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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김미리 기자의 디자인 왈가왈부] 카드도 '성형 시대'… 예쁘면 그만인가요

"저, 이거 저희 카드 아닌데요. 다른 거 주신 것 같아요." "잠깐만요. 어, 이거 맞는데…."

최근 백화점 카드를 바꾼 친구가 선물을 산 뒤 결제를 하려고 매장 직원에게 카드를 건넸답니다. 그런데 직원이 카드를 보자마자 자기 백화점 카드가 아니라고 하더라네요. 혹시 실수했나 싶어 다시 살펴봤는데 분명히 그 백화점 카드가 맞더랍니다. 이전과는 딴판으로 '디자인 성형'을 심하게 한 카드를 그 백화점 직원도 몰라본 거죠. 이 백화점 카드, 알렉산드로 멘디니라는 이탈리아 유명 디자이너가 만들었다고 열심히 광고한 카드랍니다.

얼마 전 통합카드를 만든 한 기업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에 갔더니 카드 신청을 권하더군요. 직원이 대뜸 하는 말. "무슨 색 하실래요? 여자분이니까 핑크색 괜찮겠네요." "혜택은요?"하고 묻자, 직원은 신규 가입 쿠폰북으로 설명을 대신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디자인이 카드의 중요한 경쟁력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4~5년 전 현대카드가 디자인으로 이미지 변신에 쏠쏠한 재미를 얻자 다른 금융업체들이 우르르 미투(me-too·다른 사람이 성공한 것을 너도나도 따라 하는) 전략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동안 카림 라시드, 토털 디자인, 앙드레 김, 김영세 등 많은 국내외 디자이너들이 카드 디자인에 뛰어들었습니다.

딱딱한 금융 이미지를 부드럽게 바꾸기 위한 시도. 처음엔 신선했지만 이젠 과하다 싶습니다. 그 회사의 아이덴티티(정체성)와는 무관하게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취향의 그래픽을 채택하거나, 유명 디자이너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패턴을 씌우다 보니 모든 카드가 비슷해져 버렸습니다. 카드회사 이름을 가리고 보면 지갑 속에 꽂힌 카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러니 백화점 직원이 자기 회사 카드를 몰라보는 촌극이 벌어지는 거죠.

'예쁜 카드'에 안달이 나서 정작 '실속 있는 카드'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도 문제입니다. 신용카드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단가는 800원 정도랍니다. 디자인 비용까지 넣으면 더 비싸지겠지요. 본말전도(本末顚倒)된 디자인은 결국 소비자를 우롱하는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금융 회사들이 디자인 거품을 걷어내고 민낯으로 돌아와 내실있는 서비스에 더 투자하길 기대해 봅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입력 : 2010.12.2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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