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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계 문양의 역사

150년전 출간된 건축·디자인의 ‘바이블’ 
 
세계 문양의 역사 / 오웬 존스 지음, 이가은 외 옮김/다빈치


1856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책은 이후 재발간을 거듭하며 윌리엄 모리스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같은 현대 건축과 디자인의 선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고전이다. 저자(1809∼1874)는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 수정궁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의 공동 건축가로 참여했으며 박람회가 끝난 뒤 1852년 런던 남부의 시드넘에 수정궁을 재건할 때 장식 감독을 맡은 영국 디자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젊은 시절부터 유럽과 근동 지역을 여행하며 얻은 장식미술에 대한 지식을 집대성한 책을 통해 저자는 당시 ‘예술적인 작품’의 범주 안에 넣어주지 않던 장식과 문양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물론, 디자인에도 회화나 조각 전통 못지않은 유구한 전통과 발전이 인류 역사와 줄곧 함께 해왔음을 역설한다.

대영제국의 전성기인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활동한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여러 출처의 장식 요소들을 뒤섞어 무분별하게 사용하던 당시 영국 디자인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바람에서였다.

이에 따라, 저자는 원시부족의 문양에서 장식의 초기 형태를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순수하며 더없이 완벽했던 고대 이집트와 우아하며 완성된 형태미를 자랑하는 그리스 장식 등의 발전과 퇴보를 다룬다. 이어 아라비아와 터키, 알람브라 궁전으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무어 문양을 통해 이슬람 문화권의 차별화된 장식을 조망하고 인도와 중국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문양도 언급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18세기 엘리자베스 시대의 문양까지 살펴본 저자는 자연의 원칙에 입각해 문양을 만든 그리스인들의 사례 등을 토대로 디자인의 3가지 보편적인 원칙과 건축 및 장식미술에 적용되는 일반 원칙 37개를 정리·제시해 주고 있어 건축과 장식 분야 종사자들에게 유용한 지침을 제공해준다.

책에는 저자가 각지를 여행하며 직접 스케치한 것을 비롯, 각종 문헌과 자료를 참고해 만든 2350여개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수록돼 있다. 이를 통해, 수천 년 전 이집트의 문양과 바로 몇 세기 전 이탈리아나 영국의 문양들이 아주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디자인과 장식이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며 발전한 형태들이 반복되고 변형돼 만들어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책은 유럽 대륙의 예술이나 세련된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내비치는 반면 아시아, 특히 중국 미술에 대해서는 매우 혹독하게 비판하며 평가절하 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는 19세기 제국주의자의 시선이 반영된 탓인데, 빅토리아 시대 영어판을 현대적이고 간편한 형태로 디자인한 책에서 서문과 해설을 맡은 미술사가인 이안 자체크의 적절한 해설이 훌륭하게 균형을 잡아준다.

또 바로 이점 때문에 책의 가치가 단순한 문양사전에 그치지 않고 식민지 확산에 열을 올리던 당시 세계 최강대국 영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인문서로서 오늘날 생명력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 문화일보 | 기사 게재 일자 : 2010-08-20 14:46