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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지구를 생각하는 디자인 - 에코디자인

전 세계적으로 먹을거리와 산업에 친환경 열풍이 거센 가운데, 디자인에서도 친환경이 이슈로 등장했다. 오래 쓰고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에서부터 생산 공정을 줄이고 에너지가 덜 들게 하는 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디자인계 최고의 화두는 ‘친환경’이다. 전 사회적인 친환경 붐을 타고 ‘에코 디자인’, ‘그린 디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 ‘재활용 디자인’, ‘세이빙 디자인’ 등 친환경을 내세운 디자인이 넘쳐흐르고, 디자인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파리 메종 앤 오브제, 런던 디자인페스티벌, 밀라노 가구박람회 등 세계 주요 전시에서도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친환경 테마가 주를 이루고 있다. 친환경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종교처럼 인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택이 아닌 필수 덕목으로 디자인에 환경을 담는 시대가 왔다. 이러한 친환경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오래 쓰고Long, 다시 쓸 수 있게Last 만드는 일에서부터 생산공정을 줄이고Less, 에너지가 덜 들게 하는Low 일까지 다양한 친환경이 존재한다. 그래서 위 개념들의 머리글자를 따 친환경을 ‘4L’로 정의하는 전문가도 있다.

친환경 디자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분야는 재활용 디자인이다. 스위스의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은 이 재활용을 콘셉트로 한 친환경 디자인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보통 트럭 덮개는 강한 비바람으로부터 적재물을 보호하기 위해 튼튼한 방수천으로 만들어진다. 방수천을 주로 이용하는 포장마차 덮개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그 투박함 때문에 상식적으로 디자인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위스 디자이너가 만든 가방 프라이탁은 이 투박한 트럭 덮개를 훌륭한 디자인 상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예전 같으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 법한 낡고 해진 트럭 덮개로 가방 몸통을 만들고, 버려진 안전벨트를 활용해 어깨끈을 만들었다. 매끈한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튼튼하며 어느 하나도 같은 디자인이 없다는 점이, 똑같은 사이즈와 컬러의 규격화된 기성품에서 벗어나 개성을 찾는 트렌드 리더들의 수요와 맞아 떨어져 큰 히트를 쳤다. 심지어 이스트팩 같은 가방 브랜드에서 유사 상품이 나올 정도로 젊은 층에서 프라이탁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버려지는 트럭 덮개를 재활용해서 만든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의 제조 공정.
프라이탁은 재활용 친환경 디자인의 신기원을 연 브랜드이다. 

체조기구인 안마에 쓰이는 가죽을 재활용해서 만든 치르켈트라이닝의 고급 핸드백.
빛 바랜 가죽이 그 어느 제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손맛’을 느끼게 한다.

프라이탁을 필두로 독일 가방 브랜드 치르켈트라이닝은 체조 기구인 안마에 쓰인 가죽을 재활용해 고급 핸드백을 만들었고, 프랑스 가방 브랜드 빌름은 현수막을 재활용했다. 폐타이어로 만든 핸드백, 자전거 타이어 고무로 만든 덧신도 나왔다. 재활용품을 사용했다고 해서 싸구려 제품은 아니다. 희귀성 때문에 오히려 고가로 팔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예술적 재활용’은 이미 트렌드가 됐다. 국내 디자인 그룹 오프닝스튜디오는 섬유 공장에서 폐기 처분되는 자투리 실을 연결해 양말 작품을 만들었고, 디자이너 조은환·신태호 씨의 ‘라이트 체어’는 호스를 이어 붙여 만든 조명기구이다. 

버려지는 소재들을 이용해 만든 한국의 디자인 액세서리 상품들.

친환경을 퍼포먼스화 하는 프로젝트도 많은 디자이너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젊은 영국 디자이너 올리버 비숍 영Oliver Bishop-Young은 ‘스킵 컨버전스’라는 친환경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스킵Skip’이란 유럽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철제 쓰레기 수거함, 즉 한마디로 쓸모없는 물건의 집합소인 셈이다. 이 스킵이 그의 손을 거쳐 새로운 ‘디자인 저장소’로 탈바꿈했다. 스킵에 버려진 탁구대를 끼워 지나가는 행인이 자유롭게 탁구를 치도록 했고, 물을 채워 수영장으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잔디를 심고 꽃을 심어 ‘제3의 화단’으로 변신시키기도 하고, 가로수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 행인들이 쉴 곳을 제공하면서 친환경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버려진 재료들로 만든 재활용 조명기구.

최근에는 재활용 디자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정을 줄이거나 수명을 길게 해 폐기물의 양을 적게 하는 방법도 친환경 디자인에서 각광받는 이슈이다. 플라스틱 가구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가구 브랜드 카르텔은 플라스틱이라는 지극히 인공적인 소재가 친환경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그들만의 친환경을 내세우고 있다. 플라스틱이 자연 소재는 아니지만, 원목 가구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벨 때보다 오히려 환경 파괴가 적고 반영구적이어서 폐기물도 적다고 이 회사는 주장한다.


친환경 디자인은 분명 전 지구적 관점에서 지향해야 할 가치이지만 한편에서는 맹목적인 친환경 유행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재활용 소재를 사용한 제품 생산에 더 큰 비용이 들어 비현실적이라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자연히 생산과정에서 드는 비용 부담은 소비자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이로 인해 결국 디자인의 고비용 구조를 낳게 되기에 더 큰 문제이다. 에코 시크Eco Chic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친환경 디자인 제품을 소비하는 일이 ‘멋지다’, ‘윤리적이다’라고 인식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겨냥해 친환경을 상업적인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기업의 상술도 커가고만 있다. ‘무늬만 그린’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누릴 수 있는 친환경 디자인에 대한 자성이 수반될 때 진정한 친환경은 실현될 것이다.

섬유공장에서 폐기 처분되는 자투리 실을 연결해 만든 디자인 그룹 오프닝스튜디오의 양말 작품.

KEY WORDS

프라이탁Freitag
프라이탁Freitag은 스위스의 재활용 가방 브랜드이다. 1993년 마르커스Markus와 다니엘 프라이탁Daniel Freitag 형제가 ‘트럭 덮개’를 재활용하여 가방을 만들면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 500여 개의 매장을 갖추고, 80여 명이 일하는 회사로 성장하였다. 트럭 덮개만이 아니라 자전거 튜브, 자동차 안전벨트 등 폐기물을 재활용하여 만들어지는 프라이탁 가방은 20~40만 원 정도 하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좋다.

치르켈트라이닝
치르켈트라이닝Zirkeltraining은 독일의 전직 체육교사에 의해 고안된 재활용 가방의 브랜드이다. 낡은 운동기구를 활용하여 만든 수작업 가방을 판매하는데 ‘a little bit of sweat’라는 테마를 내걸어 본래 제품의 재질이 가진 특성을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에코 시크
에코 시크Eco Chic는 친환경 상품의 소비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말하며, 이러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인 ‘친환경 소비과시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어스Prius의 경우 에코 시크가 되고자 하는 할리우드 스타와 정치인, 상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참조 사이트
메종 앤 오브제 웹사이트 www.maison-objet.com
런던 디자인페스티벌 웹사이트 www.londondesignfestival.com
밀라노 가구박람회 웹사이트 www.cosmit.it
프라이탁 웹사이트 www.freitag.ch

출처 : 디자인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