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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보르도 TV, 휴대전화…세계인 감성 잡은 ‘4대 디자인 전략’

[디자인 경영] 삼성전자

◀삼성디자인학교(SADI)의 토론식 수업 모습.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SADI는 독일 iF가 선정하는 세계 디자인학교 순위에서 2009년과 2010년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005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의 한 호텔에 당시 삼성그룹 수뇌부들이 모였다. 이건희 삼성 회장(현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현 삼성물산 고문)과 삼성전자 사장단,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현 상담역) 등이 모습을 보였다.

모임의 이름은 ‘디자인 전략 회의’. 이건희 회장이 말했다. “삼성의 제품은 세계적 프리미엄급이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디자인 같은 소프트 경쟁력을 높여 기능과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넘어야 합니다.” 세계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에 삼성전자를 위시한 그룹 수뇌부를 모아 놓고 디자인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었다.

밀라노 회의에서 삼성은 ‘4대 디자인 전략’을 만들었다. 독창적 디자인의 정체성(아이덴티티)을 구축하고, 우수 인력을 확보하며,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고, 금형기술 인프라를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략이 적중해서일까. 이듬해부터 삼성 전자는 보르도 LCD TV(2006년), 크리스털 로즈 LED TV(2008년) 등 디자인으로 세계인의 감성을 사로잡은 히트작들을 줄줄이 쏟아냈다.

◀2005년 ‘밀라노 디자인 전략 회의’ 이듬해 나온 보르도 TV. 와인잔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출시 8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200만 대가 팔렸다.

사실 삼성전자의 디자인 경영은 밀라노 회의 9년 전인 1996년에 시동을 걸었다. 그해 1월 3일 이건희 회장이 신년사에서 “올해를 ‘디자인 혁명의 해’로 정하고 삼성 고유의 디자인 개발에 그룹 역량을 총 집결해 나가자”고 한 때부터였다. 서두르지는 않았다. 우선 인재 양성부터 시작했다. ‘삼성 디자인멤버십 프로그램’을 만들어 디자인 전공 대학생들에게 기업 실무와 관련된 교육을 시켰다. 2001년에는 최고경영자(CEO) 직속 디자인경영센터를 만들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선(先) 디자인, 후(後) 개발’이다. ‘이런 제품을 개발해야겠으니 모양을 디자인해 달라’는 식으로 진행되던 종전의 절차를 완전히 뒤바꾼 것이었다. 미국 LA, 영국 런던,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 이탈리아 밀라노, 인도 델리 등 6개 지역을 글로벌 디자인 거점으로 삼아 현지 디자인연구소를 세웠다.

이런 노력은 2000년대 초반부터 결실을 거뒀다. 2002년 출시된 폴더형 휴대전화 ‘SGH-T100’은 독일 레드닷어워드와 홍콩 디자인아시아어워드를 석권하더니, 출시 1년6개월 만에 삼성전자 휴대전화 사상 최초로 1000만대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후 삼성전자는 매년 1000만 대 이상 팔린, ‘텐 밀리언 셀러’ 휴대전화를 내놨다. 이건희 회장은 2004년 홍콩 디자인센터와 홍콩 산업기술통상부가 주는 ‘디자인 경영자상’ 초대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2005년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지 ‘와이어드’는 이 회장에 대한 특집 기사에서 “10년 전만 해도 값싼 에어컨과 질 낮은 TV를 생산하던 삼성을 멋진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고 했다. 또 “삼성 제품에 한국적 정체성을 접목한 이 회장의 디자인 철학이 주효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럴 즈음에 밀라노 디자인 전략 회의가 열렸다. 삼성전자는 이를 ‘제2의 디자인 혁명’ 원년으로 받아들였다. 1996년 디자인 혁명 선언을 통해 삼성 제품이 일류 제품 반열에 올랐다면, 앞으로는 디자인 역량을 한층 강화해 초일류 제품으로 나아간다는 목표였다. 브랜드컨설팅 전문 업체 인터브랜드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가 급상승한 이유를 ‘획기적인 디자인’에서 찾았다. 삼성전자는 디자인 혁명 원년인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세계 유수의 디자인 상 550여 개를 휩쓸었다.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삼성디자인학교(SADI)는 지난해 세계 3대 디자인상이라는 독일 iF와 레드닷디자인어워드, 그리고 미국 IDEA에서 모두 19개 상을 받았다. SADI는 또 iF가 선정하는 세계 디자인 학교 순위에서 지난해 2009년에 이어 2년 연속 1위를 지키기도 했다.

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1.02.25 03:26 / 수정 2011.02.25 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