인천공항~뉴욕 노선의 대한항공 이코노미석은 왕복 기준으로 200만원가량이다. 반면 비즈니스석은 약 700만원이고 일등석은 1300만원에 달한다. A380은 이보다 가격을 높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는 지난해 말 대한항공이 발표한 내용이 전부로 전체 좌석을 경쟁 항공사보다 훨씬 적은 407석으로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A380을 운영하는 항공사들 중에서 콴타스항공의 좌석 개수가 450석으로 가장 적었다. 대한항공은 그보다 43석이나 적다. 또 2층 전체를 비즈니스석으로 꾸며 94석을 확보하고 일등석에는 ‘코스모 스위트’라는 첨단 좌석을 놓는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코스모 스위트’는 대당 2억5000만원짜리로 영국의 항공 관련 디자인업체인 아큐맨이 디자인했다. 2009년 6월 대한항공의 B777-300 기종에서 첫선을 보인 바 있다. 이 좌석의 주문형오디오비디오 화면은 크기가 23인치나 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A380 인테리어에 대한 정보는 사내에서 하도 극비라고 해서 서로 물어보기도 꺼릴 정도”라며 “지난해 말 좌석 수 등을 공개했을 때도 내부에서는 ‘기밀이 샐 수 있다’며 반대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작 다른 항공사를 놀라게 하고 고급 승객들을 유혹할 ‘비장의 무기’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회사 최고위층 등 극소수만 알고 있다고 한다. 대한항공 이종욱 홍보차장은 “6월 초 운항 직전에 내부를 공개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은 2014년께 A380을 들여올 예정이다. 심상규 홍보부장은 “항공사들 간에 인테리어 경쟁이 워낙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도 이미 해당 부서들에서 다른 항공사들의 사례를 연구하면서 A380에 어떤 특색 있는 내용들을 도입할지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거대한 여객기를 항공사가 아닌 개인이 자가용 비행기로 구입한 경우도 있다. 200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인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A380을 자가용 비행기로 쓸 목적으로 첫 구매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당시 구매가격은 약 3억 달러(약 3300억원)로 알려졌다. 형식상 주문자 명의는 탈랄 왕자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킹덤홀딩컴퍼니라는 사우디 기업으로 돼 있다. 탈랄 왕자는 2005년 사망한 파드 전 사우디 국왕의 조카로 아랍권 최고 부자로 꼽힌다. 그는 기내에 와인바와 킹사이즈의 침대, 안락소파에다 화려한 욕실까지 특별 주문했다고 한다. 또 만찬과 회의를 겸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 비행기는 아직 인도되지 않았다. 에어버스 측은 인도 일정 자체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 하지만 중동 지역을 민주화 열풍이 휩쓸고 있고, 사우디 왕가에 대한 비판론도 적지 않아 아무리 왕자라도 이처럼 초호화판인 비행기를 쉽게 가져갈 수는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