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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구상 교수의 자동차 디자인] SUV의 진화, 끝나지 않았다

원조는 2차대전때 개발된 美지프
AMC, 왜건 내놓으며 `SUV` 시작
지금은 크로스오버 차량이 대세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SUV를 만날 수 있다. SUV는 문자 그대로 주행성능(sports)과 공간 활용성(utility)이 있는 차량(vehicle)이라는 의미다. 1980년대 전후 시기부터 미국에서 쓰이기 시작한 차량 구분 명칭이다.

원조는 2차 세계대전 때 개발된 미국 지프(Jeep)다. 지프라는 이름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1930년대에 미국에서 인기 있던 뽀빠이 만화 속에서 나오던 귀여운 강아지 이름이 이 차의 애칭으로 불리다 굳어진 것이라는 설이다. 이 차를 포드에서 개발할 때 다목적(general purpose)으로 개발된 차라고 붙인 이름 GP를 그대로 부르다가 그것이 변해서 지프가 됐다고도 한다. 
 

지프 루미콘

미군은 1930년대부터 새로운 군용 차량을 계획했다. 2차 대전에서는 독일군의 쉬빔바겐과 큐벨바겐으로 대표되는 기동차량에 대한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자동차 메이커들에 차량 개발을 의뢰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1940년 차량의 규격을 확정해서 메이커들에 발주를 했는데 그것에 맞춰 차를 만들 수 있다는 의향서를 낸 곳은 아메리칸 밴텀과 윌리스-오버랜드뿐이었다. 이후 실제의 차량은 밴텀이 만든 BRC(Bantam Reconnaissance Car)를 바탕으로 1941년부터 윌리스-오버랜드와 포드자동차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윌리스는 밴텀의 설계를 바탕으로 한 첫 모델을 MA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이후 차체 무게를 300파운드(136kg) 줄여 2100파운드(950㎏)로 가볍게 만든 개량형 MB를 개발한다. 포드는 밴텀의 모델을 기초로 해서 개발한 차량을 윌리스와 같은 이름의 MB라고는 하지 않고, 다목적이라는 의미에서 GP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미군에 납품하기 위해 윌리스 모델과 공통의 설계로 만든 모델을 다시 GPW라고 구분했다.

폭스바겐 티구안

이렇게 해서 기본형이 만들어지고 1941년부터 1945년까지 64만대의 MB와 GPW가 윌리스와 포드 두 회사에 의해 만들어진다. 2차 대전이 끝나자 포드는 GPW의 생산을 중단하고 곧바로 민간용 승용차의 생산에 들어갔지만 윌리스는 군납용 MB 지프의 생산을 계속하는 것은 물론, 일찍부터 민간용 지프의 개발계획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실행에 옮기게 됐다. 윌리스는 이때부터 지프를 상표로 등록했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CJ(Civilian Jeep) 시리즈다.

미국 승용차 메이커였던 카이저(Kaiser)는 1953년에 윌리스-오버랜드를 6000만달러에 인수한다. 1960년대에 와서 카이저는 회사 이름도 윌리스 모터즈(Willys Motors Inc.)로 바꾸고 다른 승용차 모델을 모두 없애고 지프만 생산한다. 1970년대에는 아메리칸 모터즈가 윌리스를 10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 윌리스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아메리칸 모터즈는 민간용 차량을 만드는 AMC와 군용 차량을 만드는 AM제너럴이라는 회사로 나뉘어져서 민간용 CJ 시리즈는 `Jeep`이라는 이름으로 AMC에서, 군용은 AM제너럴에서 생산했다. 이후 1980년대에 AM제너럴은 걸프전에서 활약했던 허머를 개발하는데 이러한 흐름을 보면 허머는 지프 혈통 속에서 개발된 것이고, 이것은 거의 50년 만에 이뤄진 지프의 풀모델 체인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43년형 미군 지프, 78년형 지프 웨거니어, 기아 스포티지, 코란도 (시계 방향으로)

AMC는 지프의 차체 크기를 늘려서 왜건 형태의 차체를 가진 차량을 내놓으면서 공간의 활용성을 더하기 시작한다. 이때를 전후로 하는 시기부터 Sports Utility Vehicle, 즉 SUV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다. AMC는 한 때 프랑스 르노(Renault)와 제휴도 했었지만 1986년에 지금의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와 합병되면서 `Jeep`라는 브랜드로 바뀌게 된다.

국내에서 지프와 직접적으로 `핏줄`이 닿는 차는 1990년대 초반까지 생산됐던 구형 코란도라고 할 수 있다. 코란도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 신진자동차와 동아자동차에서 생산되었던 국산 지프는 그 권리를 가지고 있던 미국 AMC의 CJ-6모델을 로열티를 주고 생산한 모델이었다. 그래서 초기의 국산 지프는 앞 펜더 옆면에 `Jeep`이라고 쓰여 있었다.

현재 국내에도 오리지널 `Jeep`이 수입되고 있지만 보다 더 도시적인 디자인으로 다듬어진 다양한 종류의 SUV를 볼 수 있게 됐다.

초기의 `Jeep`는 프레임 구조에 차체를 얹은 트럭의 구조였고 이것은 험로 주행성능을 높이려는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지금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SUV는 대부분이 승용차와 동일한 일체구조식 차체(monocoque)를 가진 크로스오버 비클인데 지프의 구조가 진화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출현했던 지프는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진화를 한 것이고, 이러한 SUV의 진화는 오늘날의 크로스오버 차량을 거쳐 앞으로 또다시 새로운 형태의 차량을 향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구상 한밭대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기사입력 2010.08.30 15:03:32 | 최종수정 2010.08.30 16: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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