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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타이틀의 비밀] 캘리그라피

[방송 타이틀의 비밀(종합)] "저 특이한 글꼴, 누가 만들었을까?"

드라마 타이틀의 비밀…"니들이 캘리그라피를 알아?"


[스포츠서울닷컴 | 김지혜·나지연기자] 첫 인상이 중요하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교감하는 시청자와 방송 사이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시청자는 무엇을 통해 프로그램에 대한 첫 인상을 얻을까.

정답은 '메인 타이틀'(Main Title)에 있다. 사전적 의미를 따지자면 프로그램 제목을 표기한 방송 로고. 시청자는 프로그램 시작 전 화면에 등장하는 제목의 글꼴을 보며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첫 인상을 감지한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MBC-TV '에덴의 동쪽' 타이틀을 살펴보자. 오래된 책의 표지처럼 낡고 빛바랜 느낌이다. 이는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의 정서를 담은 것이다.

이처럼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방송 타이틀에도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낯선 사람을 기억하는데 이름 석자가 절대적인 역할을 하듯 방송 타이틀 역시 수많은 글꼴을 통해 프로그램에 대한 무의식의 정보를 전달한다.

프로그램의 얼굴인 메인 타이틀, 그 속에 담긴 글꼴의 비밀을 파헤쳤다.
 

◆ 캘리그라피, 손으로 만든 타이틀

MBC-TV '종합병원'의 타이틀을 보고 있으며 '괴발개발'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린 아이가 쓴 것 마냥 어설프고 투박하기 때문이다. SBS-TV '아내의 유혹' 역시 마찬가지다. 비뚤비뚤 성의없이 휘갈겨 쓴 것처럼 보인다.

두 드라마의 타이틀은 모두 '캘리그라피'(CALLIGRAPHY)로 만들어졌다. 외국 배우의 이름 같기도 하고 외화 제목 같기도 한 이 생소한 단어는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손글씨'라는 뜻을 담고 있다.

드라마 '종합병원'과 '내 인생의 황금기'의 타이틀을 만든 MBC 타이틀실의 박명호 부장은 "캘리그라피라는 단어를 한국화 시키면 붓글씨라는 개념이다. 디자이너가 직접 손으로 작성한 글씨를 스캔을 떠서 작업하는 총과정을 통칭하는 말이다"고 정의했다.

공중파 3사 프로그램 타이틀의 50% 이상은 캘리그라피를 이용해 제작된다. 제작 과정은 그야말로 '신통방통'하다. 우선, 건네받은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시안을 짠다. 그 시안을 바탕으로 디자이너가 직접 글씨를 쓴다. 보통 시안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2~3일 가량 걸린다.

손글씨의 매력은 컴퓨터 폰트가 만들어낼 수 없는 독특한 멋이다. 프로그램의 개성을 표현하는데 있어 손글씨를 따라갈 게 없다. 쓰는 사람의 필체에 따라 또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천차만별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타이틀을 만든 KBS CG실 김성태 디자이너는 "하나의 타이틀이 완성되기 위해 평균 50가지 이상의 필체로 타이틀을 쓰게 된다"며 "재료와 도구의 자유가 폭넓은 기법인 만큼 크레파스, 나무뿌리, 숟가락 등을 이용해 다양한 필선으로 프로그램의 개성과 색깔을 살린다"고 설명했다.

◆ 폰트 디자인, 컴퓨터로 쓰는 타이틀

모든 방송 타이틀이 손글씨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타이틀 제작 기법이 바로 폰트 디자인이다. 캘리그라피가 수작업이라면 폰트 디자인의 경우 테크놀로지의 힘을 최대한 활용한다. 컴퓨터 안에 있는 수백가지 글씨체(폰트)를 이용해 제목을 디자인하는 것.

폰트 디자인은 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용된다. 폰트 위에 그림이나 문자, 기호 등을 첨가해 오락 프로그램의 특징인 밝고 명랑함을 살리기 위해서다. SBS-TV '일요일이 좋다'나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이 폰트 디자인을 이용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컴퓨터를 활용해 작업한다고 해서 폰트 디자인이 캘리그라피에 비해 손이 덜가는 것은 아니다. 생동감 넘치는 타이틀 제작을 위해 기본 폰트를 응용해 새롭게 글꼴을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MBC 타이틀실의 예능 담당 박영균 씨는 "예능의 경우 폰트를 선택하는 것 만큼 디자인도 중요하다"면서 "'개그야'와 '일밤'에 별 모양의 그래픽을 삽입하거나 '우결'에 하트 모양의 그래픽을 넣는 등 캘리그라피 이상으로 정교한 손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에는 만화적 요소가 가득한 일부 드라마도 폰트 디자인을 이용해 타이틀을 만들기도 한다. KBS-TV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대표적인 경우. 폰트 디자인을 통해 기본 글자체를 설정한 다음 그래픽을 이용해 드라마의 느낌을 글 위에 덧살렸다.

◆ 타이틀에 담긴 의미 "척 보면 압니다"

시청자는 무심코 타이틀을 본다. 하지만 그 무심코 속에는 많은 정보가 새겨져 있다. 손으로 그린 캘리그라피에는 드라마의 성격이 숨어있고, 마우스로 만드는 폰트 디자인에는 버라이어티의 개성이 담겨있다.

우선 캘리그라피에는 창작자의 감성이 숨쉰다. 손으로 직접 제목을 쓰는 만큼 드라마의 내용이나 주제를 집약해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내의 유혹'의 경우 불륜극이라는 소재에 맞춰 유혹의 느낌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타이틀을 작업한 SBS아트텍의 나병심 차장은 "유혹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립스틱으로 쓴다는 느낌으로 흘려 썼다"면서 "글 컬러 역시 유혹을 상징하는 레드를 썼고 번짐 효과를 통해 복수의 처절함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폰트 디자인의 경우 그래픽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수작업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글꼴의 분위기를 다양한 그래픽을 통해 살려낸다. 일례로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경우 럭셔리한 주인공을 표현하기 위해 후광효과를 줬다.

타이틀을 만든 '꽃피는 봄이 오면'의 정유섭 씨는 "꽃미남 주인공들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꽃을 포인트로 사용했다"면서 "또한 타이틀 로고에 보석이 반짝이는 후광효과를 줘 부잣집 도련님들의 이미지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프로그램에 대한 바람을 암호처럼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SBS-TV '패떴'이 대표적인 경우. 나병심 차장은 "'떴다'라는 부분에 날개 그림을 단 것은 떳다는 사전적 의미 뿐 아니라 시청률이 올라가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담고 있다
"고 귀뜸했다.

3초, 첫인상을 보고 사물을 판단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방송 타이틀이 노출되는 시간 역시 찰나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지금 TV를 켜고 화면에 뜨는 프로그램 타이틀을 살펴보자. 글꼴 안에 또 어떤 정보가 숨어 있을까. 결코 의미없는 타이틀은 없다.

< 사진=이호준기자, KBS·SBS ·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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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타이틀의 비밀(과정)] 문자의 마법, 캘리그라피의 세계 


[스포츠서울닷컴 | 김지혜·나지연기자] 프로그램 타이틀은 캘리그라퍼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캘리그라퍼가 손수 글을 쓰고, 여기에 컴퓨터 작업을 조금 덧입히면 세상에서 하나 뿐인 방송 타이틀이 완성된다. 프로그램 타이틀을 '문자의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송에서 타이틀이 노출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글 역시 길어야 한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치열했다. 최종 타이틀이 결정되기까지는 수십가지 재료로 글을 써보고 바꾸기를 반복했다. 장인의 혼이 담기지 않고선 좋은 타이틀이 결코 탄생되지 않았다.

한 줄의 타이틀을 완성시키기 위한 과정을 MBC 타이틀실 박명호 부장에게 들어보고, 제작에 쓰이는 다양한 재료들을 KBS 타이틀실 김성태 씨를 통해 알아봤다.

◆ 제작과정 = 기획안 - 시놉시스 - 시안제작 - 절충과 회의 - 수정 - 결정

☞기획안: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방영이 결정되면 이와 동시에 타이틀 제작도 시작된다. 먼저 제작진은 자신들이 원하는 타이틀 방향을 타이틀실에 전달한다. 세부사항을 기록할 수 있는 기획안에 글이나 그림으로 설명을 첨부하는 것이 보통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이 자신들이 원하는 타이틀을 기획안으로 제출합니다. 간단한 글과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죠. 기존의 타이틀 중에 의도와 비슷한 것이 있으면 그걸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가장 이상적인 타이틀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박명호)

☞시놉시스: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 역시 타이틀을 만드는 데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다. 전개 방향에 맞춰 강하거나 부드럽게, 낡거나 새롭게 분위기를 달리해야하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피로 할지 폰트를 사용할 것인지도 시놉시스를 보고 결정할 수 있다.

"제작진은 기획안을 제출한 후 시나리오 줄거리를 설명하거나 시놉시스를 보여줍니다. 이걸 보고 타이틀을 어떤 느낌으로 표현할 지 결정하죠. 예능, 시사, 드라마 등 장르에 따라 캘리그라피 혹은 폰트로 글자를 만들죠. 이때부터 머리속으로 수십개의 글을 생각해 봅니다"(박명호)

☞시안제작: 구상을 마치면 실제 작업에 돌입한다. 머리 속으로 떠올린 여러가지 시안을 직접 써보고, 그 중 방송 프로그램과 가장 어울리는 타이틀을 골라본다. 보통 한 개의 타이틀을 만드는데 수십가지의 시안이 만들어지고, 사장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상으로 여러가지 타이틀을 그려보고,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직접 써봅니다. 수십 개의 시안을 실제로 쓰면서 타이틀을 결정하죠. 대작이나 시사 프로그램의 경우는 타이틀을 더 많이 써봅니다. 한 예로 '에덴의 동쪽' 같은 경우는 40-50개나 타이틀을 만들었었죠" (박명호)

☞절충과 회의: 타이틀실에서 프로그램 타이틀을 제작하고 나면 이후 판단은 제작진이 내린다. 만들어진 타이틀이 마음에 들면 바로 프로그램에 쓰인다. 하지만 대부분은 절충과 수정을 과정을 요한다. 과거 디자이너가 타이틀 만드는 일을 주도했다면 요즘은 제작진이 결정하는 추세다.

"타이틀실과 제작진의 의견이 다를 때가 종종 있어요. 예를 들어 시대극 타이틀을 만들 때 저희는 캘리그라피가 어울릴 것이라 생각해서 시안을 만듭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폰트가 좋겠다고 이야기하죠. 그러면 타이틀 시안의 방향을 바꿔서 새로 제작에 들어갑니다" (박명호)

☞수정: 제작진과 타이틀실의 절충과 회의를 거쳐 시안을 결정하고 나면 수정 작업에 돌입한다. 만들어진 타이틀에 임팩트를 주거나 느낌을 변형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드라마 속 시대 배경에 따라 바꾸는 것이 대부분이다.

"시대극의 경우 타이틀에 살짝 녹슨 느낌을 가미하기도 하고, 시사 프로그램 타이틀은 정교하게 써서 무거운 느낌을 줍니다. 글자가 조금씩 떨어지는 효과를 넣기도 합니다. 이렇게 최종 타이틀이 결정되죠. 대작이나 시사 프로그램의 경우 10-15일 동안 밤낮없이 작업해야 겨우 타이틀이 완성됩니다. 쉽지는 않은 작업이죠" (박명호)

☞결정: 마지막으로 결정된 타이틀을 영상과 맞춰보며 완성을 시킨다. 영상의 색이나 배경에 따라 위치나 색을 바꾸는 과정을 거치면 제작이 끝난다. 화면에 타이틀을 맞춰보면 실제 시청자가 접하는 강렬한 드라마 타이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타이틀실과 제작진이 결정한 타이틀은 영상과 맞추는 과정을 거쳐 최종 완성됩니다. 영상의 색에 맞춰 글자색을 조금 변경합니다. 혹은 배경에 따라 타이틀의 위치를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이죠. 세부적으로 타이틀을 넣을 곳을 정하면 모든 작업이 끝납니다" (박명호)

타이틀을 만드는 과정을 쉽지 않았다. 머리로도 많은 고민을 해야하고, 손으로도 여러 번의 작업을 거쳐야 한다. 고된 일이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는 건 타이틀만의 매력 때문이다. 표구사로 가는 것이 끝이었던 글이 컴퓨터 작업을 통해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크다.

◆ 재료의 향연 = 필기구 - 종이

타이틀은 만드는 재료에는 한계가 없었다. 타이틀은 저마다 다른 필기구와 종이를 통해 그려졌고, 완성됐다. 일상 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필기구와 종이도 캘리 그라피 과정에서는 훌륭한 소재로 재활용됐다.

☞필기구: 타이틀을 쓰는 재료는 실로 다양했다. 크레파스, 붓, 연필, 사인펜, 볼펜 등 일반적인 필기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무 젓가락, 나무 뿌리, 숟가락, 대나무, 이쑤시개 등 독특한 도구도 필기구도 캘리그라피에선 필기구로 활용되고 있었다.

"캘리그라피는 쓰는 것이 매우 자유롭습니다. 여러가지 재료를 통해 글자의 질감을 달리하죠. 크기가 다른 붓으로는 글자 크기나 모양을 달리합니다. 크레파스는 둥글고 따뜻한 느낌을 살리는 도구죠. 사인펜은 날카로운 맛이 있죠" (김성태)

이어 비정상적인 필기구를 사용하는 이유를 덧붙였다. 그는 "스푼에 물감을 묻혀서 흐르는 듯한 글을 표현합니다. 이쑤시개는 끝을 뭉개서 갈라지는 느낌의 글자를 쓰죠. 어떤 재료든 쓸 수만 있다면 물감이나 먹을 묻혀 글자를 탄생시킵니다. 다양한 필기구의 발견이 여러 타이틀로 이어집니다" (김성태)

☞종이: 타이틀을 쓰는 종이도 천차만별이었다. 글을 쓰는 재료 못지않게 여러가지 느낌을 살릴 수 있다는게 이유였다. 화선지, 수채화 전용지, 켄트지, A4용지 등은 일반적인 재료다. 구긴 종이나 휴지 등 색다른 재료를 써서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글의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한다.

"언어에 자유가 있듯이 캘리그라피도 자유롭습니다. 화선지는 살짝 번지는 느낌을 주고, A4용지는 일반적인 글의 느낌을 내죠. 종이에 따라서 쓰는 재료도 달라지고 쓰는 속도로 달리합니다. 이를 통해 글의 강약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죠" (김성태)

독특한 질감의 종이를 쓰는 이유도 있다. "붓에 먹을 묻혀 휴지에 글을 쓴 적이 있어요. 휴지는 빨리 번지는 성질이 있잖아요. 글을 쓰면 번지는 것이 구름같은 모양을 나타내죠. 귀여운 글씨가 이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필기구만큼 종이가 중요한건 다양한 느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김성태)

방송 타이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웠다. 한 줄을 타이틀을 보고 프로그램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는건 이런 노력 때문이다. 또한 한계가 없는 재료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타이틀이 창조됐다. 타이틀을 프로그램의 얼굴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 사진 = 이호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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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타이틀의 비밀(인터뷰)] 글자를 예술로 만드는 사람들! 


[스포츠서울닷컴 | 김지혜·나지연기자] 모든 프로그램은 타이틀 방영과 함께 시작된다. 때문에 타이틀은 '방송의 얼굴'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프로그램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라는 뜻. 이런 국내 방송 타이틀 제작 뒤에는 최고의 '캘리그라퍼' 2인이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김성택, 박명호 씨다.

박명호 씨는 지난 1985년부터 MBC 타이틀실에서 근무했다. 김성태 씨 역시 10년이상 KBS 타이틀실을 지켰다. 근 10여년간 방송된 프로그램의 타이틀은 모두 두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뜻보면 타이틀은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엔 남모르는 이들의 땀방울이 녹아있었다.

실제 김성태·박명호 씨는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타이틀을 제작하고 있었다. 글을 써보고 지우기를 수십번. 미술을 전공해 디자인에 남다른 감각을 자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창조의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반면 어려운 과정만큼 결과물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도 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고의 '캘리그라퍼' 김성태·박명호 씨를 직접 만나 타이틀을 제작하면서 겪은 애환과 보람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시작 - "미술부터 타이틀로…"

김성태·박명호 씨는 모두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김성태 씨는 서예를 박명호 씨는 디자인이 주전공이다. 타이틀을 제작하는데는 예술적인 감각이 필수기 때문이다. 각 방송사에서 타이틀실 직원을 뽑을 때 미술 전공자의 지원이 가능하게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타이틀을 만들 때 보통 연필로 밑그림을 먼저 그리죠. 글꼴의 조합을 보기 위해섭니다. 예술적인 측면이 강한 작업인 셈이죠. 그래서 미술 전공자가 많이 종사합니다. 저도 그 중 하나고요. 예전에는 회화과 출신이 최근에는 디자인 전공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박명호)

타이틀을 만들 때 직접 손으로 글을 쓰고, 이 글을 스캔한 뒤 컴퓨터 디자인과 결합해 최종 완성본을 제작한다. 결국 손으로 글씨를 직접 디자인 하는 창조과정이 타이틀 디자인의 시작인 것이다. 미술로부터 타이틀이 탄생했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방송이 시작됐을 때부터 타이틀은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만들었죠. 미술이라는 큰 틀안에서 서예나 디자인, 회화 등 세부 전공이 조금씩 다른 사람들이 모여 타이틀을 만듭니다. 무궁무진한 재료와 종이를 가지고 시안을 수백, 수천개씩 제작합니다. 미술을 통해 창조되고고 만들어지는 작업인거죠" (김성태)

◆ 애환 - "최종 결정까지 너무 험난해요"

김성태·박명호 씨는 미술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실력자들이다. 하지만 타이틀을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였다. 시안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마음에 드는 타이틀을 뽑아내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만큼 타이틀을 창조하는 작업은 험난한 과정을 연속이었다.

"한 프로그램의 메인 타이틀을 만드는데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대작의 경우 타이틀 하나를 만드는데 10일 이상이 걸릴 때도 있어요. 시안만 40-50개를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다시 절충과 회의를 거쳐 수정을 해나가죠. 타이틀이 최종적으로 만들어지기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힘든 작업이죠" (박명호)

시안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타이틀을 최종 결정하는 작업은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 프로그램 제작진의 의견과도 일치 해야되기 때문. 본인이 만족하는 타이틀이 나와도 제작진이 수정·보안을 요구하면 또 다시 타이틀 제작에 돌입해야한다. 창조자임에도 불구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애환이다.

"최종 타이틀은 보통 프로그램 PD가 결정합니다. 연출쪽에서 디자인의 방향을 제시하고 선택도 하죠. 전공자와는 상관없이 연출에서 초이스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단지 서포터 역할이 그치는 것 같아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사장된 수많은 시안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고요" (김성태)

◆ 보람 -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보여요"

때론 힘들고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수년간 포기하지 않고 방송 타이틀에 매달리는 것은 그만큼 작업이 주는 즐거움과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캘리그라피 타이틀 시장이 방송사에 국한된 것이 아닌 새로운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점도 고무적이다.

"예전에는 글을 써 놓으면 그냥 표구사로 가서 액자로 제작하는 것 외에는 다른 활용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글이 컴퓨터와 만나면서 생명을 입었죠. 글이라는 감성과 컴퓨터 디자인이라는 파워가 만나 딱딱한 글에 생기가 불어넣어 진거죠. 정말 즐겁고 매력적인 작업이 아닐 수 없어요" (김성태)

캘리그라피로 만든 프로그램 타이틀 제작 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보람이다. 단순히 방송사에서 쓰이던 것에서 벗어나 기업과 나아가 한류 사업으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캘리그라퍼라는 직업 자체에 갖는 관심도 최근들어 부쩍 많아졌다.

"드라마 대장금 타이틀의 경우 일본이나 중국 행사에 쓰일 때마다 부수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각종 기업체에서도 캘리그라피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졌죠. 그만큼 시장이 커지고 있어요. 또 캘리그라퍼를 신종직업이라는 면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죠. 이런 보람이 20년이상 캘리그라퍼로 산 기쁨 아닐까요?" (박명호)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방송 프로그램 타이틀을 제작한만큼 '캘리그라퍼'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을 하며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중이다. 한줄의 타이틀 뒤에 숨겨진 2인의 캘리그라퍼. 그들이 멋지게 보이는 이유다.

< 사진 = 이호준기자 >

출처 : 스포츠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