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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공공디자인, 채움의 지혜와 비움의 용기로

▲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Las Ramas) 거리. 거리의 중앙부분을 보행공간으로 넓게 확보하고 좌우로 차량공간을 조성한 보행자 중심의 매혹적인 람블라스 거리. 도로 양옆으로 가로수를 심어 쾌적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하고 꼭 필요한 가로시설물만을 설치하여 각 종 이벤트와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나는 거리가 되었다.

현대 도시들은 인구의 팽창과 더불어 나날이 늘어나는 온갖 물건들로 빼곡히 들어차 한가로이 앉아 쉴 공간 하나 없이 되어가고 있다. 도시경쟁력 차원에서 불어 닥친 도시의 공공디자인 열풍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기존 공간이나 시설물을 무분별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현대 도시공공디자인은 그 변화의 중심에 있어 채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그 속에 무엇을 채울까, 무엇을 더 넣어 다른 곳과 차별화를 추구할까 고민한다. 비어있는 모습을 참지 못하고 무엇인가 채워 가득하게만 하려 한다.

그래서 가득채워짐으로 인해 정작 사람들이 사용할 공간은 부족하게 되고 말았다. 게다가 주변 환경과의 맥락적인 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자기 과신적인 모습으로 지나치게 장식화 되어가고 있는 가로시설물들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 바퀴통에 꽂혀있으나 그 바퀴통의 빈 것 때문에 수레바퀴로서의 쓰임이 있고, 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드나 그 가운데를 비게 해야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있게 된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들어도 빈 곳이 있어야 방으로서의 쓰임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유(有)로써 이롭게 하는 것은, 무(無)로써 그 쓰임을 다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여, 채움에 대한 비움의 공간사상을 일깨워주었다.

건축가 승효상도 ‘빈자의 미학’에서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시경쟁력의 척도는 실제 사람이 생활하고 있는 도시가 얼마만큼 살기 편안한 요소를 잘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공공디자인은 도시계획, 건축, 실내건축, 조경, 디자인, 미술 등의 다양한 영역과 조화를 이루고 통합과 소통을 해야하는 분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민의 일상의 삶의 모습을 담아내야 하는 그릇이다. 꼭 물리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 공공디자인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일 것이다.

도시디자인이 단순히 도시환경을 꾸미는 유미주의적인 행위만이 아닌 이상 도시를 살기 좋고 쾌적하게 하고자 하는 공공디자인을 수행해나감에 있어 더 이상 비움의 공간을 훼손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그 채움을 덜어내고 비움으로 돌아갈 그 공간만은 남겨놓아야 할 것이다.

그림(figure)과 배경(ground), 즉 채움과 비움이 서로 조화로운 관계를 가질 때 비로소 그 도시는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인호 제주산업정보대학 인테리어디자인과 교수> 
  
김현종 | tazan@jejunews.com    
ⓒ 제주일보(http://www.jejunews.com)  2010.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