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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공공디자인 클리닉 <2>

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클리닉 <2> 캐노피 없애니 거리가 보인다

우리나라 도시의 보도는 선진도시들에 비해 좁은 편입니다. 게다가 보도를 잠식한 수많은 시설물로 인해 시민들은 편히 걸을 수 없습니다. 지하철 입구나 지하상가 입구에는 으레 캐노피(덮개지붕)가 있어 보도 상에 건축물이 들어선 모습입니다.

보도 폭이 급격하게 좁아지면서 보행 병목현상이 일어나 시민들은 서로 몸을 부딪치며 빠져나갑니다. 과잉 디자인의 이 춤추는 캐노피는 보행자 시선을 차단해 비좁은 도시 공간을 더욱 갑갑하게 만듭니다. 주변의 크고 자극적인 간판과 각종의 상업정보가 가세해 시민들의 눈은 더욱 어지럽습니다. <사진 A>

과밀의 도시, 이제 비우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하철 및 지하보도 출입구 캐노피는 설치하지 않아야 할 시설물입니다. 캐노피를 없애니 경관이 시원하게 드러나고 비로소 거리와 건물이 보이게 됩니다. 건물 입면을 가득 채운 간판을 없애고 글자를 입체형으로 작게 줄입니다. 전화번호와 창문광고 등 부가정보를 제거하니 간판이 더욱 잘 읽힙니다. <그림 B>

서울 중구 명동 입구의 현재 모습 [사진 A](上)와 대안 [그림 B]. 

캐노피를 없애기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지상으로부터 빗물 등이 내부로 유입되지 않도록 수방 및 배수시설을 철저히 하고, 계단 표면은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된 마감재를 적용해야 합니다. 만약 여건상 캐노피가 불가피하다면, 유리 등으로 시설물의 투명성을 높여 시각적인 부피감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지하출입구는 주변 건축물에 통합하거나 공지 내에 설치하도록 유도해 보도를 점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기부채납 등의 방식으로 건물 혹은 토지의 일부분을 지하상가 및 지하철 출입구와 연결하면 지하공간과 건물의 저층부가 활성화됩니다.

도시의 비워진 공간은 기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활동으로 채워집니다. 시민들은 비워진 공간을 통해 비로소 풍경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권영걸 서울대 교수·(사)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중앙일보] 2009.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