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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소비자 마음 사로잡는 건 결국 하드웨어다

[Weekly BIZ] [테크 칼럼] 소비자 마음 사로잡는 건 결국 하드웨어다
손민선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애플 노트북PC… '맥북 에어' 이음새 없는 매끈한 몸체에 탄복
네슬레의 커피 머신… 편리성·디자인으로 고객사랑 받아
뛰어난 하드웨어에 접목시킬 신기술 만들어 도입하는 게 거대 기업들의 '진짜 경쟁력'

갓 추출한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잠을 깬다. 커피 향이 집안에 퍼지면 잠에 취한 눈이 그제야 떠진다. 출근하기에도 정신없는 아침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새로 장만한 네슬레의 커피머신 덕분이다.

인스턴트 커피로 유명하던 다국적기업 네슬레가 요즘 '커피 좀 한다'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2000년 2억스위스프랑(약 2400억원)에 그쳤던 네슬레의 원두커피 관련 매출이 2009년에는 27.7억스위스프랑(약 3조2800억원)으로 10배 이상 폭증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30%를 넘는다.

일반적으로 가루 상태의 원두에서 진한 커피를 추출하여 즐기는 에스프레소는 적정한 온도와 압력에서 최상의 맛이 나온다. 바리스타의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알아서 온도와 압력을 맞춰주는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도 있지만, 원두를 갈고 평평하게 담아서 잘 눌러주는 작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필터에 남은 원두 찌꺼기를 씻는 것도 번거롭다. 그런데 네슬레의 커피머신에서는 1)원두가 담긴 조그만 캡슐을 기계에 집어넣고, 2)'추출' 단추를 누르는, 단 두 단계면 끝이다. 다 쓴 캡슐을 꺼내서 버리면 청소도 끝이다.

다른 에스프레소 머신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크기에서 제대로 커피가 나올까 했지만, 풍성한 크레마(크림색의 거품)를 보니 감탄까지 나온다. 크레마는 물이 높은 기압으로 원두 사이를 통과할 때 생기는 미세한 거품인데, 여기에 네슬레의 노력이 숨어 있다. 통상의 에스프레소 머신의 추출 압력은 14bar(1bar는 1㎠의 공간을 1kg의 무게로 누르는 힘)인데 비해, 네슬레의 기기는 19bar의 압력으로 물을 뿜어내도록 만들었다. 5g이 조금 넘는 소량의 원두에서 풍부한 맛과 크레마를 뽑아내기 위한 신기술이다.
 

▲ 이용의 편리함 덕에 원두커피 머신 시장에서 급성장한 네슬레 커피머신(왼쪽), 매끈하고 날렵한 외관으로 인기를 모은 애플 맥북 에어(오른쪽).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요즘 IT 업계의 관심은 온통 콘텐츠나 서비스 같은 소프트웨어에 쏠려 있다. 애플의 아이폰에 국내 업체들이 일격을 당한 것이 소프트웨어 역량의 차이 때문인 것으로만 비치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소프트웨어의 차이에 그치는 것일까?

애플의 노트북PC '맥북 에어'에 소비자들이 가장 감탄하는 점은 이음새 하나 없는 은빛의 매끄러운 몸체다. 새로운 맥 운영체제나 앱스토어에 대한 관심은 그다음 문제다.

보통 노트북PC를 만들 때 각각의 부품을 조립해 완제품을 만들다 보면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기기는 두꺼워지고, 원하는 디자인을 내기 어렵게 된다. 반면'유니바디(Unibody)'라고 하는 애플 특유의 공정은 말 그대로 하나의 알루미늄 통판을 깎아서 그 안에 부품을 집어넣는 구조로 돼 있다. 이는 엄청난 수고를 요하면서, 대단한 모험이기도 하다. 공정에 조금의 오차만 있어도 값비싼 외장 틀 전체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최고의 공정과 품질을 요구한다. 그래서 애플은 우주선용 부품 제작에 쓰이는 컴퓨터 계측 장비를 동원한다. 상태 표시등이나 충전 케이블과 같은 외부 단자가 자리 잡는 자리까지도 이 장비를 통해 1마이크론(1000분의 1밀리미터) 단위까지 정밀하게 깎아낸다.

아이폰(iPhone) 역시 기존 휴대폰에선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조작 방식(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이용자들을 사로잡았다. 애플의 상징처럼 돼 있는 터치 방식의 인터페이스는 애플이 2005년부터 아이팟(iPod)을 만들면서 공들인 결과물이다. 애플은 원 모양의 조그만 바퀴(휠)를 손가락으로 돌리는 구조로 돼 있던 초기 아이팟 조작 방식을, 터치 방식의 전자 휠로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정전식 터치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화제를 일으켰던 애플 아이팟.

사람의 촉각 인지 방식 연구에 매달린 끝에 다수의 이용자들이 '기계가 내 지시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네'라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사람 몸 안에 흐르고 있는 미세한 전류의 변화를 감지하는 방식이었다. 애플은 이를 위해 사람의 손가락이 닿는 아이팟 전자 휠 안쪽에 주변의 전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는 전기 컨트롤러를 설치하는 등 정밀하게 제품을 설계했다. 사람이 손가락을 조작 휠 위에서 움직이는 속도나 방향에 따라 손가락과 조작 휠 안쪽에 있는 전기 컨트롤러 간에 보이지 않는 전자의 이동(전기적 흐름)이 발생하게 되는데 착안한 것이다. 지금은 다른 IT업체들도 이런 정전(靜電)식 터치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당시로선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소프트웨어 역량을 따라잡는 것은 시급한 과제지만, 하드웨어 없이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결국 추상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시장의 판을 뒤흔드는 거대 기업의 진짜 경쟁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입력 : 2011.01.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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